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계고 졸업생이 회고하는 '우리들의 학교 이야기'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제가 공고생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저의 지난 삶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타인에 대한 적절한 관심은 상호 관계를 더욱 돈독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토양이 되니까요. 하지만 그 다정함의 틈새로 종종 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날아들곤 합니다.
“공고 졸업하셨나요? 신기하네요. 공고 나왔을 것 같지 않아서요.”
“실업계* 다니면 주로 공장으로 가지 않나요?”
“공고에서 4년제 대학도 가나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고생에 대한 특정 이미지나 전제가 얼마나 견고한지 실감합니다. 공고를 나왔을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이며, 왜 공고생의 종착지는 꼭 ‘공장’이어만 하는지, 그들이 대학가는 것이 왜 ‘신기한 일’이 되어야 하는지 저는 되묻고 싶었습니다. 이는 공고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 박제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이런 시선 앞에서 자주 길을 잃었습니다.
저를 평가하는 말인지, 혹은 특정한 대답을 유도하려는 것이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며 까칠하게 되묻거나, “공고생들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소위 웃자고 하는 말에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며 분위기가 묘하게 끝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학창시절의 저는 제 자신을 늘 해명하기 바빴습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 되었고, 그들이 쓰고 있는 렌즈에 어떻게 비춰질 지 항상 염려되었습니다. 저보다 소위 나은 학벌을 가진 이들이 섣부르게 던지는 말들에 상처받으면서도, 그 박탈감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고개를 젓는 날도 많았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에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 의미있는 대화가 아니었음을 말입니다. 그저 그동안 공고 출신자나 공고생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건네는 단순한 이야기과 반응이었음을 말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과 그들의 무신경함에 익숙하지 않았던 제가 만나, 서로의 언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음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제법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소비됩니다. 공고생은 또래 일반고 학생들과 비교되며 ‘기술이나 배우는 존재’로 납작하게 평가되거나, 평범하지 않은 학생으로 재현되곤 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학업 수준이 떨어져 기술을 배우는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라는 서사가 우리 삶의 전부인 양 귀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복잡한 속내와 다양한 층위의 맥락은 ‘소수자의 영역’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도 쉽게 설명되고 있음을 수없이 목격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그들은 원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이상할 것 없다”는 단정으로 우리 삶의 복잡성이 일단락될 때 마다 공허했습니다. 깊은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도 분명히 또 다른 일면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해봅니다. 사회적 인식 때문에 출신 학교를 숨기거나, 지금의 생활을 부끄러워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물론 이 작업은 먼 산을 향해 소리치고, 관객 없는 무대에서 홀로 독백하는 배우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주제를 다루거나 일반화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해야한다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종종 듣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리 제가 이야기해봐도 사회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니 적응하고 인정하며 사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 권유도 받습니다. 때론 “부질없다”며 종국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청개구리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나아졌고,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은유님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천현우님의 ‘쇳밥일지’, 허태준님의 ‘교복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지한구님의 ‘공고 선생 지한구’, 허환주님의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영남공고 학생들과 이제창의 '선생님이 뭔데요', 그리고 이란희님의 영화 ‘3학년 2학기’는 그렇게 함께 ‘울어주신 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분들의 업적이 선재하였기에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대중적인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저는 매일 조금씩 회상하고 혼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줄이라도 말입니다. 어떤 날은 공업계고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성토하고, 어떤 날은 우리와 같은 경험을 공유할법한 특정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해 충고도 늘어놓았습니다. 저처럼 뭔가 시작해보려는 후배들을 향해 격려도 써보았습니다. 많이 헤메고 있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지, 혹시나 공고생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 순간 홍승은 작가님**의 책을 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남의 시선에 나를 내맡기던 습관을 버리고 제게 주어진 일상과 감각에 권위를 주고 싶었기에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쓰는 행위는 곧 읽히는 행위입니다. 이 소외된 기록을 기꺼이 읽어주고 응답해줄 수 있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브런치라는 광야의 문을 두드려 봅니다.
고백하건데, 이 사회가 공고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제 해명이 아닌 선언을 하려 합니다. 저의 공고 재학 시절을, 그리고 그 안에서 반짝이던 우리의 진심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공고(公告) 하고자 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공고(工高)를 공고(公告)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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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 실업계고는 현재 전문계 혹은 특성화고로 불리고 있습니다. '실업'이라는 용어의 부정적 인식이 학교 기피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판단에 따라, 학교 명칭을 2007년 4월 12부터 전문계고로 변경되었지요. 상기 내용을 포함하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었습니다. 이는 2005년 직업교육체제 혁신방안 회의에서 국무총리의 '명칭 변경' 지시로 시작되었고, 이어 2006년 공청회에서 전문계 혹은 특성화계고로 구분하는 방안이 처음 논의되었습니다.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저자(어크로스 출판사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