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OTC 후보생이 되다

오랜만에 느낀 합격의 기쁨,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이 된 선택

by 쿠바노스

지금이야 학군단 경쟁률이 수직 낙하 해버렸지만,

내가 지원할 때만 해도 경쟁률이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 선발 과정은 꽤나 긴장되었다.

반수 실패와 카투사, 공군 탈락으로 연속 고배를 마시면서

'이것 마저 안되면 정말 어떻게 해야하나'는 불안한 마음도 컸다.

필기 시험은 문제가 안되었지만, 당시 나에게 문제는 체력이었다.


그래도 중3때까지는 꾸준히 체육대회에 반 대표 축구선수 (왼쪽 미드필더/풀백)로 참가할 만큼

체력이 괜찮은 나였지만, 발등 부상 및 고등학교 진학 이슈로 고등학교 때부터는

운동을 거의하지 않게되면서 학군단 지원 당시의 나는 심각한 수준의 폐급 체력이었다.

그나마 상체 근력은 괜찮은 편이라 푸쉬업은 어느정도 했고, 합격권에 도달하는데 힘들지 않았지만

문제는 1.5km 달리기였다.

(군대에서도, 학군단 입단 이후에도 3km 달리기를 측정하지만, 당시 후보생 선발 기준은 1.5km였다)

당시의 나는 달리기 앱의 존재도 몰라서, 그냥 학교 운동장을 마구잡이로 뛰며 주먹구구식 연습을 했고,

체력 평가일이 다가 올때까지 체력은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평가하는 날이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끼어있었으므로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그래도 이것마저 탈락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완주를 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겨우 1.5km 뛰고 이런 이야기 하는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지만,

체력평가가 끝나고 속이 너무 좋지 않아서 화장실에가서 토했다 ㅠㅠ



이제 남은 관문은 면접 뿐.

학군단 면접은 의외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들어가서 차례로 질문에 답변하는 집단 면접, 발성과 걸음걸이 테스트, 토론식 면접을 거쳐 마지막으로 인근 학교 단장님들이 면접관으로 들어가 있는 단독 면접까지 거쳤다.

나는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작가의 꿈과 장교의 길을 연관지어 답변했는데,

아무래도 특이한 지원동기여서 그런지 같이 들어간 지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추가질문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목표로 한다고 하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나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답변을 했고,

"그러면 한국전쟁이 발생하게된 원인을 간략히 설명해보라"는 질문에도 곧바로 답변했다.

한국전쟁을 해방직전부터 시작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의 대립에서 출발한 내전의 연장이라고 보는

커밍스 교수의 이론에 근거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브루스 커밍스는 반공주의자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역사학자라서 이런식으로 답변하는게

패착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면접관 분들이 신경을 별로 안쓰셨거나, 브루스 커밍스라는 학자를 잘 모르셨던게 아닌가 싶다)

그러자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때 나는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의 한 학기 내내 진행되었던 학군단 입단을 위한 여정 끝에 나는 마침내 합격했다.

지금처럼 경쟁률이 수직 낙하하여 제발 와주십사 사정하는 학군단의 상황과 달리,

내가 지원하던 당시의 학군단은 그래도 중도 탈락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게다가 크고 작은 고배를 연속으로 드링킹하던 나의 상황에서, 합격했다는 자체가 꽤나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 선택이 내 삶에 얼만큼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합격 후 2학년 2학기를 마친 겨울방학, 나는 학군단 후보생으로서의 첫 번째 군사 훈련인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전투복을 입고 동기들과 함께 학군교로 향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 왜 장교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