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분석] 세조의 시대에서 단종의 시대로

영화로 살펴보는 한국 사회의 역사 감정은 어떻게 바뀌었나

by 신승호
image.png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쇼박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큰 흥행을 기록하며 단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겁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군주. 많은 관객들이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한국 역사에서 항상 단종이 더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세조가 더 긍정적으로 평가된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조와 단종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공식 역사에서 세조는 결코 단순한 찬탈자가 아니었다.


조선 왕조 체제 자체가 이미 세조의 왕위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묘호에 붙는 ‘조(祖)’라는 글자는 보통 국가를 세우거나 큰 공을 세운 군주에게 붙는다. 세조가 이러한 묘호를 받은 것은 그의 통치가 조선 왕조 체제 안에서 정당한 왕권으로 인정되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세조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군주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 제도를 정비했으며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국가 제도를 정비했다. 왕위 찬탈이라는 사건은 논쟁적이었지만, 통치 능력 자체는 상당히 높게 평가되었다. 조선 후기의 역사 서술에서도 세조는 단순한 폭군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력을 가진 군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역사학이 형성되던 20세기 초반에도 세조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인 편이었다. 당시 역사학자들은 국가 체제의 안정과 정치적 현실주의를 중요하게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어린 단종의 통치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세조는 혼란을 정리하고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강화한 군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즉 이 시기의 역사 서술에서는 세조가 권력을 장악한 사건보다 그 이후의 정치적 안정과 제도 정비가 더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산업화 시대에도 이어졌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사회는 강력한 국가와 지도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경제 개발과 사회 안정이 국가적 목표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역사 속 인물 역시 “국가를 안정시킨 지도자”라는 기준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세조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능력 있는 현실 정치가였다.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은 비극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강력한 왕권을 세우고 국가 체제를 정비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역사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권력의 강함보다 정당성과 정의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이 변화는 역사 서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력한 권력을 장악한 지도자보다는 권력의 희생자가 된 인물에게 더 많은 공감이 향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단종 서사가 강하게 부각된다. 어린 왕이 정치적 권력 싸움 속에서 희생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왕을 지키려 했던 사육신의 충절 이야기가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와 깊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단종은 단순히 실패한 왕이 아니라 지켜주지 못한 존재가 되었고, 세조는 강력한 군주라기보다 권력을 빼앗은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의 정서적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과거의 한국 사회는 성공과 성장의 서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국가와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강력한 지도자와 현실적인 정치가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경쟁과 불평등, 그리고 피로가 누적된 사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승리한 사람보다 억울하게 밀려난 사람에게 더 쉽게 감정이입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단종의 인기 상승은 단순한 역사적 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현상이다. 권력의 승자보다 권력의 희생자에게 공감하는 정서, 강한 지도자보다 지켜주지 못한 존재에게 마음이 가는 감정이 지금의 대중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역사 인물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세조가 현실 정치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단종이 감정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 사회의 역사 감정이 “권력의 서사”에서 “공감의 서사”로 이동한 것이다.


결국 세조와 단종의 이야기는 단순한 조선 시대의 권력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마다 다른 질문을 던지는 역사다. 어떤 시대에는 강한 지도자가 필요했고, 또 어떤 시대에는 정의와 공감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단종에게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왕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강한 권력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조의 시대가 권력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단종의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역사 속 왕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신승호 내러티브 아키텍트 /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출처 : KMJ(https://www.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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