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속죄>
500페이지가 넘는 지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덮을 때 쯤엔 너무나 놀라워서 어찌할 줄을 모르게 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고, 그 안에서 작가는 독자들을 이리저리 혀안에서 굴릴 수 있다지만 속죄의 경우에는 긍정적으로 '놀아난' 기분까지 들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그렇구나, 그래서 책의 제목이 '속죄'구나 라고 깨닫다가도 어느 순간 '이게 속죄가 된건가?' 하는 의문과 작가가 던져놓은 속죄라는 화두에 누군가와 토론하고 싶게 만든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브리오니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13살 때부터 연극을 직접 만들고 어린이들을 모아 홍보도 하고 집 안에서 연극을 준비하는 아이다. 13살은 새로운 세상을 창작하기는 커녕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벅찬 나이다. 그럼에도 브리오니는 자신의 한계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만들어낸다.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바로 자신이 이해한 세상의 벽 밖에도 더 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죄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 문제는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화두에 오르게 된다. 그것도 작가의 의지대로 이야기가 진행된 만큼만-미완성된 상태로- 읽어 볼 수 있다.
창의적이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브리오니는 기어이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불행한 사건을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고 속죄의 뜻을 담아 그는 이야기를 각색한다.
마지막 두페이지를 남기고 나서야 사실을 고백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읽었던 이 모든 이야기가 지어진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에 배신감을 느낀다. 모든 소설은 하나의 창작이거늘 우리는 왜 배신감을 느끼게 될까?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우리에게 건내준 하나의 작은 세상을 건네받기 때문이다. 사실 니 손에 읽은 니가 읽었던 얘기의 결정적 부분은 사실이 아니란다, 라며 이언 매큐언이 브리오니의 이름을 빌려 독자를 쥐락펴락하는데 꼭 놀림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지막 한페이지가 남은 판국에 독자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지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오히려 즐거워진다. 반전 아닌 반전을 읽은 짜릿한 재미가 느껴지는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