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맥스 시덴토프

Seriously Not Serious: 정답만 찾는 세상에 던지는 깽판

by 가다은


맥스 시덴토프: Seriously Not Serious:

정답만 찾는 세상에 던지는 기분 좋은 깽판


서울역 근처,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의 3층 전시실을 거닐다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랄까, 낯섦이 펼쳐진다. 우리가 미술관 하면 떠올리는 ‘조용히 뒷짐 지고 감상하는 엄숙함’은 이곳에 없다. 나미비아에서 온 괴짜 예술가 맥스 시덴토프는 “예술은 고귀해야 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건넨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틀에 박힌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좀 엉망이면 어때?”라고 말을 거는 해방의 놀이터다.



■ 작가 이야기: 장난 속에 뼈가 있는 천재 전략가


맥스 시덴토프는 원래 광고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바이럴 예술가‘라고 부른다.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좁은 담벼락을 넘어 우리 스마트폰 속이나 집 앞 골목까지 스며들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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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난은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 번은 사생활 침해로 화가 난 이웃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오히려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이웃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뻔뻔한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단순히 남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 빈틈을 유쾌하게 꼬집는 그만의 방식이다.



■ 전시장 산책: 일상이 마법이 되는 7가지 순간


전시는 총 7개의 방을 지나며 우리 안에 쌓인 딱딱한 생각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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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안녕, 내 이름은 맥스야


전시의 시작은 작가 본인의 얼굴이다. 변기통에 박혀 있거나, 묘비 앞에 “5분 뒤에 올게요”라는 메모만 남기고 땅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나‘라는 존재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즐거운 놀이처럼 바라보자는 작가의 첫 번째 인사다. 그리고 실물 크기의 정교한 조각은 작가 이전에 관람자의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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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친구들


이곳은 혼자였다면 절대 못 했을 엉뚱한 상상들이 친구들을 만나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보여준다. <여권 사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증명사진 속 얼굴은 아주 단정하지만, 카메라 밖 발밑은 불이 붙어 있거나 친구들이 기괴한 포즈로 받쳐주고 있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모습 뒤에는 늘 누군가의 헌신과 유쾌한 공모가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CHAPTER 3. Mature Content


우리는 보통 성숙함 하면 진지한 것을 떠올리지만, 맥스는 이를 사물이 가진 깊은 유머로 해석한다. 바게트 빵을 슬리퍼로 신고 소시지를 손가락처럼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이게 뭐야?” 싶지만, 곧 사물을 바라보던 우리의 낡은 안경이 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특히 <시대정신>이라는 작품은 압권이다. 구석진 벽에 자신을 가둔 채 발밑까지 페인트칠을 해버린 노인의 모습은, 지금의 이익만 좇다가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린 우리 인류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기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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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퍼즐로 만든 우리


예술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방이다. 무려 8만 개의 퍼즐 조각으로 만든 거대한 얼굴은 혼자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다. 모르는 타인들이 한 조각씩 힘을 보태어 얼굴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감동적인 소설이 된다.



CHAPTER 5. 진짜 현실은 엉망진창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온리 휴먼> 시리즈는 SNS 속의 매끈한 모습 대신, 땀 흘리고 비틀거리는 진짜 우리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작가는 “이게 진짜 너의 모습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야”라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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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시간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속옷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작가의 거대한 조각상 <아마추어들>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내던지며 관객들에게 “나를 마음껏 그려보세요”라고 권한다. 잘 그릴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시작하는 아마추어의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이곳에서 예술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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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우리 동네의 영웅


이제 예술은 미술관을 나가 서울의 거리로 향한다. 지하철 노선도나 비상구 표지판 같은 흔한 물건들이 맥스의 손길을 거쳐 예술이 된다. 전시장을 나가는 순간, 당신은 길가의 소화전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게 될 것이다.



■ 한국 팬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


이번 서울 전시에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들이 숨어 있다.


▪거대한 퍼즐: 정답 찾기에 지친 한국 사람들에게 “완성되지 않아도 그 과정이 아주 즐겁다”라는 위로를 건넨다.


▪길치들을 위한 농담: 복잡한 한국의 안내 시스템을 비튼 작품이다. 출구라고 믿고 갔는데 벽이 나오는 상황은 우리가 남이 정해준 길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믿고 사는지 묻는다.


▪익숙한 물건의 변신: 한국에서 흔히 보는 생활용품들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엉뚱한 작품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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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함이라는 파도를 넘는 유쾌한 방해꾼의 말


인생은 이미 심각하다. 그러니 예술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가 나이가 들며 얻는 ’성숙함‘이란 엄격함이나 진지함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한 호기심을 지키며 일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비틀어 보는 여유와 재치다. 사진 한 장에 완벽을 담으려 애쓰는 만들어지는 삶보다 비틀거리고 땀 흘리는 어설픈 진짜 현실이 훨씬 인간적이고 아름답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창조의 즐거움이 시작되며, 실패할 권리야말로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다. 미술관의 높은 성벽을 허물고 거리로 내려온 예술의 농담이 일상의 흔한 표지판이나 소화전조차 다르게 보이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이 정답을 강요하며 지나치게 진지해졌다면, 그때가 바로 당신이 유쾌한 방해꾼이 되어 삶의 경쾌한 리듬을 회복해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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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에게 이 전시가 필요한 이유


우리는 너무 진지하게 산다. 성공해야 하고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숨이 막힌다. 맥스 시덴토프의 전시는 그런 우리에게 잠시 정신적 휴가를 준다.


전시장은 화려한 색감 덕분에 사진 찍기에도 좋지만, 그 속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단순히 웃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상을 뒤집어 보게 만든다. 그는 유머라는 부드러운 무기로 세상의 벽을 허무는 혁명가다.


마지막 방을 나와 밖으로 걸어 나올 때, 가슴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저렇게 장난쳐도 예술이 되는데, 내 삶도 조금은 엉터리여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도감이 든다.


맥스 시덴토프는 말한다. “너무 진지해졌다면, 그때가 바로 장난을 칠 타이밍이다.” 이 전시는 그림을 감상하는 곳이라기보다, 당신을 가두고 있던 진지함이라는 감옥에서 잠시 탈출하는 비상구다. 전시장 안에서 한 번이라도 피식 웃었다면, 당신은 이미 이 유쾌한 예술의 주인공이다.



한 줄 평: 정답만 찾는 세상에 던져진, 가장 무해하고도 강력한 예술적 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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