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볼 수 있는 명당

소록도에서 나로도까지 낮은 땅의 위로와 높은 하늘의 꿈이 공존하는 곳

by 쿰파니스
고흥여행 거인상.jpg 거금휴게소 거인상. 웅크리고 있던 고흥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형상이라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이 강렬했다.

지난 14일, 설 연휴 첫새벽을 가르고 남도로 향했다. 전라남도 고흥군. 육지로부터 길게 뻗어 나온 반도여서일까, 섬의 정서를 품고 있다. 여정의 첫머리는 소록도, 녹동항을 출발하여 소록대교를 건넜다. 한센인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짧은 바닷길, 죽어서야 건널 수 있었던 그 바다 위를 자동차로 단숨에 가로질렀다.


9시 이후부터 방문이 가능하다는 안내문. 너무 서둘렀나, 30여 분을 하릴없이 기다리기보다는 건너다보이는 거금도 휴게소에 다녀오기로 했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수군이 처음으로 합동작전을 펼쳤던 절이도 해전 기념비를 보기 위해서다.


국내 최초로 차량과 자전거 보행도로를 구분하는 복층구조인 거금대교를 건넜다. 거인상이 맞이했다. 웅크리고 있던 고흥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형상이라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이 강렬했다. 바다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얼마나 짙은지 숨을 깊게 몰아쉬면 금세 온몸이 파랗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고흥여행 소록도박물관.jpg 박물관. 흰 모래와 푸른 솔이 어우러진 해변과 바닥이 말갛게 비치는 푸른 바다가 어린 사슴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다리 너머 소록도(小鹿島)는 유난히 푸르렀다. 소록도에서 녹동항과 거금도 모두 헤엄쳐도 건널 듯 가까웠다. 다시 거금대교를 건너 국립소록도병원 방문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막연한 두려움과 근원을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소나무 사이로 난 데크길에 들어섰다. 바닷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수려하고 정갈했다. 흰 모래와 푸른 솔이 어우러진 해변과 바닥이 말갛게 비치는 푸른 바다가 어린 사슴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중앙공원과 박물관만 허락되었다.


한센병은 문둥병이라 불린 만성 감염병이다. 이 병에 걸린 이들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1916년 일제는 이곳에 자혜의원을 세웠다. 한때 6천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수용한, 약 4.4㎢의 작은 섬, 결코 낙원은 아니었다.


고흥여행 중앙공원 한하운.jpg 중앙공원. 앞쪽 평평한 바위가 한하운 보리피리 시비다. 바로 뒤 사각형 비석이 기념비다. 이곳에 4대 원장 스오 동상이 있었음을 바로 옆 안내판이 전한다.


일본인 원장들은 대대로, 환자들을 동원하여 섬 가꾸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섬 일주도로를 닦고, 벽돌공장을 비롯한 감금실 등 수십 동의 건물을 지었으며, 공원을 조성을 위해 외부에서 들여온 관상수와 바위를 날라야 했다. 일본인 직원의 허락 없이는 쉴 수도 없었다. 강제로 단종수술(斷種手術, 불임수술)을 받고, 죽어서는 해부되었다. 죽음을 견디다 못해 나무토막이나 물통에 의지해 바다로 뛰어든 이도 많았다.


4대 원장 스오는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자신의 동상을 세워 참배까지 강요했다. 결국 환자의 칼날 아래 최후를 맞았다. 동상 앞에 있었다는 매끄러운 침상 같은 바위는 한센인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가 되었다.


수탄장(愁嘆場)도 빼놓을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 지척에 두고도 서로를 안을 수 없었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소다. 매달 단 한 번, 전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부모는 바람을 마주하고 자식은 바람을 등진 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얼굴만 볼 수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되어 서로의 체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이제는 평화로운 산책로가 되었지만.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가장 큰 아픔을 품고 있었다.


고흥여행 구뢰탑.jpg 구라탑. 오마간척사업에 <국제 워크 캠프> 단원 남녀 대학생 133명이 봉사활동을 하였다. 공사에 참가한 단원들이 이 탑을 세워 자신들의 활동을 기념하였다. 탑의 설계는 간척사업을


중앙공원 한복판, 하얀 구라탑(救癩塔)이 푸른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에 눈길이 머문다. 탑이 세워진 1960년대 초반, 소록도에는 전례 없는 활기가 돌았다. 한센병으로부터 완치된 사람들의 정착지를 조성하는 오마도 간척공사 때문이었다. 330만 평의 간척지를 확보하는 대공사였다.


도구조차 부족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맨손으로 바윗덩이를 날라 방조제를 쌓아 올렸다. 손가락이 뭉개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땅에서 살아 보려는 원(願)을 이루기 위해 중노동을 기꺼이 감수했다.

하지만 현실은 비정했다. 인근 주민들과 정치권의 반대로 사업 주도권이 전라남도로 넘어가고, 한센인들은 쫓겨났다. 삶의 터전이 될 땅은 빼앗긴 낙원이 되었다. 봉사활동에 참가한 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구라탑이 당시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흥여행 오마간척지.jpg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 추모탑 뒤쪽으로 보이는 들판이 오마간척지다.


