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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May 12. 2024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에 대해

익숙한 것들과의 거리 #3


“왜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과 힘든 일을 사서 하는 걸까요?”


 주말 오후,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을 읽고서, 3명이서 3시간 꽉 채운 모임을 마치고 길을 나서다, 혼잣말인지 궁금해서인지 모를 말을 들었다.

 (추측컨대) 프로필 촬영을 위해 샐러드로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는 그와, 주말에 굳이 운동한다며 버스며 지하철을 놔두고 자전거를 끌고 나온 나, 그나 나나 그냥 편하게 살 길을 두고 무엇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하는지. 약간의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음, 글쎄요. 자신이 지향하는 것,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나 관철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이것만 끝나봐라, 맛있는 거 다 먹어줄게 싶은 그의 혼잣말에 나는 다큐로 답을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생각해보니, 지난번에도 상황이 좀 달랐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무엇을 위해서?’ 싶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건 언젠가 하루, 멀리서 온 손님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흩어지던 밤이었다. 그날 말미에 Y씨를 배웅하던 중, 그가 지금 바로 경의선을 탈지, 조금 기다렸다 KTX를 탈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때때로 가장 빨리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거나, 아니면 가장 저렴한 편을 택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목적에 가장 합리적인 게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행동이었다.(고 변명해본다)


 그러다 밤 10시가 이미 지나던 차였고, 집에 도착하면 11시도 훌쩍 넘을 테니, 힘들게 전철을 타지 말고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KTX로 가는 게 빠를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도 퍼뜩 “그렇죠, 우리가 무슨 이 정도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굳이 고생을...”이라고 말을 했지만, 그냥 나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저도 매번 그걸 놓고 고민하곤 해요. 그리고 아직도 그게 잘 안되네요. 저 자신도 참 답답할 때가 있어요.”


 두 사람 모두 삶에서나 일에서나 이 정도까지 아껴야하나? 싶을 정도로 구는 닮은 점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Y와 식사를 하다보면, 매번 이 사람은 참 '찐'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밥 한 톨 반찬 하나하나 깨끗이 먹는 그를 보면서, 나도 꽤나 깐깐하고 절약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견줄 수가 없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냥 백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백기였다. 잊고 있던 생활습관, 다짐 같은 걸 다시 불러일으키는 그런 긍정적인 자극 말이다.

 어떻게 보면 좀 짠내나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단순히 아끼는 것이라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실천하는 삶의 의지로 읽었으면 한다.


 사실 그의 절약은 몸에 붙은 생활습관에 가깝다면, 나의 그것은 일종의 효율과 계산의 영역에 가까웠다. 물론 개인의 절약뿐 아니라 공유경제, 그리고 각종 새활용을 표방하고 이를 지지하지만, 후천적인 것이라 ‘찐’을 못 당해 내겠다고 한 것이다.

 멀쩡히 외제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면, 보통은 그냥 편하게 차를 끌고 와서는 한산할 때에 다시 타고 돌아가면 될 텐데 굳이 일부러 수고로움을 샀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실 무언가를 지향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거창한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좋은 말, 좋은 습관, 건강한 음식만 하더라도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고들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의사는 항상 뻔한 말, 당연한 진단을 한다고도 말한다. 지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진단하고 실천할 것들은 이미 잔뜩 이야기되었지만, 시작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처럼.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은 결국 뻔한 말로 이어진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면서 살자고.


- 2022. 1. 15.

앞으로 살아갈 날, 겪어볼 일이 더 많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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