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합격 수기 (完)

이제 시작일 뿐이다

by 쿠바노스
구글 제미나이로 만든 이미지 (나의 최근 몇년 간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저 '합격 수기'로 시작했던 글이었는데 어느새 '로스쿨 가는 법'에 관한 일종의 개관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그 개관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 글에는 딱히 '정보'는 없다.

따라서 정보만을 얻고 싶은 분들은 이 매거진에 있는 '로스쿨 합격수기 (5)'까지만

읽으시면 된다.

이 글이야말로 가장 '수기'에 가까운, 개인의 감상을 기록해둔 글일 것이기 때문이다.


1. 방황끝에 닿은 길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매우 자주 바뀌어왔다.

검사, 판사, 외교관, 범죄심리학자, 작가 등으로...

그만큼 나의 관심사는 넓고 다양했고, 그래서 어느 하나로 정착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 와중에 최초의 장래희망 (법조인)으로 결국 회귀했다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때 장래희망이 검사였던 건 그 때 엄마랑 같이 봤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검사였기 때문이다.

그냥 정장 빼입고 다니면서 폼나게 말하는게 멋있어 보여서 그랬다.

수많은 방황을 거쳐, 로스쿨 입시 전까지 내 마지막 꿈은 '작가'였다.

다양한 지식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며, 말과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거대하고 막연한, 그야말로 '꿈'이었다.

작가가 될 수 있을만큼 충분한 글쓰기 능력을 가졌느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한국의 도서시장은 매우 작고,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

작가로서 먹고 살만큼 책을 팔기 위해서는 이미 유명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작가'라는 꿈은 평생의 목표로 삼기로 결심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로스쿨과 법조인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역시 내적 방황을 했고 (반수 실패와 복학, 진로 고민)

졸업 후에는 어차피 2년간 장교로 일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취업에 대한 고민을 당장하지 않고

태평하게 있었다.

그때 로스쿨이라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법학도 내 관심사의 일부이고, 변호사가 되면 먹고사는 일은 해결이 되므로, 변호사로 일하면서

작가가 되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입학을 위해 필요한 리트 시험은 어차피 글을 읽고 문제 푸는 시험이니까 당연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고, 순진하며 어쩌면 건방진 생각이었다.


2.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최초 목표는 23년도 7월에 치러지는 24학년도 리트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서 전역할 때까지 군 휴학을 걸어놓고, 25년도에 바로 입학하는 것이었다.

플랜 B는 전역 후 한 달 뒤에 있는 25학년도 리트 시험을 보고 25년도에 17기로 입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두 계획은 모두 좌절되었다.


주된 이유는 내 군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비역 중위의 군대이야기' 매거진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 보직은 관측장교로서 군 생활 내내 최전방으로 파견을 다녀야 했다.

플랜 A가 좌절된 이유는 23년 7월 당시 내가 GOP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시험 준비는 물론 시험 일정에 맞추어 민가(?)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였다.

게다가 DMZ라는 중요 작전지역에 도저히 보낼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동기와 후임을 둔 덕분에

전역 한 달 전까지 대타로 GP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게다가 24년 상반기 당시 GP는 틈만나면 대북 풍선이 날아올라서 상황조치를 해야했다.

밤마다 식당에서 '두보계 100'을 풀다가 상황이 걸리면 책을 덮고 욕을 내뱉으며 상황실로 뛰어갔다.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GP 파견 근무를 마치자 내 군 생활은 한 달이 남아있었고,

그동안 모아둔 휴가를 원기옥으로 쏟아내며 전역 전 휴가를 나갔지만

당장 2달 뒤에 있는 리트를 봐야 했기 때문에 말이 휴가지 공부만 했다.

그 때의 난 가슴 속에 화가 참 많이 쌓여있었다.

전역 직전까지 준비할 여건도 보장해주지 않는 부대에 대한 원망,

나를 GP에 대신 가게 만든 동기와 후임에 대한 원망,

틈만 나면 풍선을 날려 나를 괴롭게한 탈북민 단체에 대한 원망까지.

(이건 사실 국방부 심리전단의 소행이었다는게 최근 뉴스에 보도되었다. 더 화가 난다...)

그렇게 준비하다보니 로스쿨 합격수기 리트편에서 썼듯이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했고, 첫 번째 입시에 실패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 시기에 로스쿨 면접을 준비하며,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목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이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 일정한 답을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고 재시 준비에 돌입하였다.

정말 강한 각오가 필요했다.

내 소중한 20대의 1년을 더 투자하는 건데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채 끝난다면 절망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신뢰하면서도 로스쿨 입시는 근본적인 불확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직 7급 공무원 준비도 병행하기로 했다.

