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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Apr 27. 2024

바람 불어 좋은 날

240418. 감사 일보 5

아침부터 바람이 살랑거린다.

햇살은 모닥불처럼  따스하고,

공기는 고양이 목털같이 부드럽다.


이럴 땐 황인숙의 시가 생각난다.

제목이 <바람 부는 날이면>이던가.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 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치마를 입지 않은 남자들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상쾌함이다.

이 시 때문에 하마터면 스코틀랜드 여행을 할 뻔했다.

그곳 남자들 전통 의상이 킬트(kilt)라는 치마 아니던가.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지만,

남자도 봄을 느낄 줄 아는 나름 섬세한 동물이다.

그게 봄바람 때문인지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감사 일기 시작한다.


1. 바람맞은 여자와 비 맞은 여자 중 누가 더 불쌍할까?


여태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여러분께 조언도 들었다.

다음 대답이 제일 신박했다.


"바람 맞고 오는 길에 비까지 맞는다면... . "


바람이건 비건 바라지 않은 상황이라면 불쌍하겠지만

내가 원해서 즐기는 것이라면 행복이 아닐까 싶다.


비록 치마를 입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높은 곳에 올랐다.

화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즐릿처럼 두 팔 활짝 벌렸다.

상쾌했다.

고맙다, 바람아.


2.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할까?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흙길을 차마 지르밟지 못하겠다.

어찌나 반들반들한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물걸레로 닦은 듯하다.

죄를 짓는 것 같아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길을 걷다가 쓰레기 버리는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 밤새 술안주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청춘이 빛나던 시절이었다.

대충 결론은 이랬던 같다.

적당한 쓰레기 투기는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기에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라고.


피가 날 것 같이 빡빡 비질을 한 거리를

바람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길을 걸으면 더운날 찬물에 머리 감은 듯 상쾌하다.


꼭두새벽부터 쓸고 닦느라고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오늘도 고향마을에서 쓰레기 줍는 김 모 지숙 의원님께,

감사드린다.

종묘에서. 걷기 미안할 정도로 깨끗하게 쓸어놓았다.

3. 맨발로 살았던 옛날 옛적 사람들은 다들 무병장수했을까?


흙길을 보면 신발을 벗고 싶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고 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맨발걷기다.

효용이 널리 퍼지면서 명소도 많이 생겨났다.


미국에서 태어났다.

어씽(Earthing)이 본명이다.

바닷물에 발등이 잠길 듯 말 듯 한 갯벌이나 모래사장이 가장 효과가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황토 사랑이 과해 죄다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고 나면

잠도 잘 오고, 밥맛도 좋고, 기분도 상쾌하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사람들은 죄다 아픈 사람 없이 천수를 다 누리고 살았을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걸 포기하고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면 소중함을 모르는 걸까.

사랑하는 곱단마님에게 안부 전화해야지.

전화할 결심을 하게 해주어 고맙다.


4. 맛없는 반찬을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

행복지수가 마구 상승하는 때이다.

맛있을 때만... .


월말 결제로 밥을 먹는다.

좋게 표현하면 매일 바뀌니 질리지 않아 좋다.

나쁘기 표현하면 싫어도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오해의 소지는 없애고 가자.

언젠가 어느 글에서 밝혔듯 세 가지 빼고 다 먹는다.


없어서 못 먹고,

보고도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한마디로 나흘 굶긴 아이 같은 입맛이라는 뜻이다.


이 집은 솔직히 말해 맛이 너무 없다.

까탈스럽지 않은 내 입맛도 그러한데

자칭 미식가라고 자처하는 분들은 어떠할까.

그래서 다들 먹는 양이 적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게 나쁜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주인 입장에서는 수익이 창출된다.

지구 차원에서 식자재 적게 들어 환경보전된다.

이들도 좋지만 다음 제일이지 싶다.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다.


한 달만 되어도 살이 빠졌다고 희희낙락이다

참으로 고마운 밥집이다.

마당 한편에 자리한 빨랫줄. 담장 밑 좁아도 햇살 넘나들고 바람 드나드는데 지장 없다.

5. 모든 사람이 빨래를 하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더 오래 살지 않으셨을까?


햇살이 넘나들고 바람이 지나는 마당 한편.

감나무가 있다.

가지에 빨랫줄이 추억처럼 매어져 있고.


햇살 고운 날이면 빨래를 넌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펄럭이는 빨래가 눈부시다.

살아있는 나는 세탁기 돌려 나부끼는 빨래 감상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러했을까.


추운 겨울 얼음장 깨며 두 손 호호 불었을 터인데.

스트레스 오죽했을까.

몸에 그토록 나쁘다는 스트레스인데.

그 힘듦 모르고 철없이 매일 흙강아지 되곤 했었다.


추운 날 내 빨래만 줄였다 해도 더 오래 사시진 않으셨을까.

죄송스럽다.

출근길 마당가 빨랫줄을 보며 옛 상념 떠올렸다.


고맙다.


날씨가 상큼하니 별 쓸데 없는 생각이 다 든다.

오늘의 감사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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