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을 두드리기 시작한 새

기초 군사훈련, 그리고 소중한 동기들

by 쿠바노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던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의 괴산은 무척이나 추웠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는 '훈련소 이틀차의 아침'도 남들처럼 경험했고,

2020년 새해를 학군교 (학생 육군 군사학교)에서 맞았다.

나는 동기들과 함께 1주차 제식훈련부터 차례대로, 군인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 중의 기본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식의 기본 중 하나는 '바른 걸음'인데, 내미는 발과 내미는 팔이 엇갈려야 한다.

즉, 왼발을 내밀때는 오른 팔이 나가고, 오른 발을 내밀 때는 왼팔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때 꼭 한 명은 손발이 일치해서 나가며 웃음을 준다던데, 그게 바로 훗날 친해진 동기 중 하나인

W였다. 근육질 체형에 까무잡잡한 피부만 보면 초 에이스의 관상이었지만, 덜렁대는 성격 탓에

나를 포함한 동기들의 챙김을 많이 받은 친구였다.

4학년 마지막 동계 훈련에서까지, 전투조끼 파우치를 잘 달지 못해 내가 달아줬을 정도였으니...

(그랬던 W가 수색대대에서 소대장을 하고 무사히 전역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전역 후에는 그 동기를 만나지 못했는데, 만나면 잔뜩 놀려줄 생각이다)



한편, 동기들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훈련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으므로, 그때만 해도 동기들이랑은

어색한 사이였다. 그러나 조금씩 말을 붙이고, 함께 훈련을 받고, 주에 한 번 허락된 px에서 사온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어쩌면 평생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동기들과 친해졌다.

복무 중 로스쿨 입시에 도전해서 나보다 먼저 로스쿨에 합격한 J,

국회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D,

그리고 공인 노무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는 H가 그들이다.

민간인에서 처음으로 군인의 길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기초 군사훈련은 어쩌면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 일 수도 있지만, 훌륭한 동기들 덕분에 재미있게 이겨나갈 수 있었다.


사실 벌써 5년이 지난 탓에 기초 군사훈련의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인상적인 몇개의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 중 최고는 단연 첫 번째 사격의 경험이다.

처음으로 들어본 실제 총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탕!" 소리와 함께 주변 산에서 길게 메아리치는 잔향이 위협적으로 들렸다.

총이 생각보다 정말 위험한 물건이고, 이제 저 물건을 내가 직접 다뤄야한다는 사실이 긴장됐다.

K-2를 직접 쏴보기 전에 나는 혹시나 반동 때문에 다치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교관님들은 반동이 약할 뿐더러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절대 다칠 일이 없다고 안심시켜 주셨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치시킨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의

타이밍에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오히려 밖에서 들을 때보다 사선에서 듣는 총소리가 크지 않게 느껴져서 안심이 됐다.

처음엔 영점이 안맞았지만, 조교의 조언에 따라 클리크 수정을 하고 마침내 영점도 맞추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영점 하나 맞춘 걸로 받기엔 너무 과분한 칭찬이지만,

교관님은 "이 정도면 거의 스나이퍼 급이야~"하고 칭찬해주셔서, 무척 기분 좋았다.


그 밖에도 기초 훈련에서 했던 여러가지 (각개전투에서의 재밌는 에피소드, 행군을 마치고 먹었던 꼬곰과 오징어 젓) 기억이 많지만, 이 시리즈의 갈 길이 무척 멀다.

따라서 내가 왜 이 글의 도입부에서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했는지 밝히는 것으로 이 글은 마치고자 한다.

학군단에 입단한 순간부터 우리는 '사관 후보생'이 되었지만, 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햇 병아리들이기 때문에, 임관하기 전까지 받는 모든 훈련에서는 거의 훈련병처럼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휴대폰 사용도 금지되고, 밥 먹으러 갈때도 오와 열을 맞춰 걷고, 아침 점호, 저녁 점호까지 다 받는다.

그 중, 육군에서 아침 점호 때 하는 '조국 기도문'이라는 절차가 있었다.

이건 무작위로 한 명 씩을 뽑아서, 다른 동기들에게 하고 싶은 응원 메시지 같은 것을 발표시키는 절차로

언제나 형식적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거의 모든 조국 기도문은 이런 식이었다.

"학군 60기 동기 여러분, 9월 17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힘든 훈련도 어느 덧 2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무사히 훈련을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학군 60기 화이팅!!"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새벽 말번 초 불침번이었던 내게 교관님이 다가오시더니,

"너가 오늘 조국 기도문 좀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뭐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고, 그냥 애들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하면 돼~"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래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남들처럼 양산형 조국 기도문을 읊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수백 명의 동기들 앞에서 '데미안'의 저 유명한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학생이었던 우리가 군인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새가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렇게 알을 두드린다면 끝내 어엿한 장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다, 뭐 그런 식으로 조국 기도문을 마쳤던 것 같다.

그렇게 남들 과는 너무 다른 조국 기도문 낭독을 마치고 나니, 처음 보는 다른 학교 동기까지 와서

"조국 기도문 너무 잘 들었다"며 인사를 건네었고,

쑥쓰럽게도 우리 학교 동기들도 와서 멋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이 일화가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결코 관종도 아니고,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꼭 나서야 할 상황이 오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확실한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이런 특성의 사람이 야전 부대에서 어떻게 지냈을 지 궁금하시다면, 이 시리즈를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나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처음 군인의 길로 접어드는 경험과, 평생 갈 수 있는 소중한 동기들 말이다.

훈련 퇴소 후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 최애 가수인 백예린의 'Rest'를 들으며

훈련을 무사히 마친 나를 자축했다.


https://youtu.be/IqfFZ5cJ-WU?si=doMIR9RtHZEohnqi

매거진의 이전글1. ROTC 후보생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