7급도 psat이 있으니 리트와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었고, 2차과목 중 헌법과 행정법이 있었기 때문에, 객관식이나마 찍먹하고 들어간다면

로스쿨 가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7개월 남짓, ‘병행하는 건 너무 무리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당연히 있었다.

심지어 7급 psat시험과 리트 시험은 날짜가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아서 이틀 연속으로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시험을 같이 준비했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늘어지지 않고 빡빡하게 살 수 있었으며,

공법 찍먹도 할 수 있었고 (변시 선택형 기출도 풀어봄),

psat의 언어논리, 상황판단이 직접적으로 도움되었고, 심지어 자료해석도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 (추리논증의 일부 계산필요한 문제에서 속도가 압도적으로 향상됨)

매일 매일 새롭게 불안과 싸웠지만 계획은 타협하지 않고 달성했기 때문에 성취감도 있었다.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건 6월달이었다.

기출문제는 회독수가 늘어나며 잘 풀리고 있었고, 해설지를 안보고도 모든 문제와 선지 하나하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지만

기출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내 실력 자체가 늘었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야할 타이밍이었지만 만약 사설을 풀었을때 충분한 점수가 안나오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시험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 절망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가장 친한 친구들은 각자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친구 A는 로스쿨에 이미 17기로 다니고 있었고, 노무사 시험 준비를 하던 B는 1차 시험에 붙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와중에 친구 C는 국회직 8급에 최종합격하여 곧 연수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다들 잘 하고 있는데 나는 기껏해야 로준생…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왜 나만 제자리 걸음일까 생각하자 우울해졌다.


그 때 친구 A와 통화를 했다.

“형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무조건 될거야”

A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로스쿨에서 똑똑한 사람들 많이 본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내가 최고라고 했다.

말이나마 참 고마웠다.

사설 풀기 전인데 점수가 안나올까봐 걱정된다고 했더니, 본인도 리트 직전까지 사설 점수가 별로 안좋았다고,

그래도 실제 시험에서는 훨씬 잘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 때부터 용기를 내서 사설을 풀었다.

물론 기출만큼 잘 나온건 아니지만 회차가 쌓여도 언어이해는 21개 ~22개, 추리논증은 30개 수준에서 위아래로 조금씩 넘나드는 점수가 형성됐다.

통계학적으로 표본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나는 이렇게 마음 먹었다.

‘이 정도 점수는 이미 확보했고, 고정적으로 나온다. 시험장에서 이것보다 한 두개씩만 더 맞히면 된다’

그 마인드는 실제로 통했다.


3. 그래서 어떤 법조인이 될 것인가



(1) 유능하고 따뜻한 법조인

26학년도 로스쿨 입시 준비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소위 ‘고리트’라고 불리는 140+의 리트 점수를 받았고, 지원한 두 학교에 모두 합격했으며, 민법 기본강의를 들으며 선행학습을 하고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법조인이라는 목표가, 이제는 훨씬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물론 고난의 길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래서 왜 로스쿨에 가려고 하는지,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은 건지에 대한 답을 이제서야 해보려 한다.

위에서 나의 진로 방황에 대한 짧은 역사에서 드러나듯, 나는 뭔가 경험으로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전에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

그럼 우유부단하다는 건가?

우유부단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아직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함부로 말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가 나의 근본적인 의문이다.

따라서 ‘빅펌에 들어간다’, ‘로클럭이 된다’, ‘검사가 된다’와 같은 법조인으로서의 세부 목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성은 있다.

나는 법을 잘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 소시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유능하면서도 따뜻한 법조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활동들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나 ‘참여연대’같은 단체에서 해보고 싶다.

너무 거대담론 같지만, 지금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커다란 방향성을 하나 가지고 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검클빅’에는 관심이 없냐?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여건만 된다면 셋 다 한 번씩은 경험해보고 싶다.

물론 셋 중 하나도 할 수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정말 셋 다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는 뜻이다.

나의 키워드 중 하나인 ‘유능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연히 법 공부를 잘해야 하고,

그것을 증명해주는 건 좋은 시험 점수와 경력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라는 타이틀 자체가 물론 획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지만,

이왕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빅펌출신’, ‘판사출신’, ‘검사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뭐가 됐든 목표를 높게 잡아야 그 언저리라도 도착할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2) 계속 공부하는 법조인


언급했다시피 나는 관심사가 굉장히 넓다.

그래서 법조인이 된 이후에도 내가 공부하고 싶고 더 파고 싶은 분야를 필요하면 대학원을 추가로 다니면서까지 공부하고 싶다.

그건 자기만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더 나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지금 판사, 검사들이 국민적인 불신을 받고 있는 결정적 요인은 세상과 단절되고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시야가 한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소장 대행께서도 그런 단절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이어나갔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나 역시도 문형배 전 소장님의 그런 자세를 닮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변호사가 된 이후의 일이다.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법학에만 오로지 전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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