군대에서는 참 많은 전술 훈련을 한다.
연대전술훈련, 대대전술훈련, 포대 전술훈련, 혹한기 훈련, 호국훈련, 육군 전투지휘훈련 등등.
이 중 가장 힘들었던 훈련을 꼽자면 아마 KCTC 훈련이 아닐까 싶다.
항상 전쟁을 대비하여 많은 훈련을 하지만 실전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 이후 실제 전쟁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참전했던 분들은 이미 전역을 했으며 현재는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만 남아있다.
이러한 차이를 최대한 극복하고자 발전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뛰어다니고 대항군과 부딪치며 가장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이 KCTC 훈련이다.
KCTC 훈련을 하면 실제 사용하는 무기와 몸에 첨단장비를 부착한다. 서바이벌 게임처럼 페인트탄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포탄을 사용하고 센서를 통해 피해 현황까지 나오고 있다. 소총뿐만 아니라 수류탄, 포병화력 등도 재현 가능해서 기동 및 상황조치까지 가능한 훈련이다.
뭔가 거창하지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온몸과 장비를 덕지덕지 붙이고 전문 대항군들을 상대로 훈련하는 것이다.
재밌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 훈련은 상비사단에 있어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현재는 여단급 부대로 확대됐지만 기존엔 대대급 규모로 했었기에 경험한 사람이 더 한정적이었다.
또한 훈련 자체는 재밌을 수도 있는데 준비과정은 전혀 재미없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장비를 다루는 연습도 해야 해서 준비 과정이 더 길고 개별로 지급되는 센서가 많고 무거워서 착용하면 피로감이 두배로 늘어나는 훈련이다.
KCTC는 부대의 작전지역에서 하기엔 제한되어 KCTC 부대를 방문해야 하는데 운이 좋게도(?) 포대장을 하는 1년 9개월 동안 이 훈련단을 3번이나 방문했다.
첫 번째는 훈련이 아닌 시험평가단으로 참석했다. KCTC 훈련 규모가 확대되면서 포병 장비를 시험 평가하기 위해 2주간 파견을 갔다. 원래 다른 사단에 들어간 임무가 우리 사단으로 넘어왔고 포병연대 중에 다른 대대들은 핑곗거리가 있어 우리 대대에 내려온 것이다. 거기서 참가할 포대를 선정하는데 대대장님은 제일 선임 포대를 보내려고 했다. 선임 포대가 아니었기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포대장으로 겪을 수 있는 건 다 겪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다른 간부들과 상의를 했는데 예상외로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우리 포대가 가게 됐다.
KCTC 부대가 멀어 화포를 직접 기동 해서 가기엔 제한되어 이송차량에 적재해서 가느라 고생은 했지만 막상 가보니 할게 별로 없었다.
뭔가 훈련 비슷한 걸 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단지 화포에 마일즈 장비를 설치하고 통제관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됐다. 일과도 칼 같이 끝났고 더 일찍 끝나는 날도 있어 오히려 부대에 있을 때보다 좋았다. 이때 평소에 못 했던 체력단련이나 족구를 원 없이 할 수 있어서 즐기다 갈 수 있었다. 훈련은 아니지만 나름 KCTC를 겪어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장비들을 갖고 우리가 직접 훈련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최초 확대 편성된 연대급 훈련으로 우리 대대가 참석하게 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지원하는 보병연대가 참가하면서 우리는 자동으로 끌려갔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고 야외 숙영 하는데 최저온도는 영하 27도여서 대대에 동상 증상이 있는 환자가 속출했다. 또한 마일즈 장비를 수령해서 건전지와 배터리를 배분하고 개인별로 작동 확인을 해야 하는데 장비를 다루려면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해야 했다. 낮에도 바람이 많이 불어 5분만 있어도 손의 감각이 무뎌졌고 핫팩은 제 구실을 못 했다. 이런 추위를 겪으면서 한국전쟁 때 영하 35도에서 치러진 장진호 전투는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가늠이 안 갔다.
그렇게 훈련 준비를 며칠 하다가 갑자기 철수 명령이 내려왔다. 훈련부대를 확대하고 최초로 진행하는 것이다 보니 데이터 송수신이 원활하지 않아 훈련이 제한된다고 판단되어 철수를 하게 된 것이다. 먼 거리를 온 것이라 평소라면 나중에 다시 하는 것보다 그냥 하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텐데 워낙 추웠던 탓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철수했다.
이렇게 KCTC 훈련이 어영부영 넘어갔으면 좋겠지만 미뤘던 훈련은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날씨가 풀리고 참가하게 된 것이라 그전보다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보통 훈련 준비 기간 1주, 공격 훈련 1주, 방어훈련 1주를 해야 하는데 테스트에 가까운 훈련이라 2주 안에 모든 것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준비기간 1주를 거치고 실제 훈련은 무박 3일로 진행됐다.
포병이라 적과 직접 만날 일이 적어 소총을 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포탄은 원 없이 발사했다. 실제 사격 절차대로 진행을 한 뒤 공포탄을 넣고 방아 끈을 당기면 공포탄이 터지면서 나는 소리에 센서가 반응하여 포구에 있는 화약이 터지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포병이라 보병보다 후방에 위치해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닥쳤다. 적 포병 공격에 지휘소가 초토화되고 부상자 및 사망자가 속출하는 피해를 겪었다. 또한 화학탄 공격이 의심되는 상황도 발생하여 방독면까지 착용하면서 훈련을 했다. 우리 부대 근처에 적 게릴라 부대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되어 수색 정찰을 보내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다행히 대대와 좀 떨어져 있던 우리 포대는 피해가 적었지만 병력이 죽고 장비가 파괴되면서 나름 상황조치를 한다고 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동안 했다 치고 지나간 상황 조치들이 실제로 움직여서 하려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실제 전투라면 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게 지휘를 해야 할 텐데 아직 많이 멀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무박 3일이지만 약간의 전투 소강상태는 있기에 당장 전투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교대로 쪽잠을 자야 했다.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끝내면 2일간은 장비 반납 및 사후 평가를 진행한다.
사후 평가는 참가한 부대 지휘관 및 참모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리뷰하고 잘된 점과 미흡한 점을 이야기하며 보완 발전해 나가기 위한 토론하는 자리다. 보병 부대 위주로 진행되기에 포병의 비중은 작지만 나름의 자체 평가는 필요했다. 사후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잔류하고 있는 병력과 간부들은 복귀 준비를 한다. 마음은 가볍지만 마지막으로 부대에 안전하게 복귀할 때까지 사고가 없어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동안 많은 훈련들을 해봤지만 포병 입장에서 KCTC 훈련만큼 빡센 훈련은 없었다.
준비기간 동안 얼마나 KCTC 부대 근처를 왔다 갔다 했는지 지금도 동해로 가는 길에 있는 과훈단 교차로 근처를 지나가면 굳이 표지판을 보지 않아도 알아차린다.
나름 재밌기도 하고 값진 경험이었지만 두 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