소록도를 나와 서쪽으로 10여 분, 예정에 없던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을 찾았다. 간척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였다. 기념탑 앞에서 본 오마리 너른 평야는 평온해 보였다. 말이 없는 대지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시리게 다가왔다.


추모공원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길어 올린 탓에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읍내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20여 년 전의 추억 속 생선구이를 찾아서다. 명절을 앞둔 시장은 붐볐다. 입구에 걸린 ‘숯불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으며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펼침막이 반겼다. 생선 굽는 냄새가 마중 나왔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아름다운 법일까. 남녀관계만 그러한 건 아닌 듯싶었다. 음식도 매한가지였다. 시장을 나오며 좌판을 하시는 할머니께 요즘 손님이 어떠하냐고 넌지시 물었다. 옛날과 같지 않다고 쓰게 웃는다. 시장 입구 붕어빵 포장마차, 세 마리에 이천 원, 아주 맛있는 생선구이였다.


고흥여행 분청자기박물관 외관.jpg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은 조선 시대 최대의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견된 곳으로, 500년 전 도공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덤벙분청의 성지다.


오후 일정을 서둘렀다. 두원면에 자리 잡은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 들어섰다. 투박한 흙 위에 하얀 분장을 입혀 구워낸 분청사기는 화려한 청자나 고결한 백자와는 또 다른 미를 보여주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모양이 그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단단한 내면인 듯했다.


공간구성도 전시물도 알찼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인상 깊었다. 설화 문학관에서 만나는 고흥의 옛이야기들은 작가에게는 글감의 보고이자,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할 따스한 안식처로 여겨졌다.


1층 카페에서 만난 유자차는 화룡점정이었다. 점심의 아쉬움이 용서되는 맛이랄까. 주인의 섬세한 배려가 담긴 차 한 잔은 고흥 여행의 달콤한 기억으로 남았다. 박물관 우측으로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은 별책 부록과 같았다.


고흥여행 우주과학관 좌측면.jpg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우주의 원리와 로켓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고흥여행 실물형로켓.jpg 실물형 전시장 내부. 기술 유출 우려가 있으니 세부 사진은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안내문이 있다.


여정은 고흥의 가장 깊숙한 곳, 나로도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우주 강국의 꿈이 시작된 나로우주센터다. 세계에서 로켓 발사장을 운영하는 나라는 10여 개국에 불과하다. 안전을 위해 바닷가 끝자락에 자리 잡은 그곳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 멀고 멀었다. 읍내에서 한 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다도해의 비경이 동행했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이곳도 관람객이 많았다. 우주의 기본원리, 로켓, 인공위성 등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과 3D입체영상관, 4D돔영상관, 야외전시장으로 구분하여 전시하였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실물형 전시장이다. 기술 유출 우려가 있으니 세부 사진은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손으로 만든 로켓의 부품과 실제 시험에 쓰였던 기체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은 경이로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그처럼 실감 나기는 또 처음이었다.


고흥여행 우주전망대 모습 솔숲.jpg 우주발사전망대. 로켓 발사 장면을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발사장이 있는 우주센터는 출입통제 구역이다. 로켓 발사 장면을 볼 수 있는 명당은 따로 있었다. 우주발사전망대다. 먼 길을 되돌아 나왔다. 영남면 남열해수욕장 뒤편 언덕에 우뚝 솟아있었다.


높이 52m, 최상층 전망대는 1시간 20분에 한 바퀴를 도는 회전형 카페였다. 나로우주센터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고흥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데, 아쉽게도 미세먼지 가득했다. 우주센터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찬사를 받는 풍광도 오래된 수묵화처럼 흐릿했다. 환한 보름밤 같았다. 한 바퀴 돌 무렵, 고흥 여정이 서서히 갈무리되었다.


고흥여행 우주전망대 외부 낙조.jpg 전망대 풍경. 우주센터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찬사를 받는 풍광도 오래된 수묵화처럼 흐릿했다. 환한 보름밤 같았다.


해가 꼴딱 넘어갔다. 계기판을 보니 주행거리가 300km를 넘어섰다. 갈 길은 아직도 멀리 있는데. 전라남도 시군 중 해남, 순천에 이어 면적 3위라는 고흥의 넓음이 실감 났다. 과역면 삼겹살백반거리에 잠시 멈췄다. 따뜻한 밥상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몇 점을 올리니 하루의 고단함이 녹아내린다.

돌아오는 길, ‘해는 저물어 서러운’ 소록도 가는 길을 걸었던 한하운의 시구와 달리, 길 위의 풍경은 눈부시게 정겨웠다. 설 대목 고향으로 스며드는 자동차 불빛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환한 불빛이 소록도의 수탄장과 오마리의 빼앗긴 들녘을 지나, 나로도의 하늘까지 따스하게 덥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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