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
어린 시절엔 한 번도 장교로 복무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에게 군대 역시 가기는 싫지만 어쩔수 없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관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내향적인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을 지휘해야하는
장교의 역할은 내 적성이랑 영 안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주변 친구들이 보험삼아 사관학교 시험을 치러 갈 때도,
나는 시험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붙는다고 해도 안 갈건데 뭐하러 시험을 보나'
하는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대학 시절 반수 실패라는 인생의 첫 좌절을 겪었고,
마냥 어리기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게도 군 입대의 타이밍이 찾아왔다.
이때까지도 장교 복무는 내 선택지에 전혀 없었다.
군대에는 전혀 뜻이 없으니 가능하면 편하게 갔다가 무사히 전역하자는게 내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선 카투사에 지원했다.
카투사에 지원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카투사는 토익 기준 점수만 넘으면 추첨으로 선발된다.
(물론 100% 공정한 추첨일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그냥 믿어야지 뭐 ㅎㅎ)
복학 직전에 토익 점수를 따놓았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경쟁률 낮은 달이 언제인지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고 지원한 거였는데...
반수도 실패하고 이것조차 안되었다는 생각에 제법 화딱지가 났다.
카투사 떨어지고 우울해하는 나를 보던 당시 기숙사 룸메 형 (군필자)은
그날 저녁 내게 순대국밥을 사주었고,
처음 순대국밥을 먹어본 나는, 그 날부로 순대국밥을 소울푸드로 선정하였으며,
이는 내가 향후 외대 학군단 내의 사조직이었던 '외대 국밥협회 (HSA)' 회장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
카투사 탈락 후 다음날, 나는 공군에 지원했다.
'공군은 웬만하면 붙는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도 서류에서 탈락했다.
아직도 탈락 원인은 잘 모르겠고, 이미 전역해버린 지금 딱히 알 필요도 없다.
어쩔수 없이, '공군이 날 품기에는 품이 너무 작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정말 되는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으로 절망하며, 본가에서 TV를 보던 어느날
어떤 프로그램에서 공군 ROTC로 군 복무를 마치고 회사를 다니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ROTC 출신이 뭔가 취업이 잘 된다는 듯한 뉘앙스로 방송을 하고 있어서
(지금은 개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면 공군 ROTC를 한 번 지원해볼까' 생각했다.
바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공군 ROTC는 공군 학군단이 설치된 학교에서만 가능했고,
우리 학교는 육군 학군단이 있어서 불가능했다.
공군 학사장교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일단 졸업 때까지 군대를 안가는 것이다보니,
이미 휴학을 한 내 입장에서 군 문제를 졸업 이후까지 미루고 싶지는 않아서 제외했다.
결국 내게 남은 건 하나의 길.
우리 학교 학군단에 지원하는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했어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얼른 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학군단에 지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