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중심이 얼굴에서 감정으로, 기술에서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1, 2편에서 풀어왔다. 플레이브가 기술을 매개로 감정의 루프를 완성했을 때 팬덤이 생성됐고, 스텔라이브가 정교한 감정 서사와 참여 구조를 열었을 때 팬들이 소속감을 갖기 시작했다. 반대로 기술만 강조하거나 팬의 개입 여지를 차단했던 메이브나 나이비스는 기대만큼의 지속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다뤄볼 사례는 바로 ‘이세계아이돌’과 ‘펭수’다. 이 둘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팬덤을 형성한 대표적인 사례지만, 오늘날 그 흐름의 방향성은 서로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세계아이돌은 애초에 기성 제작사가 아닌 크리에이터 생태계 내부에서 태어났다.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이 팬 커뮤니티 ‘왁물원’을 기반으로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가상의 아이돌을 만들어보자’는 놀이에서 출발했지만 실제 음원 발매와 콘서트, 굿즈 제작, 무대 퍼포먼스까지 이어졌다. 기획 초반부터 팬들은 캐릭터 설정, 이름, 성격, 심지어 데뷔곡 스타일까지 함께 논의하고 투표했다. 연기자 역시 ‘누구인지’보다 ‘어떻게 교감하느냐’가 중요했다. 이세계아이돌의 인기는 결국 자생적 팬덤, 즉 ‘우리가 만든 존재’라는 정서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표준화된 미디어 훈련을 거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진정성을 부여했다.
실시간 방송에서의 실수, 익숙지 않은 퍼포먼스, 서툰 언변이 오히려 팬들과의 ‘관계’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팬들은 이 캐릭터들이 성장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정적으로 이입했고, 그 과정은 하나의 집단 서사로 자리 잡았다. 완성형이 아닌 ‘진화형 IP’였던 셈이다.
반면, 펭수는 초기에는 반대의 구조였다.
철저히 EBS 내부에서 기획된 콘텐츠였고, 기성 방송 문법에 ‘반항하는 탈을 쓴 기획’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누가 연기자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펭수는 ‘자기 목소리를 가진 존재’처럼 받아들여졌고, 유튜브와 SNS를 통해 확산되며 실존 인격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펭수는 얼굴이 없었지만, 감정이 있었고, 사회와의 맥락 속에서 말하고 움직였다. 어린이 대상 방송에서 ‘을의 화법’을 깨고 어른의 언어를 유쾌하게 흉내 냈다는 점에서 상징성도 컸다.
하지만 최근 펭수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신선함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감정의 연속성’이 끊겼기 때문이다. 초창기 펭수는 이슬예나 PD의 연출 아래, 사회 이슈나 팬의 반응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유사 실시간의 감정 루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이 교체되고 콘텐츠 구조가 다소 경직되면서, 펭수는 점차 ‘말하는 인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팬들은 여전히 펭수를 좋아하지만, 그 감정의 접점이 줄어들면서 관계의 밀도도 낮아졌다.
이세계아이돌과 펭수의 차이는 단순한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팬덤이 감정을 소유할 수 있는지, 즉 서사와 관계에 ‘내가 있다’고 느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세계아이돌은 팬이 세계관을 확장하는 주체였다. 펭수는 완성된 세계관 안으로 팬을 초대했다. 한쪽은 ‘공동 창작자’, 다른 한쪽은 ‘관찰자’의 위치였다. 감정은 참여 속에서 자라고, 거기서만 진심이 머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두 존재 모두 ‘정체성의 경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세계아이돌은 AI도 아니고, 전통 아이돌도 아니며, 완전히 가상 캐릭터도 아니다. 펭수 역시 인간 연기자가 있지만 얼굴은 드러나지 않고, 설정상 남극에서 온 자이언트 펭귄이다. 이 모호한 정체성은 오히려 팬에게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준다. 중요한 건 이 여백을 팬이 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세계아이돌은 그 여백을 팬 커뮤니티가 서사로 채웠고, 펭수는 점차 그 여백을 공식 설정과 방송 형식이 단단히 닫아버렸다.
결국 AI, XR 콘텐츠의 시대에도 팬덤이 존재하려면 기술이 아닌 감정의 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틈은 일방향 콘텐츠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팬과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세계아이돌은 여전히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팬덤의 원리는, 거대 기획사들이 놓치고 있는 진실을 말해준다.
앞선 1, 2편에서 살펴본 사례와 함께 정리하면 이렇다. 플레이브는 실시간 감정 교환으로 팬과의 루프를 만들었고, 스텔라이브는 설정과 현실을 교차시키며 감정 몰입을 끌어냈다. 반면 메이브와 나이비스는 ‘정답’을 보여줬지만, 감정을 걸 ‘질문’은 부족했다. 이세계아이돌과 펭수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얼굴 없는 캐릭터지만, 팬이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구조가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가. 그 차이가 팬덤의 명암을 갈랐다.
가상과 현실, AI와 사람, XR과 유튜브의 경계는 앞으로 더 모호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게 되는 존재는 단 하나의 조건을 가진다. 바로 ‘내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여백’을 가진 존재. 결국 팬덤의 비밀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자리다. 펭수가 뜰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캐릭터 안에서 시청자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서사와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체성을 유지하던 연출자의 교체, 감정 흐름의 변화는 정체성의 균열을 불렀다. 펭수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감정의 연결선은 끊겼다.
이제는 AI로도 노래를 만들고, 버추얼 캐릭터가 공연을 하며, XR로 현실보다 더 몰입도 높은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은 어느 정도까지는 팬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팬덤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루프에서 생긴다. 팬들은 가짜를 알아차리지만, 감정이 진짜라면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무리 고도화된 캐릭터도, 감정 설계가 끊기거나 불연속적이면 외면당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가상의 스타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더 이상 가상의 존재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신, 진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것이 인형탈 속 사람이든, 가상 캐릭터든, AI든 상관없다. 감정의 연결이 단절되면, 아무리 완벽한 설정도 팬은 떠난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진정성, 그리고 그 감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서사다. 이것이 바로 AI, XR 시대에도 유효한 팬덤의 진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