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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12. 2024

폭력의 따스함이 전체의 차가움으로

[리뷰]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진보에 폭력이란


“폭력은 이미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관점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결국 같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본문 중에서, 19쪽


폭력은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봄의 꽃잎처럼 처음에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그 위험이 한순간도 무해 하지 않음을 예리하게 고발한다. 저자 에릭 베르네르는 인간의 무심함과 안일함을 거울처럼 비춘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자유와 폭력의 정당성으로 논쟁의 양극이었다.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둘의 저서와 견해를 바탕으로 대립을 엮어가며 폭력의 본질과 그로써 형성되는 전체주의의 위험을 고찰한다.     


카뮈가 믿었던 인간의 윤리는 폭력과 함께할 수 없으며, 오직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지킬 때만 이루어진다는 신념이었다. 그는 자유란 상대를 억압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고, 폭력 앞에서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여겼다.     



반면 사르트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그는 혁명이 비극적으로 필요할 때, 불가피한 폭력도 허용된다고 보았다. 사르트르의 주장은 현실에 뿌리를 두었고,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을 위해 폭력이 때로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하고 절박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책은 폭력과 전체주의로 향하는 인간의 불가피한 길을 바라본다. 카뮈가 고수한 윤리적 순수성은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야 할 마지막 경계였으며, 사르트르의 타협적 현실주의는 그 경계가 무너질 때, 폭력의 싹이 자라나는 터전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는 폭력의 본질을 고찰하고, 어떻게 하나의 전체주의 체제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밝혀준다. 


카뮈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바람처럼 서늘한 진실이 깃들어 있고, 사르트르의 언어에는 거친 땅을 일구는 열망이 묻어 있다. 에릭의 책은 두 철학자의 목소리를 절묘하게 엮어, 폭력이 어떻게 하나의 자유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그것을 잠식하는 함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는 이런 대립 속에서 두 사상가의 철학적 경고를 깊이 새기게 된다.     


우리는 저자의 문장 속에서 폭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예민하게 퍼져나가며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지 경험하게 된다. 저자가 묘사하는 폭력은 하나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점차 개인의 일상과 공동체의 틀을 서서히 부식시킨다. 그는 이 과정에서 폭력이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서서히 퍼져 나가, 어느 순간 우리를 옥죄는 차가운 그물로 변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 에릭은 폭력이 단순한 사건이나 충돌을 넘어, 한 사회의 체계와 틀을 서서히 잠식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허용 속에 뿌리를 내리며, 공포와 절망을 양분 삼아 자라는, 어느새 거대해진 나무처럼 말이다. 폭력과 전체주의는 쌍둥이의 얼굴을 한 채 세상을 갉아먹으며 나아간다.     


책은 역사적 사례와 현대적 고찰을 함유하며, 개인의 작은 선택들이 전체주의로 이어지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선택의 연쇄 속에서 개인은 의도치 않더라도 폭력의 공모자가 되어, 전체주의의 진군에 복무하는 하나의 조각으로 전락한다. 독자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봄볕처럼 은밀히 스며들던 폭력이 겨울 볕에서 자라는 얼음조각의 변모를 목격하게 만든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부조리의 철학자 카뮈는 인간의 자유와 타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혁명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폭력과 억압을 거부하며, 자유가 억압당하지 않는 인간의 연합을 꿈꿨다. 그의 눈에 공산주의는 또 다른 절대적 권력으로 파시즘과 다르지 않은 전체주의의 길임을 주장했다.     


반면, 앙가주망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참여와 행동을 강조하며, 이상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폭력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그는 인간 본성 속 투쟁을 인정하며, 질서를 위해 타협을 요구하는 홉스적 시선을 따랐다. 사르트르에게 타자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체제는 강력한 힘과 지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에릭 베르네르는 『폭력에서 전체주의로』에서 두 철학자의 대립을 통해 폭력이 어떻게 사회를 잠식해 전체주의로 이어지는지를 통찰한다. 카뮈의 부조리와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그는 묻는다. 우리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선택하는 길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카뮈가 외친 인간의 존엄과 사르트르가 고집한 혁명의 의지가 교차하는 곳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의 민낯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화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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