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말과 HONNE의 HEARTSONG
자줏빛 하늘 아래 싱그러운 꽃밭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꼭 끌어안고 있는 두 남자(Andy Peter Clutterbuck & James William Hatcher).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는 걸까?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후에 세계가 종말한다고 치자, 뭘 할 거야?( LET'S JUST SAY THE WORLD ENDED A WEEK FROM NOW, WHAT WOULD YOU DO? )"라는 긴박한 앨범 제목이 한 줄기 신의 계시처럼 그들에게 내리쬔다. 커버의 이미지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들, 세계 종말도 뛰어넘어 청자들에게 끝내주게 따사로운 위로의 신이 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대학교 시절 저녁 식사를 기다리다가 손이 맞닿아서 친해지게 되었다는 듀오의 로맨틱한 우정 일화도 떠오르면서 은은한 웃음이 번진다.
우리가 듣는 노래에는 감정의 기억이 각인된다. 20대 시절 장기 연애를 끝내고 한참을 방황 중에 있으면서도 방황인지도 몰랐던 때, Location Unknown ◐ 이 일깨워 준 쌉쌀한 정서와 고적한 공기.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몸과 마음의 피부를 스치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막막한 위기를 귀여운 캐릭터와 컨셉으로 승화시킨 no song without you 도 빼놓을 수 없다. 들으면서 화자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자신의 소중한 연인에게 고백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보컬 앤디가 결혼식 때 했던 몇 마디 말들을 모아 가사로 쓴 곡이란다. 심지어 그가 HONNE의 노래들 중 제일 좋아하는 곡. 그리고 올가을 가장 마음이 추웠던 어느 찰나, 우연히 얼어 가는 심장을 녹여 준 HEARTSONG . 의도치 않게 자동 재생되는 라이브 무대 영상*으로부터 누군가를 위해 절실히 기도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와 가사가 들려왔고, 내면의 눈앞에서는 얇은 날갯짓을 하는 한 마리 나비가 그려졌다. 나비는 꾹 닫힌 창처럼 상처로 굳어 버린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두드린다. 가녀린 날개가 부서지도록.
나는 바람 속의 나비
난 계속 이렇게 갈 거야
네가 들여보내 줄 때까지
I'm a butterfly in the wind
I'm just going with it
Until you let me in
- HEARTSONG 가사 중
도시의 네온사인 같은 HONNE의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곡들과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컨셉에도 수차례 취향 저격을 당했지만, 예상 외로 이들에게 마음이 훅 갔던 건 위의 곡들을 만난 감상적인 순간들이었다. 'HONNE'이라는 그룹명은 '본심'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本音'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멤버들은 그룹명을 "혼"이라고 읽는데, "사물의 몸과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 혹은 "사물의 중심을 이루는 정신"라는 뜻의 한자어 '혼(魂)' 또한 연상케 한다. 정말이지 이름에 걸맞은 음악 듀오(내 마음 속 aka 음악치료사)로서의 역할을 탁월하게 해내고 있는 그들이다. 어쩌면 멋들어진 외면의 음들에 살포시 가려졌을 HONNE 음악의 정수는 진실되고 다정다감한 마음에 있다.
라이브 영상에서 HONNE을 보기 전까지 나는 이 두 남자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인지 몰랐다. 나긋나긋한 말투로 서울에서의 소소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음악을 소개하며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영국 신사님들. 사랑스럽다. 자신들을 본래의 명칭인 "혼"으로 불러주기를 강요하기보다는 한국에서 더 잘 알려진 "혼네"로 소개하는 배려에 한 번 더 반했다. 라이브에서 보여 준 어쿠스틱한 버전의 '하트송'을 원곡보다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 종말이 오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건,
세계 평화! 소중한 그 무엇도 온 날갯짓을 다해, 혼신을 다해 지켜 내기. 음악이 우리의 혼을 지켜 주었듯이, HONNE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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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고라이브] 혼네(HONNE) ‘no song without you’ ‘Heartsong’ㅣ딩고뮤직ㅣDingo Music
https://www.youtube.com/watch?v=5r6LkkPr790
* 가사 번역 & 음악 감상 :
https://blog.naver.com/cucuherb_story/223667755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