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 - 심은록
마르틴 키펜베르거,
마우리치오 카텔란,
장 미셸 바스키아,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피터 도이그,
애니시 카푸어,
천이페이,
쩡판즈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명의 리스트이다.
이 책의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더 자극적(?)이다.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화가와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개 그림으로 페이지를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이 책은 설명해주는 작품의 그림이 없는 것도 있다. 300페이지가 안 되는 미술책에 이만큼 내용이 꽉 들어있기도 힘든 것 같다.
책의 저자 심은록 씨의 이력도 특이하다. 프랑스에서 사회학 석사-철학 인문학 박사를 취득하고,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매력적인 이력보다 더 매력적인 건 그의 날카로운 문체다. 책을 읽으며 작가는 일반적인 사유의 깊이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 약력을 보니 사회학과 철학을 전공한 걸 보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미술에 대한 책을 쓸 때 다른 분야의 지식을 알고 있으면 더 넓은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되나 보다.
이 책을 잘 나타내는 문장은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무엇이 그들은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다. 이 책은 프랑스의 미술시장분석회사인 아트프라이스의 2010년 보고서를 기준으로, 1955년 이후 출생한 작가 중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린 화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심은록 씨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10명의 작가들의 예술적 고국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더욱 작품과 현시대상황에 대한 이해가 폭넓게 된다. 심은록 씨는 이러한 10명의 화가들의 정체성을 구분하여 테마로 짝짓는다.
작가가 얼마나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한가 하면, 내가 싫어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에 대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정도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 남의 주목을 끄는 작가로만 생각해왔다. 악동 같은 그의 행적들마저 마음에 안 들어서 항상 그의 작품들-이런 것들-이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문장을 읽은 순간 머리가 둥 울렸다. 정말로, 그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생명의 죽음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죽은 상어와, 소의 죽은 머리와 살아있는 파리. 그리고 다시 죽어가는 파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이 책을 통해 피터 도이그와 쩡판즈 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이 생겼다. 피터 도이그는 서정적인 그림으로 보는 이들을 현혹시킨다. 나르시스가 물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물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대미술답지 않게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삶을 편안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집에 꼭 걸어놓고 싶은 분위기다.
<컨트리 락, 피터 도이그>
<블로터, 피터도이그>
쩡판즈의 그림은 초기 작품들 같은 경우 사람을 너무 인위적으로 묘사해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중국이 발전하는 모습에 대한 단상이라고 한다. 후기 작품들 같은 경우에 인물에 대한 초상화들이 인상적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고기를 함께 그린 그림에서 그는 인물이 고기보다 더 흐릿하게 그렸다. 마치 인물이 가짜이고 고기가 진짜인 것처럼 인물의 아래쪽만 흘러내린다. 중국이 발전하면서 그 시대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분위기를 그림으로 잘 표현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양인을 그려도 중국과 아시아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다.
<최후의 만찬, 쩡판즈>
마지막을 남기고 싶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의외로 전혀 미술과 상관없는 제프 쿤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테마 아래 여러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의견 중 하나이다.
사랑은 가장 오래된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젊고 아름답고 늘 신선한 감정이다. 연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사춘기 때처럼 심장이 뛰며 늘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 (중략)
에로스는 결코 추할 수 없다. 그가 머무르는 곳에는 늘 꽃이 피고 향기롭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가 떠나면 꽃이 지고 향기가 사라진다. 에로스는 예술가다. 에로스가 마음에 머물면(사랑을 하게 되면), 갑자기 누구나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찬양하는 노래(사랑을 주제로 한 유행가나 가곡 등)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멜로디에 가슴이 뛰고 온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은 이전 시대의 미술 이상으로 그 작가와 작가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같다. 이 책은 한번 읽으면 요새 화가들은 도대체 그림을 왜 이렇게(?) 그리는지에 대해 의문을 많이 풀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