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핑계고 시상식’인가:방송3사 예능,연기대상의 몰락

공중파 시상식의 시청률이 사라졌다

by 신승호


2EDIHPPROF3HAQW2HKRHG6SDUA.jpg?auth=493831f5b9ac168798e5a5fb008ac0bce0696b2ff944bac6099636abd3c5e612&width=650&height=346&smart=true 채널뜬뜬 캡쳐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던 장면이 있었다.


레드카펫, 정해진 호명 순서, 예상 가능한 소감, 감정이 가장 올라오는 순간에 끊기는 광고.그 장면은 올해도 반복됐지만 더 이상 중심에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고, 대신 2시간 반짜리 유튜브 영상을 끝까지 봤다. 일주일도 안됐지만 벌써 천만뷰에 가까워졌다.


핑계고 연말시상식이 화제가 된 이유를 “재미있어서”라고 정리하면 중요한 판단을 놓친다.이 콘텐츠가 보여준 것은 예능 포맷의 성공이 아니라, 시상식이라는 형식이 더 이상 공중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동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축적돼 온 결과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콘텐츠는 비효율의 집합이다.

2시간 반 롱폼, 광고 호흡과 무관한 편집, 유튜브라는 플랫폼. 하지만 내부를 뜯어보면 전혀 다르다. 배우, 가수, 예능인 32명이 출연했다고 하니 인당 거마비를 감안 시 최소 15억 원 규모의 위상을 한 번에 활용한 콘텐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가 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위상이 어디에 걸렸느냐다.

공중파 시상식도 여전히 비슷한 급의 인물을 모은다.


하지만 결과는 한 자릿수 시청률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공중파는 여전히 ‘형식’을 중심에 두고 있고, 핑계고는 ‘관계와 기여도’를 중심에 둔다.
물론 백상예술대상처럼 장르 믹스가 가능한 시상식도 있다. 그러나 그 믹스는 규격화된 방식 안에서만 허용된다. 그래서 공정하지만 덜 긴장되고, 품격은 있지만 예측 가능하다.


핑계고는 예외를 규칙으로 만들었다.


배우, 가수, 예능인을 섞되 위계를 재정렬하지 않았다. 나이에 대한 고려는 있었지만 누가 더 위인지 설명하지 않았고, 대신 “왜 이 사람이 여기 앉아 있는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웃기지만 가볍지 않았고, 사적이지만 사담으로 흐르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특히 중요한 변화는 배우의 위치다. 이제 배우는 '신비하거나', ‘보여지는 존재’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20년 전에는 부산영화제 뒤풀이 자리에서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축하 공연을 하고 사라졌다. 그때까지 문화의 정점은 영화와 배우였다.


지금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S급 가수의 위상을 S급 배우가 따라가기 어렵다. 이건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다. 공연 수익, 글로벌 투어, 팬덤의 직접 결제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플랫폼이 요구하는 즉각적인 반응성. 가수는 이 구조에 최적화돼 있다. 배우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결과물이 축적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핑계고는 이 불균형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들의 ‘평소 보기 힘든 모습’이 콘텐츠가 됐고, 그 순간 배우는 보호된 상징이 아니라 동일한 장 안에 놓인 플레이어가 됐다.


김구라는 오래전에 공중파 3사 예능대상은 의미 없으니 합치라고 말했다.


그때는 제도 개선처럼 들렸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말은 이미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제안이었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이미 OTT가 킬러콘텐츠를 만드는 세상에서 새로운게 없는 공중파 3사 시상식이 합친다고 해결될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중파 시상식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상식은 더 이상 “기준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의 시청자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판단 구조에 자신의 시간을 쓸지 선택하는 존재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 연말대상’은 단순히 새로운 포맷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이는 대중의 관심과 권위가 이동한 뒤, 그 비어있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올라탄 콘텐츠다. 유재석이라는 놀라운 진행자의 역량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구조적으로는 성공의 여러 이유가 있다.


데이터와 체감 지표의 일치
지상파 시상식의 최대 고질병은 ‘나눠주기식 공동 수상’과 ‘내부 정치’였다. 반면 핑계고는 유튜브 조회수, 댓글, 그리고 시청자(계원)들이 실제로 보낸 시간이라는 ‘조작 불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준을 세웠다. 대중은 자신이 보낸 시간이 배신당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엄숙주의를 걷어낸 ‘진짜 관계’
잘 웃지도 않고 박수 기계가 되는 가짜 권위를 버렸다. 대신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서로의 사소한 습관을 상으로 주는 수평적이고 친밀한 형식을 택했다. 대중은 방송사가 정의한 ‘성취’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긴 ‘맥락’에 상을 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참여의 서사와 효용감
핑계고는 팬덤인 ‘계원’들과 일 년 내내 서사를 쌓아왔다. 시상식은 그 서사의 화룡점정이며, 팬들은 투표와 댓글을 통해 시상식의 설계자로 참여했다. “내가 키운 콘텐츠가 인정받았다”는 효용감이 권위를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권력은 ‘무엇’이 아니라 ‘누가 설계하는가’에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는 진짜 질문은 “누가 상을 받을 것인가”가 아니다.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지금 이 시상은 누가 설계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누구의 시간을 전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전통적인 방송사들이 여전히 “우리가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 상을 받아 마땅하다”는 내부 논리에 갇혀 있을 때, 뉴미디어는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보낸 이 시간이 이만큼 가치 있었다”는 외부의 시선을 시상식의 중심에 세웠다. 권위는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https://www.kmjournal.net/news/articleView.html?idxno=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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