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by 유하





DEUS MAGNUS. 위대한 신.





1


사랑하는 나의 유령.

8월에는 당신을 위해 노래할게요.


한 줌의 그림자라도 움켜잡고 싶은

무덥고 시린 밤.





2


당신은 스스로를 운명론자라 소개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았기에

속으로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때부터였을까.

둘의 운명을 설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3


내가 원하던 것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진실된 것들.


그런데 불의의 사고처럼,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도 갖고 싶은 게 생겼다.

눈동자 앞을 선명하게 일렁이는.


완전히 갖기 위해서는

잃어야 한다.


그러한 불순한 믿음이 초래한 비극 앞에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닌,

당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하여.


푸르른 하늘 위 작은 흰 달을 보며

달랬을 그리운 시선,

술에 적신 슬픈 마음에 대하여.





4


결핍은 아름다운 소리를 따라가요.

아름다운 소리는 미처 내뱉지 못한 사랑의 언어니까요.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영화 감독이 그랬어요.

결핍이 결핍을 만나면 떨어질 수 없대요.

우리는 같은 결핍을 가졌어요.


세이렌이 되어 당신을 유혹해요.

내가 나타나고 싶을 때 불쑥 나타나

귀를 즐겁게 하고 욕망을 마구 쏟아 내고

상처가 덧나도록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요.

괴롭히고 싶고 감정이 요동치는 게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5


당신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언어로 쓸 수 있다.


단절되어 있다고 느낄 때

쓸 수 없다.


엄격한 의식이 막으려 해도

당신의 결핍과 부재가 나의 결핍과 사명을

집요하게 건드리면 쓸 수밖에 없다.

쓰는 고통이 쓸 수 없는 고통보다는 덜하므로.


아하, 당신은 나에게 세상으로 통하는 창구를 선물했던 거예요.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너무도 손쉽게 열었지요.

눈동자를 덮고 있던 검은 막을 녹였어요. 고막도.


어두운 방 안으로 내리쬐는

구원의 푸른 빛과 소리.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믿고 싶지 않다 해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이

또렷하게 의식할 새도 없이

종교와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6


유령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처음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실체라 믿었던 것이

유령임을 알게 된 순간만큼이나 두려웠다.


내가 원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당신이라는 실체가 되었을 때만큼이나.





7


나는 당신에게 하나의 세계를 선물하고 싶다.


당신이 왕이 되는 세계.

평생을 짊어져야 했던 새까만 공허 대신

두 개의 커다랗고 휘황한 달이 뜨는 곳.

아름다운 소리가 상처 받은 침묵을 부드럽게 쓸고

그 위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돋아나는 곳.

그런 세계 안에서 당신의 섬세한 감각으로

수만 가지 감정의 빛깔들을 느끼고 몸소 발산하며

마음껏 뛰놀고 춤출 수 있도록.

노래하며,

오래도록 손상된 언어와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도록.


이게 내가 사랑하는 법.





8


의식의 층위에서 기억들은 희미해져도

무의식 속에는 영원히 남는다.

적절한 신호음이 울리면

무의식에 간직되었던 기억들은

의식으로 귀환한다.

단어로, 색감으로, 풍경으로, 계절로.

무심코라고 해도 존귀한 약속으로.

간절했던 기억일수록, 아주 쉽게.


그러므로 어떤 기억들은

우리의 정신을 무한히 순환한다.


그것이 당신이 믿는다던 운명일지도.


잠들어 있던 무한대의 기호를

살살 달래 깨운다.

구체적인 숫자와 행실로 일으켜 세운다.


유령이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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