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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May 21. 2020

영화 음식 작업 일기

아가씨 - 고판돌, 후지와라의 음식

후지와라 백(본명:고판돌)역을 맡은 울 하정우 배우의 음식 얘기도 풀어볼까?

그렇. 우리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먹방의 본좌, 먹방의 끝판왕, (이병헌 배우님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지만) 보는 것만으로 식욕을 샘솟게 하는 방 요정, 찐먹방 황제.
김성훈이라는 본명을 쓰던 kbs <무인시대>에서 백숙을 쭉 찢어 와구와구 씹을 때부터 싹수가 그린 그린 하시더니 출연작마다 먹는 장면의 임팩트가 엄청나서 (추격자, 터널, 의뢰인, 베를린 등 먹는 장면이 중요할까 싶은 작품까지) 짤이 떠돌 패러디가 속출했 배우. 특히 <추격자>에서 초콜릿 쪽쪽 빨아먹다가 엊어맞는 씬도 주인공 성격이 잘 드러나서 더 소름 끼쳤고 <황해>의 편의점 구남 세트, 감자, 총각김치, 국밥, 김먹방으로 거의 피크를 찍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보여준 림빵 세로 먹기 신공과 고량쥬 가글 신으로 독보적인 획을 촥- 그어버렸다.

이런 사진콜라쥬를 10장도 넘게 만들수 있다고!

하배우님과 나는 중앙대 예술대학 동문이다. 98년 학교 입학했을 때 신입생 환영회 같은 데서 사회도 보고 그 누구냐.. 최주봉 배우님 아들인 최규환 배우와 단짝으로 예대 무슨 회의도 빠짐없이 참석하연예인 자제로 학교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 시절 김래원 배우님과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이 마냥 행복했던 나님이지만, 연극영화과 졸업공연이었나 할튼 안톤 체호프의 <굿닥터>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작가, 그리고 겁탈(The seduction)의 바람둥이 피터 역을 맡은 하배우님의 연기에 반해 그날 선배랑 밤새 술 마시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성훈 짱이다"를 연발했던 기억이 선하다. 굿 닥터는 단막 사이사이 암전이 되며 다음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바로 그때 한 바람둥이의 얘기를 들려주겠다던 그가 암전 후 조명이 탁, 켜지는 순간!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의 머리에 얹히는 느낌으로(하대갈 입증) 단지 중절모를 하나 썼을 뿐인데... 완벽히 능글맞은 피터로 변신하는데, 하.. 진심 소오름이.

이 글의 핵심은..
하정우 배우가 대성할 줄 이미 알았다. 는 것?
은 아니고 (현장에서 말 한마디 못해봤지만)
내 촉을 자랑하고 싶은 맘인 거다

스릴러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사기꾼 역할을 하며 먹방으로 주목받으면 안 될 냥반이 그 어려운 걸 해다.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잃지 않겠다는 걷는 사람 하정우는 과즙 팡팡 복숭아 먹방! 펼치고야 만다.

가씨에서의 먹방은 모두 복숭아만 기억할 만큼  드셨다. 이 장면은 사실 푸드팀이 참여하지 않은 장면이라 품팀한테 얘기만 듣고 영화 개봉하고 나서 봤는데 진짜 빵 터졌었다.


본격 TMI : 복숭아를 알아보자

복숭아나무와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거나 제상에도 복숭아를 올리는 것을 금기시했다. 조상신이 복숭아가 지닌 축귀의 힘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상에 올려도 응감(應感)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특히 복숭아 가지 중 동쪽으로 뻗은 가지인 동도지(東桃枝) 귀신뿐 아니라 부정한 것의 접근 또는 음식의 맛이 나빠지는 것도 막아 준다고 믿었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의 소국주방문에도 술을 담근 뒤 동도지로 젓는다는 구절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초인적 능력을 가진 비형랑의 어머니가 도화녀(桃花女)였고, 또 조선시대 조광조의 시에 ‘도화(桃花)로 아이 얼굴을 씻으면 눈처럼 희어지고 광택이 난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도 동도지를 구해야 하나) 고대에서부터 복숭아나무는 영험한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오죽하면 복숭아꽃이 한가득 핀 '무릉도원'을 대표적인 낙원으로 꼽았을까.  『익재집(益齋集)』에 복숭아 나뭇가지로 난타해서 벽사하는 기록이 있고 (강동원,김윤석님 드릴걸),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복숭아 나뭇가지로 빗자루를 만들어 사용해서 연말에 잡귀를 몰아내고 새해를 정하게 맞이하려는 나례의식(儺禮儀式)의 기록 보인다.

