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중세와 고려를 함께 보다.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 미식(美食)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 예술, 기술.
19세기 말 미식 작가 샤를몽슬레(Charles Monselet)는 미식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나이의 사람들이라도 모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 정의했다.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는 조제프 벼르슈(Joseph Berchoux)의 저서 『가스트로노미 또는 식탁의 농부(la Gastronomie ou l’Homme des champs à table)』가 출간된 1801년부터 회자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크로즈 마냥(Croze Magnan)의 『파리의 미식가(le Gastronome à Paris)』가 출간되었다.
1835년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에 등재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미 16세기에 라블레는 자신의 책 『팡타그뤼엘 제4서(le Quart Livre)』에 대식가들로부터 존경받는 ‘가스테르 나리(messire Gaster)’를 등장시킨 바 있다. 한편 미식을 언어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미식 아카데미의 설립자이며 미식계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퀴르농스키(Curnonsky)였다. 그는 지역 특산 향토음식 찾아 여행하는 미식 애호가들을 가리키는 가스트로 노매드(gastronomade, 미식 유목민이란 의미)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마욜리카: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석유, 석회 도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에스파냐의 마요르카섬을 거쳐 이탈리아로 수입되었기 때문에 ‘마욜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독일 마이슨에서 본격적으로 경질 자기를 생산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프랑스 파이앙스와 이탈리아의 마욜리카는 가장 각광받는 도자기였다.
당대의 도자기 기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폐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송, 원, 명대 초반까지 중국 수준의 도자기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나라, 구현의 수준을 넘어서서 중국인들에게 특유의 색과 양식을 인정받고 중국시장에 고가에 팔리는 수준까지 된 나라는 고려와 조선이 유일합니다. 따라서 중세의 도자기 역사를 말할 때 중국과 함께 한국이 거론됨은 사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와 조선은 빠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답니다. 그러니 중국도 우리 청자 색감은 못 만들었다 (팩트 긴 해요)라면서 우리가 최고다 라던가 일본의 도자가 전부 우리 도공들 끌고 가서 만든 거라는 (일부는 맞지만) 민족주의적 우월의식도 곤란하지만, 평가절하도 옳지 않아요. 늦어도 16세기 중후반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주도로 열린 동아시아 세계 시장에 적극 참여한 일본, 중국과 달리, 망할 때(?)까지 쇄국 정치만 하던 우리 조상님들이 만드신 물건 중 (인삼, 종이와 함께) 몇 안 되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특산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