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① 아이유

아이유의 내러티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by 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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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아이유 콘서트 : 더 위닝’ 포스터.


가끔 혼자 극장에 맥주 한 캔을 들고 가서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예매 앱을 통해 영화를 쭉 살펴보는데 '엇 아이유 콘서트가 있네?'

아이유 콘서트는 팬클럽인 '유애나'가 아니면 티켓팅이 불가능하다고 소문난, 강남 부동산 청약 당첨만큼 힘든 일이다. 그간 콘서트에 가고 싶어도 도처에 널린 예약 고수들과의 '0.1초 싸움'에서 패배하고 결국 헛탕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차에 비록 극장이지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니...반가운 마음에 바로 예매를 했다.

야심한 밤,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수줍음을 느낀다. 혼자 아이유 영화를 보러 오는 남자가 연상시키는 고정관념을 자신감 있게 넘기긴 한계가 있지만 불이 꺼지자, '레드 썬'이 바로 펼쳐졌다. 분명 ‘직관’이 아닌데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었다.

아이유는 화면을 뚫고 나를 비롯한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노래 한 곡 한 곡은 하나의 서사처럼 펼쳐졌다.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내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이곳이 바로 찐 공연장이구나.


아이유의 음악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감성 발라드가 아니다. 그녀는 늘 ‘스토리’를 구축하고, 그것을 관객이 체험하게 만든다. 'Modern Times'에서 1930년대 재즈를 소환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더니, 'CHAT-SHIRE'에서는 그녀만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Palette'에서는 20대의 불안과 성장을 고백하며 ‘나는 이제 내 색깔을 알아’라고 선언했다. 이후 ‘LILAC'을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말하며 청춘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고 최근에는 'Love wins all'을 통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서사를 선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음악적 흐름이 하나의 성장 스토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좋은 날’에서 높은 음을 내지르며 ‘나도 몰라’라고 외치던 그녀가, 이제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감정을 노래한다. 하지만 성장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연기로 넘어가 보면, 그녀의 필모그래피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나의 아저씨'에서 사회적 소외와 아픔을 지닌 ‘이지안’을 연기하며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였고, 영화 ‘브로커'에서는 미혼모 역할을 통해 더욱 복합적인 감정을 탐구했다.


그리고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신작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그녀는 195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삶을 연기한다. 이 작품은 시대극이면서도, 단순한 복고 감성을 넘어 보다 깊은 내러티브를 담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주 방언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그녀의 배우로서의 확장성을 증명할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떠오르는 고전적 인물이 있다.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제인은 가난한 고아로 시작해,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사랑 앞에서도 자신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운명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


아이유 역시 비슷한 흐름을 가진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해왔다. 음악도, 연기도 그녀가 직접 선택한 길이다. ‘팔레트’에서 “나는 나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대중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녀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나는 아이유가 음악과 연기뿐만 아니라, 창작의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녀는 이미 작사·작곡을 통해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으며, 언젠가 영화나 드라마의 각본을 쓰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출간할지도 모른다. 또는 완전히 다른 예술 장르, 예를 들어 뮤지컬이나 연극, 혹은 애니메이션 같은 분야로 확장될 수도 있다.


결국, 아이유의 가장 큰 강점은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자기 서사를 설계할 줄 아는 ‘내러티브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그녀는 음악에서도, 연기에서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서사를 선택할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할지 기대된다. 콘서트 예매는 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유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은 여전히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한 편.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KMJ 발행인 신승호 www.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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