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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07. 2019

책으로 만나는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지인들에게 몇 번이나 좋은 책으로 추천받았건만 선뜻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것처럼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오주석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구어체 그대로 사용하여 직접 수업을 듣는 것 같아서 책을 마치고 나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놀랐던 부분은 우리의 옛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글을 쓸 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 썼기 때문에 그림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인데도 너무나 '내 위주'로 그림을 봐왔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경건하게 배우면서 책을 읽자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이 책은 한국의 고미술뿐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미술 교과서와 역사교과서에 모두 나오지 않을 흥미진진한 얘기를 읽자면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까지 번져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추사 김정희 같은 경우죠. 정말 실력이 쟁쟁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썩 잘난 척을 하는데, 이것은 사실 잘난 척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상당한 실력이 있으니 나를 높은 관직에 써주면 숨은 실력을 발휘해 백성들에게 훌륭한 정치를 해낼 수 있다, 즉 요즘 말로 자기 PR에 해당하는 시위를 하는 셈이지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전통은 동아시에서 연원이 아주 오랜 문화의 하나입니다.
-p215



흔히 조선의 문화가 상당히 얌전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오주석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조선시대는 해학적인 문화를 가진 시대였다. 특히 학업에 정진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랑하고, 본인을 소재로 유머까지 구사한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다. 오주석 선생님 본인 역시 강연에서 본인에 대한 자신감을 잘 드러내시는데, 마치 능력은 있지만 정계에 진출하지 않은 조선의 선비를 보는 것 같았다.


단원이 글씨도 이렇게 잘 썼기 때문에 단원 단원 하는 거지, 그림만 잘 그렸던 게 아닙니다. (海龍王處也橫行)이라, 단원' 즉 '바닷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이거 참 멋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익살도 익살이지만 그 안에 또 촌철살인하는 게 있죠. 네가 나중에 고관이 되었어도 하늘이 준 네 타고난 천성대로 옆으로 삐딱하게 걸으면서 할 말 다 해야지, 임금님 앞이라고 쭈뼛쭈뼛 엉거주춤 앞뒤로 기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거죠! 장난스러우면서도 뜻은 깊고, 참 옛 분들은 이런 식으로 놀았습니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 뜻이 얼마나 장합니까?
-p220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해탐노화도인데, 그림의 소재와 그림을 그린 목적. 그리고 그림에 쓰여있는 화제가 너무나 적절하여 나도 모르게 이마를 탁 치게 된다.


갈대꽃 '로'자는 과거에 합격한 선비한테 임금이 하사하는 고기 '려'자와 발음이 비슷하여 갈대꽃을 꼭 붙드는 것은 과거 합격을 의미하고 게 두 마리는 소과, 대과 두 과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다. 또한 게딱지는 한자로 '갑'이니까 '갑을병정...' 중 첫 번째로, 즉 1등으로 시험에 붙으라고 시험 떠나는 길에 선물로 준 그림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비단 미술에 대해서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매우 분명하게 표현한다.  


요즘 역사 서술의 원칙은 근대사, 현대사로 올수록, 즉 우리 시대와 가까울수록 더 많이 상세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사는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좀 덜 가르쳐야 하고, 근대사는 아무리 본받을 것이 적어도 많이 가르쳐야 된다는 기계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혹시 문교부에 근무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그 점 재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이며 영조, 정조 때에 배울 만한 훌륭한 사례가 많았는데 그 부분은 대충대충 가르치고, 나라 망하는 부분인 19세기 말 20세기 쪽만 잔뜩 가르쳐서 열등감을 주면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고 느끼며, 무슨 자부심을 키우라는 겁니까? 참 이상한 발상입니다.
-p165



나 또한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우리의 역사가 어째서 훌륭한지 보다는 어떻게 핍박받았는지에 대해 훨씬 많은 설명을 들었다. 한국 역사의 좋은 점을 알게 되면 본인의 민족에 대해 자부심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고, 이에 따라 한국사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순순환이 일어날 거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상설전시관에서도 그림이 항상 전시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박물관에 가 보면 서화 전시실이 다른 전시실보다도 더 컴컴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작품 보호를 위해 조명을 좀 어둡게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그러나 100 룩 수로 보여주더라도 1년에 2개월 이상 전시되면 그림을 교체해야 합니다. 작품에게 쉴 틈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지 않고 계속 전시하면 그림이 빛의 에너지에 두드려 맞은 결과, 이렇듯 어두워집니다.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작품이 딱딱하게 경화가 되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예 안전하게끔 6주일 간격으로 그림을 교체합니다. 여러분, 박물관에 갔는데 같은 그림이 1년 내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요? 큰일 납니다! 당장 신문에라도 써서 교체 전시하라고 압력을 가하십시오. 그것은 문화재 보존이 아니라 파괴입니다.
-p223



오주석 선생님은 무조건적으로 그림에 대한 칭찬만 쓴 것은 아니다. 여기에 쓰진 못하지만 옛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못 그렸다고 한 작품도 여러 점이다.



이렇게 미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관련 지식을 전파해주신 오주석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검색을 하니 안타깝게도 2005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아래 글은 오주석 씨에 책에 쓰신 미술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쓰신 글이다. 이 글의 대상이 비록 나는 아닐지라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바라봐야겠다.  


화가는 우선 치열한  쟁이로 출발하지만 동시에 한 시대 최고의 문화인이 되어야 한다. 비평가는 감상자의 대표로서 이러한 화가의 속내를 예민하게 느끼는 심안을 갖추어야 한다. 심안은 종합적 문화 소양과 깨끗한 영혼에서 우러나온다. 한 작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거나 또는 단호하게 비판하는 정직한 심미안, 모든 사람이 우러러볼 탁월한 안목이 그립다.  




한국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심지어 관심이 전혀 없어도!-故오주석 선생님의 책만 있으면, 같은 미술작품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위대한 작품으로 보일 것이다. 아름다운 한국 미술을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조우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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