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중대 교육 기간
GP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GP (Guard Post)는 비무장지대 (DMZ) 안에 있는 우리 군의 경비초소를 말한다.
여기서 예리한 분들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비무장지대인데 어떻게 군이 들어가지? 비무장지대는 무장을 할 수 없는 곳 아닌가?’
그렇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비무장지대 안을 군이 지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과 북이 모두 GP를 설치해두고, 그 안에 군을 투입시켜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군사적 목적때문에 ‘아 너희들 경찰이었어?’하고 속아주는 블랙 코미디의 현장이 바로 DMZ인 것이다.
아무튼 GP에서는 24시간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는 것이 임무이므로 매 순간이 실전이며, 심지어는 간부들도 퇴근하지 못한채
근무가 없는 시간대에도 계속 대기해야만 한다.
북한군 코 앞에서 임무수행한다는 것은 유사시에 그들과 가장 먼저 싸워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GP에는 정예부대라 할 수 있는 ‘수색중대’가 투입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색중대를 지원하며, 일종의 화력 참모 역할을 하는 사람이 관측장교이고,
내가 바로 그 관측장교였다.
GP는 그만큼 중요한 작전을 하는 곳이므로 수색 중대에서 한 달동안 투입 전 교육을 반드시 수료해야만 했다.
그러나 교육 첫 날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우리 부대에서 데려간 관측병 중 한 명이 내게 찾아와 침울한 표정으로
“저 GP 못갈 것 같습니다. 포대장님께 말씀드리고 빼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일단 나조차도 군대가 이제 처음이지만 ‘군대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건가’ 싶었다.
마음같아서는 “나는 가고 싶어서 가냐? 군인이면 정당한 명령에 따르는거지 말이 많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부대 인원 편성상 대체할 인원이 없었고,
둘째,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데려가야하는데 안그래도 멘탈이 흔들리는 GP를 가기 전부터 멘탈을 흔들어놓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대의 인사 관리의 총책임자이자 나의 직속상관인 포대장에게 전화로 보고를 했다.
포대장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어쩌라고? 지금 포대에 대체할 애도 없어. 너가 설득하던지 알아서 해” 라고 말했다.
짜증이 확났다.
나조차도 부대 전입온 지 겨우 한 달 만에 생판 모르는 부대에 와서 적응하기 바쁜데
부하는 못가겠다고 하고 상관은 권한없는 나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 병사를 설득하는 것.
우선 PX에서 음료수를 사와서 그에게 내밀며 잠깐 얘기좀 하자고 했다.
왜 가기 싫은건 지 물었다.
자신이 내성적인 성격이라 정든 부대와 동기들을 떠나는 것도, 낯선 부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도 두렵다고 했다.
나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너는 병사고 나는 간부지만, 내가 간부라고 해봐야 이제 부대온 지 한 달밖에 안됐다.
그 와중에 낯선 부대에서 적응해야할 뿐더러 너희 관측병들까지 챙겨야 해서 부담감이 막중하다.
그래도 나는 군인이고 장교인 이상 나한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거다.
그리고 그 임무를 위해서 나는 너가 무조건 필요하다.
관측병들 중에서 너를 가장 믿고 있다.
내가 이제 막 온 소위라서 못미더워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 잘 데리고 갔다가 건강하게 내려올 자신은 있다.
나 믿고 일단 교육부터 받아보자. 도저히 적응안되면 그 때 다시 말해라.
대략 이런 요지로 말했던 것 같다.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고 강압하지도 않았고, 그냥 내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묵묵히 듣던 그는 오늘까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날 저녁,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관측장교님, 저 해보겠습니다. 신경쓰게 해드려서 죄송하고, 저한테 진심으로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그래 고맙다. 내일 부대에서 보자”
미리 말해두자면, 이 친구는 내가 데려간 3명의 관측병 중 가장 적응을 잘해서 수색병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훗날 전문 하사로 임관까지 해서 나와 함께 근무하였다.
아무튼, 나는 내 군생활에 닥친 첫 번째 위기를 넘겼다.
내가 GP파견에서 정한 목표는 수색중대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포병학교에서 관측장교의 비참한 운명에 관한 괴담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병부대 파견갔더니 존재도 모르고 밥도 안주고 버리고 갔다더라’같은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물론 군 생활을 마친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 소문은 과장됐거나, 관측장교가 너무 처신을 못했거나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저런 대우를 받으면 안되긴 하지만)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모든게 새롭고 낯선 소위였던 당시에는 그런 판단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 수색중대 간부들에게도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고 친해지고자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꼈다.
결국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건 수색‘병’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아야 했다.
수색중대는 체력단련을 빡세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체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때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다.
교육 기간 중 ‘전장 순환식 운동 (일종의 군대식 크로스핏이다)’을 하는 날이 있었는데,
수색병들 중 하나 (병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관측장교님, 저랑 전장순환 운동 대결 한 번 어떠십니까?”
나는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판단 따위 하지 않았다.
“좋지. 바로 가자”
결국 나는 전 수색중대원들과 내가 데려온 관측병들이 보는 앞에서 그와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처음엔 비등비등했으나 점차 내가 앞섰고, 결국 꽤 큰 차이로 내가 승리했다.
병장 친구는 자신이 이길거라고 생각했는지 약간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외부인 입장에서 보면 별거 아닌걸로 볼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관측병이 내게 다가와서 “관측장교님 체력 좋으시다고 애들 사이에서 소문났습니다”
하고 귀띔해주었다.
그 이후로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거는 수색병들도 생겼고, 뭔가 그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무언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후 GP에 올라가서도 비교적 원활하게 임무를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들과 빨리 친해짐으로써
힘든 가운데서도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몇몇과는 지금도 인스타로 가끔 연락을 하고 있다.
어느덧 수색중대에서의 교육도 종료되었고,
정말 GP에 들어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또 무슨 고난이 닥쳐올지 예상하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