게다가 다산과 회춘 불로장생 등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근현대 화가인 이중섭이 친구 구상 시인의 병문안을 갈 때 빈 손으로 가지 못해서 천도복숭아를 그려간(?) 또는 즉석에서 은지화로 그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을 정도.

이 그림은 실제 작품이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어서 늘 궁금하기도 하다. 구상 시인이 늘 서재에 걸어뒀다는데 왜 사진이나 자료가 없는 것인지..

좌) 이중섭 - 두 어린이와 복숭아 우) 이중섭 - 구상네 가족

형태가 여성의 둔부를 닮아서인지 영단어 peach에는 '여성의 엉덩이'라는 뜻이 있다. 우리나라도 선비의 집에는 복숭아가 여인의 분홍빛 볼기를 닮아서 음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성에 대해 개방적이거나 문란한 여성을 팔자에 도화살이 꼈다고도 하고 성인 잡지를 '도색(桃色)잡지' 라고 부르니 기실 야한 과일의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꼭지를 기준으로 해서 반으로 가르면 전체적인 형상이 여성의 음문을 닮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쪽을 은유하는 경우도 제법 발견된다. 우리에게는 여성의 가슴을 은유한 시 한 구절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교과서에 실렸기에 공부를 하면서도 너무 야하지 않나 했던 나의 침실로.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는 한결 노골적인  묘사로 발전됐다.

수밀도(水蜜桃)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 중국 원산의 재배종인데 꽃이 크고 담홍색이며 상하이 수밀도, 톈진 수밀도, 토용 수밀도, 이핵 수밀도, 반도, 백도 따위의 품종이 있다. ≒물 복숭아 로도 쓰인다.

그것은 껍질이 잘 벗겨지는 수밀도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입가로 단물이 주룩 흐르는,
아주 맛 좋은 복숭아였다.
출처 <<이동하, 우울한 귀향>>

뭐 복숭아의 품종까지 읊을 건 아니지만 단물이 주르륵 흐르는 수밀도에 대한 언급이 문학작품에 이렇게 풍부하다면 왜 박찬욱 감독님이 과즙이 흐를 것 같은 복숭아에 집착하셨는지는 이해가 충분히 가고도 남는다.


이 장면은 하배우가 복숭아를 조물딱 조물딱 만져서 얻어낸 먹방의 대미. "거의 다 익은 것 같아" 라는 대사를 치기에 더없이 훌륭한 소품이기도 하다. (밀도 품종을 샀을거야~)

아카이브에 실린 오후 2시 미술수업 씬의 비하인드

그러나 사실 고판돌이 먹는 장면이 더 있다.
-오늘 공개되는 먹방 외에 음식 먹는 장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정답자 저랑 같이 먹방 갑시다. 쏘겠습니다.-
그중,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 그 누구도 짐작하시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May be, like a 숙희 쑥떡!
바로 숙희가 자란 보영당 씬에 등장는데 숙희의 숙떡 느낌처럼 슥~ 지나가서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류성희 미감님 팀의 디테일이 엿보이는
래퍼런스 이미지 역시 첨부함.

한줄 한줄 보물을 알려주는 지도처럼 자세히 읽는다.

공간 콘셉트 및 톤 앤 매너, 식기의 재질과 음식의 컬러, 나리오에서 표현한 "서양식 수프를 우아하게 먹는 식", 라고 연출될 장면을 자세히 설명하는 래퍼런스 피드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대본 외에도 미술팀에서 건네는 이 정보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서양식 수프 먹는 법이라고 쓰여있다면 수많은 커트러리와 스푼 종류 중에 수프 스푼의 사용법과 디자인을 알아야 한다.

