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것의 선호와 소비
- 오래된 물건이나 작품을 가리키는 빈티지(vintage)나 과거의 스타일이나 디자인 등을 모방하는 레트로(retro:retrospect)가 유행이다. 뉴욕 브루클린이 그랬던 것처럼 성수동의 낡은 벽돌 공장 건물이 문화 아지트가 된 것도 레트로 감성의 유행 때문이다. 레트로의 성지라는 동묘 벼룩시장을 처음 찾았다.
- 최선을 다해 낡았지만 놀랍게도 상품 가치를 잃지 않은 온갖 구제(舊製)가 거래되고 있었다. 각종 기기들은 '작동'했고, 연식을 감안하면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물건들의 외모는 나름대로 준수했다. 그런데 신착(new arrival)의 홀대가 자연스러운 그 공간엔 물건만큼이나 낡은 인간들과 더불어 속칭 MZ들도 섞여 있었다.
- 데즈카 오사무의 1952년생 <우주소년 아톰>과 민증 대조하자고 강짜 부릴 법한 노인들이야 이해가 간다. 저렴하고 익숙한 물건의 소비자 자격이 충분하잖은가. 그런데 MZ들은 대체 왜?
- <동아전과>와 <표준전과>, 영희와 철수가 주인공인 교과서는 그 시대를 산 이들에게 추억을 소환한다. 반면에 MZ들에게 경험치가 없는 기성세대의 향수는 추억이 아닌 새로운 감성이자 놀이다. 60~70년 대생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현실을 강타한 최초의 문화대통령이었지만 MZ들에겐 현실감 없는 레전드다.
- MZ는 놀이와 유희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화에 복무하며 노동의 훈장을 신성하게 여겨온 기성세대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찬다. 꼭 그럴 일일까? 아니다. MZ들은 인간은 유희밖에 할 게 없어질 AI가 지배하는 세상과 시대를 대비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만 년 전 태어난 현생 인류의 끈질긴 DNA를 물려받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유년의 추억 사이를 '간첩 신고 표어'와 자신의 유골이 묻힐 장지조차 찾지 못한 독재자의 위세 당당하던 시절의 사진이 아프게 헤집고 들어온다.
ⓒ 스침
-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은 삭제됐어도 도무지 잊히지 않는 감촉이 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손아귀에 쥐었던 검정 빠이롯트 만년필의 촉감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만년필로 원고지를 긁어대진 않지만 자주 들려고 애쓴다. 만년필도 자주 입게 되는 옷이 따로 있듯, 그저 내 손맛에 따른다.
- 경험상 아무리 좋은 만년필도 종이와 상성(相性)이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사실은 1994년 동경국제도서박람회에서 알게 되었다. 첫 일본 출장에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었다. 하나는 기노쿠니야(紀伊國屋) 서점에서 맞닥뜨린 출판 분야의 다양성이었다. 당시 우리가 고작 개론서 출판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의 서가는 미시한 각론서로 넘쳐났었다. 그때의 압도감이 아직도 버겁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게 강한 인상을 준 게 일본식 화지(和紙)였다. 다양한 색상과 독특한 질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욕심이 불끈거렸지만 얇은 지갑 탓만 하며 돌아서야 했었다. 펜과 종이에 대한 나의 애착이 그때 비롯되었나 보다.
- 내게 만년필과 노트는 가장 레트로한 감성이자 습벽이다. 그것은 독서와 글쓰기란 문의 빗장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 나와 타자기의 첫 인연은 군대에서였다. 무게가 상당한 4벌식 기계 타자기로 기억한다. 사수는 오타가 날 때마다 구타를 했고, 파지를 씹어 삼키게 했다. 그 정도의 폭행쯤은 폭력 축에도 못들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제대 후, 잡지사 기자가 된 나는 타자기 대신 200자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집했다.
- 효율성 때문에 컴퓨터로 '글 치기'를 한 지 20여 년이 지났고, 지금도 글밥을 먹고살지만 나는 여전히 2벌식 자판이 낯설고 자판이 두렵다.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 그런 이유와 무관하게 나는 글 '치기'가 아닌 글 '쓰기'를 즐긴다. 글 치기는 마치 인화되기 전 사진과 같다. 셔터는 눌렀지만 물리적 결과물은 없는 상태인 것이다. 해서 종이에 긁혀 나온 사유의 결과물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글 쓰기가 더 좋다. 번거롭고 비효율적이지만 청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행위는 더없이 섹시하다. 부디 독서는 힘들어져도 글 쓰기는 힘들어지 않았으면 싶다.
- 벼룩시장을 다녀오다 당인리선 철도가 다녔던 홍대역 인근의 어울마당로를 따라 오래간만에 밤길을 걸었다. 입춘(立春)의 밤은 그리 춥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