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를 갖춰나가던 3,4학년 시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나서, 나는 본격적인 학군단 사관후보생 (이하 후보생)이 되었다.
학군단 시스템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학군단 후보생은 대학생이자 준 군인으로서
학기 중에는 대학 교육과정과 군사학 수업을 병행하고,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졸업 전 누적 12주의 군사 훈련을 수료한 뒤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게 된다.
일괄적으로 엄격하고 빡센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사관학교와 달리, 대학생이자 후보생이라는 점에서
학군단 후보생은 사관생도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활하게 된다.
(물론 학교에 따라 전원 아침 체력단련을 시키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가 심한 곳도 있다고 들었으나,
우리 학교는 매우 자유로웠다)
하지만 당시 저질 체력이었던 나에게 가장 부담스러운건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체력측정이었다.
육군의 3대 측정 종목인 푸쉬업, 싯업, 3km 달리기 (뜀걸음)를 동일하게 하는데, 대충해도 카운트 해주는 야전과 달리 장교 양성 과정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팔 각도 까지 교관님들이 FM으로 지켜보셨고,
충분히 내려가지 않으면 개수를 카운트 해주지 않았다.
나의 경우 푸쉬업은 그래도 할 만 했는데, 3km 달리기와 싯업이 가장 큰 문제였기에 두 종목을 반드시 합격권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우리 학교 학군단은 평소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나, 체력 수준은 중시하는 편이라 체력 측정 불합격자들은 아침마다 훈육관님의 감독아래 강제로 운동을 해야했다. 따라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측정거리만큼만 (3km)뛰며 연습했으나, 단장님의 조언으로 5km씩을 연습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연습을 더 힘들게 하면 실전은 더 쉽다는 것이 그 훈련법의 요지였다.
처음에는 3km를 넘기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아예 페이스를 낮추어 달린다면 가능할 수는 있겠으나, 그냥 조깅을 하는게 아니라 체력 측정에 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소한 1km 당 4분 후반대 페이스로 달려야 했다.
따라서 시도한 첫날에는 약 4km까지만 달리고 중지하였다.
‘5km 훈련’성공의 결정적 계기는 애플워치 구입이었다.
그 전까지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 위해서 휴대폰을 들고 뛰어야 했지만, 애플워치 덕분에 폰 없이도 거리 측정과 음악 듣기가 수월해졌다.
처음엔 평소 좋아하던 백예린의 노래들을 주로 들었으나, 힘을 끌어올려야 하는 러닝의 특성상 노래들이 너무 잔잔해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힙합을 많이 듣게 되었다.
특히 붐뱁 장르의 음악들이 비트가 딱딱 끊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발을 맞추며 뛰기에 좋았고,
훨씬 덜 힘들고 재미있게 달릴 수 있었다.
처음 5km를 찍고 나니 그 이후로는 어렵지 않게 5km씩 달릴 수 있게되었고, 무엇보다 달리기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달리기를 마친 후에는 기숙사 편의점에 가서 2+1 행사를 하던 파워에이드 보라색을 구입하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병씩 꺼내서 마시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변에 사는 동기들도 불러서 같이 달릴 때도 있었는데 다들 5km는 투머치하다고 기피해서, 그들은 3km까지만 뛰고 나만 5km씩을 채웠다.
5km씩 달리다 보니 3km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기록은 특급 수준으로 올라갔고, 어차피 3급 이상만 받으면 통과하는 임관종합평가에서는 그야말로 놀면서 뛰고,
잘 못뛰는 동기를 끌어주며 뛰어도 여유있게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게다가 달리기가 왜 최고의 운동인 지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피부도 좋아졌고, 따로 복근 운동을 열심히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나마 복근도 생겼다.
또한 처음 야전에 가서 적응하고 병사들과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후 올라갈 글에서 후술)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학군단 후배님들이 계시다면, 본인이 단기복무를 할 지라도 병사들을 이길 정도의 체력수준을
반드시 만들고 임관하시기를 추천드린다.
초반 적응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경험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났던 병사들은 본인들보다 못한 수준의 상관에게 표면적으로는 따르는척 할 지 몰라도
내심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사실 3,4학년 학군단 생활에서도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았지만,
야전 경험에 비하면 워밍업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매거진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장교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기초 소양을 기초 군사훈련 이후 2번의 훈련에서 배울 수 있었다.
분대 공격, 방어와 같은 소부대 지휘훈련, 실제 세열수류탄의 위력을 경험했던 수류탄 훈련과
특전사에서 온 교관들이 진행했던 유격 훈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내가 한 명의 군인으로, 특히 그 중에서도 장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훈련들이었다.
특히 여름 훈련에서 우리가 땀뻘뻘 흘리며 고생할때 얼음물에 커피를 타서 갖고 다니는 교관님들이 부러우면서도 원망스러웠지만…
그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훈련보다도 소중한 건 동기들이었다.
대학에서는 아무래도 표면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지만, 학군단 동기들은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서,
방학때 함께 훈련받으며 고생하는 경험을 공유하다보니 훨씬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에 소중한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함께 밥도 자주먹고, 코인 노래방도 다녔고
막학기 때는 함께 탁구에 미쳐있어서 시간만 나면 단사 (학군단 건물)에서 탁구를 쳤다.
훈육관님 두 분도 껴서 함께 칠 때도 있었고,
심지어 주말에는 단사에 들어가면 안되지만, 동기들과 몰래 들어가서 탁구를 치다가 훈육관님한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활의 남은 절반을 열심히, 재미있게 보내다보니, 어느새 임관을 하게되었다.
보통 언어 전공자들은 정보 병과를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정보 병과를 지원하였으나,
4순위로 써두었던 포병으로 확정되었다.
포병은 정말 생각도 한 적 없었고 심지어 4순위에 적어두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했지만
군대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얼떨결에 ‘포병 장교’가 된 나는 졸업 후 3월 달에 육군포병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그동안 학군단 생활을 하며 배운 건 그야말로 입문과 기본과정에 불과했기에, 포병에 관한 심화 지식과 기술을 야전에 가기 전
3개월 동안 배워야 했다.
육군포병학교는 전국의 모든 포병 소위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학군단 뿐만 아니라
육사와 3사관학교 출신들도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따라서 정들었던 동기들과는 뿔뿔히 흩어져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포병 장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