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 잔혹기
십 수년 전 스물두 살엔 25살이 어떤 나이길래 이상한 농담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때도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무례한 남자 선배들이 언니들에게 꺾였다는 둥의 헛소리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어른처럼 재킷을 걸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25살 여자 선배들은 너무너무 예뻐서, 남자들의 무례한 말은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30대가 되어서는 무례한 농담을 듣는 일이 조금 더 잦아졌고, 예전만큼 아무 타격 없이 지나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혹시 정말로, 진짜로 내 나이가 문제인가 하는 의심이 절로 들게 하는 잔혹했던 연애사 때문이었다.
내 연애사를 설명할 때 잔혹은 꼭 맞는 적절한 단어인 것만 같다. 시작은 무난했다. 30살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너무 수줍은 그 애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헤어지고 얼마 안 되어 거래하던 벤처 기업의 임원이 좋아졌다. 사업가답게 통이 컸던 그 사람은 내가 친절하면 우리 회사 상품을 밀어주고 내가 불친절하면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나는 생각했다, 스펙보단 인성을 봐야지. 그러다 12살 어린 남자애랑 사랑에 빠졌다. 순하기가 순두부 같아서 그 애와 함께 할 때면 내 마음도 같이 녹아 뭉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장거리와 데이트 비용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나이면 결혼 생각도 해야 하지 않냐는 내 안의 꼰대가 자꾸만 나를 꾸짖었다. 그다음엔 나 좋다던 벤츠 오너를 만났다. 내 돈 안 들어 좋던 연애는 폭언과 폭행으로 끝났다. 산산이 부서진 정신을 추스르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다시는 벤츠 따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남자를 만났는데, 어느 날 그 친구는 SNS에 윤석열 복권 운동과 중국인 추방을 진지하게 리그램 하기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면서, 나는 점차 남자뿐 아니라 동성 친구들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무리에서 유일하게 결혼 못한 여자로 남은 (나를 포함한) 친구들.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멀쩡한 남자가 남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GPT에게 계산시키고 브런치를 먹으며 사주로 본 결혼시기를 이야기하는 친구들. 소개팅 식당을 어디로 골랐는지와 자취방이 중랑구라는 사실로 유추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토론하는 친구들. 우리는 하나 같이 강경 결혼주의자까진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들도 나도 모두가 결혼으로 한몫 잡아볼 생각까지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인생에 결정적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통제 불가능한 손해를 입을 수는 없다는 피해의식으로 가득했다. 간간히 만나는 남자들 또한 묻지 않아도 우리와 똑 닮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0대의 연애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이라고 밖에 부를 말이 없었다. 시장에 들어선 사람은 판매나 구매 둘 중 한 자리에 서서 질서를 지켜야 했다. 30대가 된 우리 앞에 시장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열려 있었다. 곧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나는 딱히 머리를 굴려 누구를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구혼자를 저울에 올려놓고 생선처럼 재보는 사치가 허용된 적도 드물었다. 가끔 인생에 등장하는 나를 좋아하거나 내가 끌리거나 하는 남자들을 만났다. 다만, 그들과의 관계의 고나 스톱을 누르는 힘은 내 마음보다는 어느 새인가 나를 세뇌시킨 그 시장의 룰에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나는 함께 우는 소리를 하던 친구들과 연락을 줄였다.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여자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모든 과정이 피로했다. 사람을 좋아하기도 전에 이것저것 덜컥 겁을 집어먹는 일에도 지쳤고, 지친 와중에 지치지 말고 나이가 더 먹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고 끊임없이 겁을 주는 미디어, 친구, 회사 꼰대, 친척들에게 반발심이 생겼다. 너도 결국 늙기 싫으니까, 결혼하고 싶으니까 반발하는 거라는 말을 뒤로하고 친구와 지인을 대규모 차단했다.
2025년 연말은 혹독했다. 마지막 남자의 윤어게인 게시글이 피드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강박증 걸리기 직전인 이사님이 부서원들을 괴롭혀댔다. 이사실에 들일 책상을 놓고 견적 20개를 뽑아오라고 시켰다. 중국산이라서, 너무 싸서, 너무 비싸서, 높낮이 조절이 안 되어서, 이번엔 각도 조절이 안 되어서 세 번이나 반려를 때렸다. 한 해 결산만으로도 바쁜데 도움이 안 되는 갑질에 다 같이 미쳐가고 있을 때 과장님이 기지를 발휘했다. 첫 번째로 보고했던 책상 견적을 다시 인쇄해서 인턴사원과 함께 들어갔다. 이사님은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이건 진작 안 보여줬어?”
이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 잠복해 있다가 송년회 시즌에 미혼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튀어나왔다. 그 친구는 남자친구를 사귄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결혼까지 바라보기에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은밀하게, 하지만 수없이 많이 들어본 질문을 던졌다.
“너는 결혼 상대로 어떤 조건을 제일 봐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 난 뭘 너무 많이 봐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내 대답은 불쑥 나왔고, 친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더 설명하진 못했다. 방금 한 말이 진정성 넘치는 진실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면서도, 그것이 왜 진실인지 더 설명하기엔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으니까.
2026년에 들어서 나는 이성을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유지해 왔던 모든 모임을 탈퇴하고 소개팅을 부탁하는 일을 완전히 그만뒀다. 탈퇴 버튼을 누르면서, 정말로 이대로 연애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해도 미련이 없을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그때마다 아직 누군가를 만나리란 희망은 있었지만 인위적인 노력은 할 필요를 못 느끼던 시절,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각하지도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스물다섯 살 때가 떠올랐다. 그때 막연히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무엇을 갖춘 누구를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강박 없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생각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200번의 소개팅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데. 칼을 날카롭게 벼리듯 조건표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발품도 팔아가며 야무지게 고른 파트너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던데. 그래도 스무 번 책상을 물렸던 이사님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스무 번의 반려처리로 이사님은 은밀한 권력을 확인하며 즐거워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나는 베스트 순위 20위 정도 안에서 디테일이 무난하고 가성비가 좋은 옷을 사서 5년씩 입곤 한다. 내 필터링 툴이 후져서 그런 건지 사람은 애초에 필터링할 수 없는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잠정적 연애시장 은퇴라는 결단으로 드디어 평안을 찾았다. 혼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밤에 25살이 되자마자 상장폐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언니들을 생각한다. 가끔은, 연애시장의 정점에서 멀어진 나이가 되어 자유롭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