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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Nov 18. 2020

남자 둘이서 이케아를 다녀온 이야기

사람 관계의 '소통과 다짐'에 대한 고민


어제 밤늦은 시각, 비건영화제 프로그램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통영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메시지가 한 통 왔다. 내일 부산에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시간이 어떻게 되냐고 말이다.


 같이 광주의 모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문인데 서로 분야도 달랐고, (그 친구는 이과였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게 깊이 알고 지낼 기회가 없었다. 대학 다닐 무렵이었는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는데, 고맙게도 그 친구가 나를 잊지 않고 1년에 한두 번씩 연락을 줘서 어찌저찌 이어지고 있었다. 용하기도 하지.





그 친구는 20대 후반에 전라도 광주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통영으로 취업을 하게 되어서,

2010년대 중반까지는 명절이나 드문드문 주말에 그 친구가 한 번씩 광주에 오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광주의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고,

그 친구도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울산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는 연락은 몇 번씩 주고받았지만, 오히려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 최근 부산으로 터를 옮기고 나서,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던 차에 오늘 몇 년 만인지 극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마지막에 보았던 게 울산으로 오기 전이었으니 못해도 4년 만이었던 것 같다.



대뜸 이케아를 가보려 하는데 어떠냐는 친구의 말에, 나 역시 대체 그 이케아가 뭐길래 다들 난리인지 궁금하기도 해 선뜻 동행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두 남자의 이케아 탐방은 두 시간 반 동안의 탐색에도 절반이나 마무리했을까, 우리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판국이었다.


 친구에게 다음 일정도 있어서, 서둘러 이케아 중간정산을 하고 나설 때 이미 우리는 무언가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친구는 위에 도마를 얹을 수 있는 이동형 키친테이블을, 나는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을 깎아먹을 미니 과도를 (정말 엄청나게 고심한 끝에 고르고 골라서) 샀다.


다 끝났다? 고 생각하며 계산대를 나서다가 다시 비스트로 스웨덴 푸드에서 그 친구는 밀크 초콜릿을, 나는 유기농 분쇄커피를 샀고, 한술 더 떠서 핫도그 세트와 소프트 콘 아이스크림까지 풀세트로 만끽하고 나왔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던 차에, 그 친구가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케아로 출발하는 길에도 잠깐 이야기를 해줬던 다른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것이었는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우연한 기회로 소개팅?을 해서 최근 몇 차례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만나본 사람에게 마음이 잘 생기지 않고, 확신도 서지 않는다면서.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을 할 참으로 부산에 왔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친구가 “연애를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연락하는 것도 귀찮고 쉽지가 않더라”라는 말로 시작해서, 내가 최근에 겪었던 일, 반성,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공유하다 금세 해운대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고서는 한 3시간이 지났을까,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게 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의견을 묻고 싶다고 했다. 한데 친구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전후, 중간에 추가가 되고 다른 요소들이 나오면서 이 상황을 한 마디로 똑 부러지게 말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몇 가지 짚이는 점은, 지금 여자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표현을 잘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했다는 것이고, 남자는 여자에 대한 호감(매력)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경제형편(직업, 옷, 집)도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한 네 차례 정도 만나는 동안 모든 비용을 자신이 다 지불해서 마치 지갑, 셔틀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로 상대방이 행동을 했다고 하면,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지만,  서로 본래 의도와 다르게 오해가 쌓여 골이 깊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일단, 네 차례 만나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동안에는  드라이브를 하고, 영화 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데, 물어보니 막상 서로의 관심사나 취미에 대한 대화는 잘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돌아가서 전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와 이어졌는데, 그녀와 만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탓에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가볍게 같이 맥주 한 잔 하는 것조차 안됐고, 그 사람은 음주를 정말 싫어했다고 했다.



동창에게 나는,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노력과 시도를 다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이어서 전에 함께 해보지 못했던 그런 것들부터 같이 해보는 것은 혹시 생각해보았는지, 이케아도 그 사람과 같이 와봤다면 어땠을지를 물었다. 친구는 거기까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매력이 확 당겨서? 만나는 사람도 나중에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 반드시 올 텐데, 그때 더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든 할 수 있는 대화와 공감의 시도에 최선을 다 해봐야 한다고. 그러면서 최근에 일독했던 <러브 팩추얼리>(로라 무차)나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에린 K.레너드)을 읽어보길 추천했다. 윤홍준 작가의 <자존감 수업> 관련 세바시 강연도 한 번 청취해보길 권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소 몇 달을 옆에서 함께 알고 지내다 깊어진 사이였다. 내 부족한 점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제대로 노력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었던 것들도 생각이 났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반성을 하고, 책을 읽어보면서 깨달은 점들이지만.


그래서 나의 그런 이야기들도 친구에게 잊지 않고 함께 전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하고 다짐을 했다면 일단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앞으로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함께 이케아를 다시 찾게 될 순간을 상상해보았다. 좋은 사람이니 필시 그에 못지않은 좋은 짝을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어서 그 친구가 이케아 쇼룸을 돌면서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가족을 꾸리면 장차 저런 모습으로 집을 꾸며놓고 살고 싶다고. (아 그리고 친구 녀석이 최근에 큰 맘먹고 차도 바꾸었는데, 패밀리카로 바꾸는 것까지도 고민했다고 했다. 분명 가슴 한편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절대 다 큰 남자 둘이 저녁시간에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해서 스트레스에 받친 것은 아니다.



친구로서 안타깝지 않은가, 이케아처럼 좋은 공간, 좋은 기회를 남자 둘이 간다는 게.(이렇게 환경과 사람, 지속 가능한 가치를 기반으로 디자인된 기업, 공간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방문했던 곳이라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들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내가 이케아 계산대를 지나자마자 커피를 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커피에 관심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광주에서 만났던 언젠가, 그 친구에게 직접 핸드드립을 내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산책로에서 말이다. 그것도 거의 4-5년 전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최근에 당류를 줄이기로 정했기 때문에, 그 매장에서 만난 모든 당 제품을 무미건조하게? 보고 지나쳤는데, 그 친구가 초콜릿을 사는 것을 보고 선물용이려나 싶었다. 헌데 나중에 듣고 보니 자기가 먹으려고 샀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나와 다른 취향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 그 친구와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설적이게도 나 역시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다.


나를 다시 보고 더 넓힐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정말 오랜만에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 삶을 제대로 챙기고 있었는지 하는 반성도 함께. (언젠가 계속)


- 2020. 8. 29.  해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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