좌) 스프스푼과 부이용스푼 디자인 비교 우) 서양식 스프 먹는 법

이블 매너나 다이닝 에티켓은 문화권마다 다르고
이것을 공부하는 것은 푸드 코디네이터의 기본 아닙니꽈.

지금 먹는 매너까지 설명하면 또 스압주의 로 주변의 원성이 자자해지니 줄여야만 한다. 복숭아에 너무 TMI 펼쳤지만 요거 하나만 더.. 부이용(bouillon)은 프랑어로 영어인 (stock)과 같다. 물에 육류, 생선, 채소, 향신료 등을 함께 넣고 끓여서 풍미가 우러나면 걸러서 만든 맑고 향기로운 고기육수, 맑은 수프를 뜻하며 그래서 스푼이 작고 동그랗다.

제주도 머슴 고판돌 이 후지와라 백작으로 살면서 익힌 귀족의 식사법을 보영당이라는 전당포(이자 장물거래, 소매치기, 고아 불법 입양 등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보여주는 대단히 역설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배우가 엄청 긴 대사 중에 먹는 음식이니 연기하기 편안한  질감도 중요하고 연출부 및 미술팀이 원하는 컬러감도 보여야 하니 죽의 질감을 조절해야 했다.
엄마 없는 갓난쟁이들에게 먹이기 위한 것이니 곡식 죽보다는 암죽이 좋으리라 생각했고 미술팀에 피드백한 자료 사진에 죽의 종류 가 정리해서 보냈다.

의외로 학교 강의하다 보면 한식에 관심 있다는 조리과 학생들도 이 죽의 종류를 잘 알지 못한다.

미음-응이-즙-원미-죽

암죽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1930년대의 조리서에 쌀암죽·밤암죽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심봉사가 청이를 키운 8할 역시 암죽이다. 쌀이 귀한 시대이니 쌀 암죽보다는 밤을 말린 가루를 밥물에 넣고 끓인 밤암죽을 추천했고 감독님들의 ok사인 후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수없이 많은 생 밤을 까야했다. 이 씬은 <아가씨> 첫 촬영 날이기도 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데 미감님께서 박 감독님께 인사를 시켜주신 날이기도 하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외웠던 인사말은 다 까먹고 "저 감독님 팬입니다. 이렇게 작업 하게 되어 너무 기뻐요" 하고 멍~  "영화 뭐뭐 했어요?" 물으시길래 "모던보이로 입봉 해서 부당거래 타워 등을 했고 미감님과 암살도 했습니다" 하자 "오~ 영화를 꽤 하셨구나. 우리도 잘 부탁합니다" 하시고 웃어주셨는데 마주 웃기는커녕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 또 발끝만 보..

촬영 공간 옆 방에 준비한 여분의 그릇과 스푼들,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휴대용 가스버너 등을 준비한 뒤 미감님과 상의 끝에 그릇을 결정하고 따뜻하게 데운 암죽을 덜어 놓고 컷 소리가 나기 전까지 숨죽여 배우들을 바라보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좌)피드백한 자료 우) 촬영준비 세팅 (두가지 질감의 암죽 준비)

밤으로 안 만들고 대충 색만 냈어도 아무도 몰랐을 거. 깐 밤을 사서 썼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그러나 "영화 음식 전문 푸드 팀"의 이름을 걸고 꾸밈 이 걸어온 길에는 단 한 줄로 묘사된 음식도 1~2초만 쓱 보인다고 대충 만든 적은 없다.

밤깎다가 끝내는 손꾸락을 다쳐버렸다. 게다가 물집까지 잡혀서 한동안 고생했다.

면에 어떻게 보일지 몰라서 질감을 다르게 해서 두 종류를 만들지만 사실 아무도 기억 못 할 순간 휙 지나간다. 물론 아쉽지만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했을 뿐이니까 괜찮다.

연극하듯 장황한 자기 소개와 함께 암죽을 후르륵 짭짭 하던 하배우님.

아하게 먹는 하정우 배우는 없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고판돌의 첫 먹방 씬과 복숭아 씬에 대한 이야기를 접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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