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삶에 대한 명증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by 김세원


보통의 액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한 무리의 조연쯤 되는 캐릭터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는데, 이야기에 중요한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그것이다.

레버넌트는 바로 그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돌아온' 남자 '휴 글래스'에 대한 이야기이다.(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한껏 기대를 가지고 보았음에도 그 기대를 뛰어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신통방통한 앵글 덕분이다.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전작 '버드맨'에서도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일반적이지 않은 앵글을 사용하면서-영화 대부분에서 롱테이크를 사용하며, 대본 15장 분량을 한 테이크에 찍기도 했다-큰 인상을 남겼다. '버드맨'에서 앵글은 주로 주인공의 턱 밑에 있기 때문에 집중하고 보면 울렁증이 생길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주인공을 비춘다. 이는 '레버넌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아래 사진처럼 캐릭터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극중 인물들을 찍기 때문에, 관객은 멀리 떨어진 관찰자가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의 동료의 시각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 또한 위-아래, 왼쪽-오른쪽의 단순한 직선 방식이 아닌 옛날 텔레비전 브라운관처럼 곡선으로 움직이며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인물 중심의 앵글에서도 결코 자연 풍경을 놓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인간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주인공 휴 글래스를 죽음에 문턱으로 가게 만든 곰은 숲 속에서 만난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공격했을 뿐이다. 곰의 공격이 그의 아들을 죽게 의도하거나, 그가 복수를 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극 중 인물들의 앞에 강이 있거나,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눈이 내리는 것. 모두 이유나 의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연 앞에 인간은 물살에 떠내려가고, 오한에 죽음의 위험을 겪고 폭설로 위기에 처하기도, 반대로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의 무심한 모습을 광활하게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키고 있다.

휴 글래스가 싸우는 대상은 자신을 '배신한 동료'가 아니라, 그의 살고자 하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거기에 존재하는 '자연'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휴 글래스는 배신자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신 혹은 자연에 그의 목숨을 맡긴다. 마치 자신의 목숨 또한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자연에 순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처럼, 죽음이 우리 눈앞에 다다를 때까지 끊임없이 돈을 던지고 싸우라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바이며, 이는 주인공 휴 글래스가 첫 장면에서 직접 대사를 통해하는 말이기도 하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영화 속 장면에는 죽음에 맞서 싸우며 휴 글래스가 힘겹게 내쉬는 입김과 설산에 뿌옇게 낀 안개가 교차된다. 이는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 결국 자연의 항상성을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배신자를 응징하기 위해 거쳐온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은 휴 글래스 본인이 아들에게도 조언했듯이 '숨이 붙어있는 한 끝까지 싸우는' 자신을 증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