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목마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by 김세원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시한폭탄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감정이 폭발해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고, 사랑하는 친구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상처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아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쩌면 우리모두 지금의 우리가 된 것, 그것은 그 때의 상처가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 내게 전화 너머로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말하던 "상처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만큼 상처를 받는다"는 목소리가 책을 읽는 내내 귓가에 머물렀다. 다자키 쓰쿠루가 방바닥에 누워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의 다른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에 쓰쿠루는 놀랐을 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빼면 완벽해질 것 같았던 친구들에게 사실은 자신이 다른 이들만큼 소중하고, 결국 쓰쿠루의 존재로 우정은 하나 둘 떠나가게 되었으므로.

성숙한 30대에 쓰쿠루가 죽음처럼 여겼던 시기에 대해 의문을 파헤치려 순례를 떠나도, 결국 그 순례가 바꿀 수 있는 건 우리의 과거가 아닌 미래이다. 사실 덕분에 이 책이 한동안 나에게 마음의 여진을 남겨주었다. 그러니까 순례를 떠난 것은 처음의 이유처럼 그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남아있으므로.

쓰쿠루와 관련이 있는 두 여인인 사라와 유즈의 이야기가 많은 것이 궁금한 채 이야기 속에 숨겨져, 마지막장을 넘겼는데도 책 뒤가 더 있을 것 같아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아직도 쓰쿠루와 삶이,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마도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자, 여기 자네한테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있어. 먼저 나쁜 뉴스. 지금 자네의 손톱 또는 발톱을 펜치로 뽑으려 한다. 안됐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다. 절대 뒤집을 수 없다.' (중략)'다음은 좋은 뉴스. 좋은 뉴스란, 손톱을 뽑을 건지 발톱을 뽑을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거야. 자, 어느 쪽으로 할 텐가. 10초 내에 결정해야 해. 만일 스스로 어느 한쪽을 정하지 않으면 손과 발 두 쪽을 다 뽑아 버릴 거야.'

(중략)'좋아, 그럼 발로 정해졌어. 지금부터 이놈으로 자네 발톱을 뽑도록 하지. 그 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 왜 손톱이 아니라 발톱을 선택했지?' 내가 물어봐. 상대는 이렇게 대답해.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아픈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발톱으로 한 겁니다.'

난 그 친구와 따스한 악수를 나누고 이렇게 말해.

'진짜 인생에 온 걸 환영해.' 라고.

웰컴 투 리얼 라이프. - p246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 p364

사라는 나에게 호감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호감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 아주 많다. 인생은 길고 때로는 가혹하다. 희생자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무르고 쉽게 상처 입고 자르면 피가 흐르게 되어 있다. -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