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사전적 의미로는 영혼, 마음.
‘소울’ 뒤에는 수많은 명사를 붙일 수 있고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많이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는 단순히 영혼이라는 일차적인 뜻이
가장 먼저 와닿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게 가장 처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해 준 사람은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7살인가 8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 이른 아침에 받았던 전화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서울 만큼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를 바꿔 달라던 이모.
전화를 받은 엄마의 미세하게 떨리던 어깨.
내 기억 속 외할머니의 죽음은
이른 아침 전화 한 통으로 남아있다.
병원에서 이모의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
“내 엄마니까 괜찮아.”
라며 외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던 엄마의 모습에서,
엄마에게 엄마란 저런 존재였구나
하는 생각을 어린 마음에도 했었던 것 같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거의 없지만,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늘 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 한 장면이 있다.
무더운 어느 여름밤,
외갓집 마루 모기장 안에서 내 손에 쥐어주시던
꼬깔콘 하나.
그때의 기억 한 조각이
내게 남아있는 외할머니와의 추억 전부지만,
그것만으로도 외할머니께서 내게 얼마나
따뜻했던 분이셨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 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있고 그게 인생인 것 같죠.”
어느 다큐멘터리 인터뷰처럼 돌이켜보면
내 인생도 반듯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몸에 흔한 수술 자국 하나 없이
크고 작은 일탈 속에서도 짧지 않은 인생을
무탈하게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의
보살핌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미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초월적인 어떤 존재가 내게 힘을 주고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더 든든한 마음으로
거친 세상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 무사히 퇴근하면
나의 수호신이신 외할머니의 분신,
내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