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원 민주주의

비축생활 VOL.11 지금은 공원 시대

by 문화비축기지

코로나19 사태로 점점 더 중요한 공간이 되어가는 도시공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의제.


글 김진유 | 그림 최지수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 인공 구조물로 뒤덮인 도시에 살면서도 늘 자연을 동경한다.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를 방증한다. 도시 공원은 인간의 이런 특성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자연에서 분리됨으로써 발생하는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인간은 공원을 발명했다.


도심에 심은 한 줌의 자연


초기 도시공원은 도시 한가운데 힐링을 위한 자연을 집적하는 중앙공원의 형태였다. 산업혁명으로 온 도시가 석탄재와 스모그로 뒤덮이며 풀 한 포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인간의 건강한 삶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우며 주창한 것이 전원도시(Garden City)(1898)였다. 그는 농지로 둘러싸인 중소 규모 도시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의 품에 안긴 도시 형태를 꿈꿨는데, 흥미롭게도 외곽의 자연과는 별개로 각 도시 중심에 중앙공원(Central Park)을 두었다. 공원이 순수한 자연이나 농지와는 지위와 기능이 다른 공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앙공원은 미국의 조경 건축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영국 출신의 건축가 캘버트 보(Calvert Vaux)가 그보다 앞서 설계한 뉴욕의 센트럴파크(1858)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당시 여론에 힘입어 차차 도시에 자리 잡게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 도시에서 중앙공원을 찾을 수 있는 것 역시 이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도시가 성장하며 공원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대도시에서는 제2, 제3의 중앙공원이 생겨나 도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공원의 본질적인 속성, 민주주의


도시의 정체성은 계속 변화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상업의 중심 이거나 생산과 소비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지고 항공 산업의 발달로 세계화가 진전되 며 이제 어떤 도시는 관광이 주된 기능이 되었다. 이른바 ‘관광도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공원의 중요성이 시시각각 증대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가까운 미래에는 ‘공원도시’라는 말이 생길지 모른다. 19세기 전원도시 운동에 버금가는 공원도시 운동(Park City Movement)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재 공원은 전체 도시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 모두의 공동 정원’을 뜻하는 공원(公園)은 그 정의부터 민주적인 공간이다. 누군가 공원을 사유화한다면 우리는 분노하며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절대 권력자나 대기업 총수라도 마찬가 지다. 반대로 노숙자라고 해서 공원 이용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공원은 이용자의 지위나 재력에 따라 분배되지 않으며, 누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평등하게 누린다. 도로 역시 공공 공간이지만 차를 가진 이들에게 더많은 공간을 내주는 걸 생각하면, 공원은 훨씬 민주적인 공간이다.


도시 공간도 민주화가 필요해


그러나 공원 내부가 민주적인 데 비해 공원의 분포나 형태는 비민주적이다. 중앙공원이라는 초기 공원의 모델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 특정한 위치에 공원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접근성의 불평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를 계획적으로 조성하지 않는 이상 공간적인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형성된 도시에서는 공원을 만들 적절한 위치를 찾기 어렵고, 찾는다 해도 정부의 강력한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확보할 방법이 없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공원은 양과 질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공원의 형태 또한 공간 민주화의 중요한 요소다. 같은 면적의 공원도 선형으로 만들면 더 많은 시민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예컨대 한 변이 100m인 사각형 공원의 둘레는 400m지만, 같은 면적(10,000m2)이라도 폭 20m에 길이 500m인 선형 공원을 만들면 둘레가 1,040m다. 시민과의 접촉면이 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일정 폭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점적인 중앙공원보다 선형 공 원이 더 민주적이다. 이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한가운데, 접근성 좋은 양재천공원이 서울숲 같은 공원보다 더 사랑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숲이 아무리 멋진 공원이라 한들, 그 곳에서 안전하게 산책하기 위해 만원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은 감염 예방 측면에서 모순이기 때문이다. 내 집 앞에 있어 걸어서 갈 수 있고 타인과의 접촉을최소화할 수 있는 생활형 공원이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모두의 공원을 위하여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공공 피난처 역할을 하는 공원은 공기나 물 같은 필수재가 될 것이다. 재정이 부족해 공원을 적절히 확보하기 어려운 지자체를 대신해, 중앙정부가 도시공원의 공간적 분포와 형태를 계획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공원을 누리는 일은 감염병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도시공원은 더 고르게 분포되고, 더 민주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김진유 |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소, LH토지주택연구원 등을 거쳐 경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도시계획과 주택 관련 논문과 함께 <전세>, <주거복지, 갈 길을 묻다>, <정직한 내집마련>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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