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은 탱크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by 가다은

봄은 탱크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날의 새벽은 너무 조용했다.

총성이 없었고 선언도 없었다.

탱크가 움직였고 병력이 국회를 향했다.

무너진 것은 담장이 아니라 헌법이었고

부서진 것은 유리창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누구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의 부재, 이렇게 거대한 공백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장태완

이름 하나가 시대를 밀고 있었던 걸,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단지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아니었다.

‘국가’보다 ‘국민’을 선택한 단 한 사람이었다.


1979년 겨울

서울은 봄을 잃었다.

그러나 그 겨울 속에서도

누군가는 계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2024년을 건너

우리는 또다시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여기 장태완은 없었고 그와 같은 결단도 없었다.

707의 병력은 국회로 향했고

계엄 포고령은 조용히 배포되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시간이 없었다”

“법을 몰랐다”

“그저 따랐을 뿐이다”


그 말들은 회피의 언어이자, 체념의 리듬이었다.

그러나 무지와 맹종은

가장 조용한 폭력이 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역사로부터 배운 적이 있다.

그날의 군은 시민을 지키지 않았다.

그날의 시민은 자신을 지켜야 했다.


디지털 공간은 숨 가쁘게 돌았고

포고령의 문장은 실시간으로 전파되었다.

이제는 ‘모른다’는 말이 핑계가 될 수 없는 시대다.


MZ세대는 순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믿지 않고, 대신 감지한다.

그들은 조직되지 않아도 움직이고, 명분보다 감각으로 저항한다.

그들의 광장은 손바닥 안의 화면이었고, 그들의 구호는 #으로 시작됐다.


우리는 달라졌을까.

아니, 달라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봄을 다시 불러오는 일일 것이다.

군이 권력을 위해 시민을 겨눈 순간,

그 군은 공공의 수호자가 아니다.

그건 단지 정권의 장갑차일 뿐이다.

장태완은 영웅이 아니라,

모든 군인과 모든 시민이 닿아야 할 최소한의 기준선이었다.

그를 부재로 남겨두는 한,

우리는 계속 탱크 앞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서울의 봄은 스스로 오는 계절이 아니다.

그건 지켜낸 자만이 맞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그 봄을 지키려 했고, 우리는

그 봄을 다시 묻는다.

우리 스스로 장태완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