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밤 9시 글쓰기] 24.10.23. 매일 천자 쓰기 조지오웰

by 쿰파니스

괜히 시작했어.

이게 뭐야.


밤 9시만 되면,

혹시 잊을까 봐 알람까지 맞춰놓고,

신탁을 기다리는 사제도 아니고,

꼭 이래야 해?


가을밤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할 게 얼마나 많다고.

그냥 걷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잖아.


글 써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밤을 홀딱 지새우고 토끼 눈으로 나간 적도 있었지?

거울을 봐.

흰머리 늘어가는 거 안 보여?

글이 안 써진다고, 얼마나 낑낑댔으면.


내가 무슨 스피노자라고,

매일 일천 자를 안 쓴다고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오늘로 16일째.

별 이야기를 다 했잖아.

이러다가 은밀한 사생활까지 까발리는 거 아냐?


밤마다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조지 오웰 형님께 물었다니까,

왜 쓰느냐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남들보다 더 잘 알 거 같았거든.


다섯 가지 이유를 찾았대.

시대 따라 작가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더래.


첫 번째야 당연히 돈 때문 아니겠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건 내게 해당 사항이 없어.

전업 작가 영역이니까.

아, 간혹 돈이 되긴 하네.

오마이뉴스에 3천 자 써 보내면,

2천 원 줄 때도 있지만 간혹 3만 원도 주더라고.

5만 원 준다는 소문도 있지만

내가 넘볼 수준은 아닌 것 같아.


두 번째는 순전한 이기심이래.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 싶은,

죽어서 기억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거지.

때로는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기도 하고.


세 번째는 미학적 열정 때문에 글을 쓰기도 하나 봐.

그건 인정해.

단어를 순서에 맞게 배열하고,

어울리는 낱말을 찾고,

리듬까지 맞은 문장을 만들어 내면

흥분되기도 해.

때론 그것보다 더 짜릿할 때도 있으니까.


네 번째로 역사적 충동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야.

사물을 기록하고 진실을 알아내어

후세에 전하는 거지.

역사 공부할 때 봤잖아.

이름 한 줄이라도 오르내리는 사람들 보면,

대개가 무슨 무슨 책을 남겼더라고.

일기도 세월이 흐르면 소중한 기록물이 되잖아.

자신이 쓴 <카탈로니아 찬가>만 해도 그래.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역사 기록이 되었어.


다섯 번째가 정치적인 목적인데,

이게 돈 다음으로 중요한 건가 봐.

여기서 말하는 정치라는 게,

국힘당은 싫고 더민당은 좋다는 그런 거 말고,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해.

누군가가 머리를 빡빡 밀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 고 말한다면

이게 정치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지.

사실 거의 모든 글은 다 정치적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고 봐.

내가 밤 9시만 되면 글을 쓰는 것도 정치적인 목적이 될 수 있어.

나처럼 하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무언의 협박일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오늘은 무얼 쓸까 난감했는데

그럭저럭 천자는 채웠네.

오웰 형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런데 써 놓고 보니,

한강 작가의 어느 부분 문체를 어설프게 흉내 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