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라는 내러티브

소버린 AI가 바꿔놓을 글로벌 '진실'의 미래

by 신승호
1613_2493_815.png 새로운 바벨탑의 미래는? / 이미지=SORA생성

소버린 AI라는 국가의 새로운 자화상


“당신의 AI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앞으로 이런 질문은 여권 검사만큼 중요해질지 모른다.

한때는 휴대전화 제조국을 물었고, 그다음에는 클라우드 서버의 위치를 따졌다.

이제는 알고리즘의 국적, 그 안에 깃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묻는 시대다.

처음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 그저 정치적 슬로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이 개념은 놀라울 정도로 서사적이고, 동시에 문명사적인 파장을 안고 있다.

소버린 AI는 단순히 “우리도 GPT 같은 거 만들자”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가치로, 우리의 현실을 해석하는 AI를 갖자”는 문명적 선언이다. 언어는 사고방식이고, 사고방식은 세계관이다. 세계관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이 야심은, ‘AI를 가진 나라’와 ‘남의 AI를 빌려 쓰는 나라’를 가르고 있다.


미국의 GPT, 프랑스의 미스트랄은 물론 중국,러시아, UAE 등 고유의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지금 전 세계는 AI라는 이름의 국경선을 긋고 있다. 이건 단순히 기술의 독립이 아니라, 디지털 신대륙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주도권 전쟁이다. 소버린 AI는 경제패권은 물론 공공정책, 국방, 교육, 언론까지 국가의 모든 작동 방식을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되어간다.

이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신에게 도전하려 쌓았던 바벨탑과 닮아 있다. 하지만 언어가 갈라지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바벨탑은 무너졌다. AI가 생성하는 ‘언어’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담은 세계의 해석이다. 모든 국가가 자기만의 모델을 만들면, 인류는 다시 한 번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들은, 단지 언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진실을 말할 것이다.


GPT는 미국식 가치관, 미스트랄은 유럽식 합리주의, 중국 AI는 통제와 질서를, 러시아 AI는 민족주의적 자기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읽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해도, 각 AI가 내놓는 답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것이 옳다”는 말이, “우리에게 옳다”로 바뀌는 순간, 공통의 진실은 사라지고, 가치관이 진실을 정의하는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AI가 민주주의의 촉매제가 될 수도, 프로파간다의 연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소버린 AI의 중심 내러티브는 “누구의 규칙으로 살 것인가?”이다. 주변 내러티브는 “누구의 데이터로, 누구의 말투로, 누구의 관점으로 판단할 것인가?”이다. 팬들은 기술 자립과 문화 보존의 관점에서 환호하지만, 안티는 정보의 파편화, ‘디지털 고립주의’의 부상, 그리고 세계 협력의 해체를 우려한다.


사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AI 바벨탑’이다. 기술은 높아지는데, 해석은 달라지고, 언어는 흩어지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선 이미 ‘공통의 문장’이 사라지고 있다. 같은 질문을 GPT와 미스트랄에 던졌더니,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공공의 책임”을 강조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함께 공존하긴 어려운 주장이다.


만약 위기가 온다면, 그것은 AI가 진실이 아니라 정치를 말할 때일 것이다. 팩트가 아니라 태도를 학습한 모델, 질문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정답에 대한 이념적 기대치에 맞춘 답을 주는 AI. 그것은 더 이상 AI가 아니다. 그건, 말 잘하는 확성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버린 AI에게 필요한 덕목은 주권 이전에 경청이다. “AI는 국가의 입이 될 수 있지만, 귀도 되어야 한다.” 시민의 언어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AI는 그저 위에서 내려온 규격형 개념일 뿐이다. AI가 국민의 삶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성능이라도 고장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디지털 문맹’의 시기를 돌파하며 스마트폰과 반도체로 세계 경제의 허리를 장악한 바 있다. 이제는 그 위에 세워질 ‘AI 주권국가’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GPT나 미스트랄을 가져다 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언어, 교육, 행정, 경제, 안보에 맞는 독자적 AI를 설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다른 이의 알고리즘’으로 살아야 한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근대화의 인프라다. 조선이 늦게 총과 증기기관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우리도 AI 주권을 남의 손에 맡긴다면, 다시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은 코딩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결단과 철학의 문제다.


그러니 이제는 대한민국형 소버린 AI를 꿈꿔야 할 때다. 단지 영어를 잘하는 AI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질문을 이해하고, 대한민국의 고민에 답할 수 있는 AI. 그 AI는 교육을 바꾸고, 행정을 혁신하며, 공공의 효율을 높이고, 더 나아가 다시 한번 이 나라를 ‘부국(富國)’의 궤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해봤다. 지금, 다시 해낼 시간이다. AI가 깃발을 든 지금, 우리도 우리의 깃발을 세워야 한다.


신승호 KMJ 발행인

www.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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