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논란 무색케 하는 몸값, 순금 162kg 황금박쥐

나비의 꿈이 깃든 땅, 함평에서 만난 따스한 겨울 풍경

by 쿰파니스
함평여행 밀재휴게소.jpg 밀재휴게소. 통행이 끊겨 옛 번영을 꿈처럼 간직한 채 고요에 잠겨있었다.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추위는 여전했다. 지난 7일, 새벽녘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남 함평(咸平)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호남가 첫대목에 등장하는 함평천지라는 지명의 의미를 가늠해 보았다. 나비의 고장인 봄의 함평은 익숙하지만 생명의 기척이 숨을 죽인 겨울 함평은 낯설어서였다.


여정을 밀재에서 시작했다. 불갑산 동남 방향을 돌아 함평에서 영광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출 명소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밀재 휴게소는 한적했다. 아래쪽으로 터널을 뚫고 큰길을 닦은 터라 통행이 끊겨 옛 번영을 꿈처럼 간직한 채 고요에 잠겨있었다. 굳게 문이 닫힌 식당과 바람만이 머무는 팔각정은 적막했다.


낮게 깔린 구름은 수시로 풍경을 바꾸었고, 간간이 쌀가루 같은 눈이 내렸다. 구름에 가려 장엄한 일출을 마주하진 못했으나 여명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월야면의 너른 들판은 함평천지라는 뜻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두루 화평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함평여행 상해임시정부기념관.jpg 상해임시정부 독립운동 역사관. 중국 상하이에 있어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실제 청사를 본떠서 지어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함평여행 김구집무실.jpg 백범 김구 집무실. 상해임시정부청사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신광면 함정리로 발길을 옮겨 일강 김철(1886~1934) 기념관을 찾았다. 백범 김구와 함께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주도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군무장‧재무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김철 생전의 사진과 독립운동 자료들을 전시하고, 임시정부 회의 장면 등도 보여 주었다.


기념관과 사당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단심송(丹心松)이라는 소나무였다. 1917년 일강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하자 일제의 감시는 홀로 남은 부인 김해 김씨에게 집중되는 건 불문가지. 부인은 남편이 독립운동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고 나무에 목을 맸다. 자신의 생을 던진 여인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하고도 아픈 것이었을까. 매서운 추위에서도 푸르른 잎이 숭고한 넋처럼 여겨졌다.


상해임시정부 독립운동 역사관도 있었다. 중국 상하이에 있어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실제 청사를 본떠서 지어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백범 김구 집무실부터 요원들의 회의실, 화장실, 부엌, 침실까지 당시의 고단했던 타국 생활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상하이에 있는 청사보다 규모를 키워 전시 공간까지 갖춘 공간을 걸으며, 머나먼 타국에서 헌신했던 분들의 고결한 신념을 떠올렸다. 교과서 속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고자 치러야 했던 뜨거운 희생의 현장을 직접 느낀다는 것,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이만한 곳도 없을성싶었다.


함평여행 양서파충류체험관.jpg 양서‧파충류체험관. 건물 외관이 똬리를 튼 거대한 뱀 형상이다.
함평여행 악어.jpg 악어‧아나콘다관. 한동안 기다렸지만 악어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입을 벌리는 게 악어가 제일 편하게 쉬는 자세인가 보다.

기념관을 나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면소재지를 지나니 양서·파충류 생태공원이다. 똬리를 튼 거대한 뱀 형상의 건물 외관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내 최대 양서·파충류 전문 동물원이다. 한국관, 열대관, 악어‧아나콘다관, 체험관 등으로 구분하고 93종 357여 마리를 관람과 체험이 가능하도록 전시하였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이 퍼붓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궂은날임에도 아이와 함께한 가족이 많았다. 모양도 색도 다른 뱀이 칸 칸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유리 너머지만 가까이 다가서기엔 부담스러웠다. 어른들에게 뱀이나 파충류는 징그럽고 무서운 대상이기 쉽지만,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 반응은 전혀 달랐다. 무섭지 않다며, 신기하다며 유리창에 바짝 다가선 그들의 시선은 편견 없이 투명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개구리를, 뱀을, 악어를 보며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방문객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로 보였다.


바로 옆은 함평자연생태공원이 자리잡았다. 양서·파충류 생태공원 관람권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식물원, 전시관, 학습장, 산책로 등을 두루 갖춘 시설이 유혹하였으나 따스한 봄날로 미루었다. 눈을 동반한 싸늘한 바람이 온기를 찾아 옷깃을 파고들기도 했거니와, 점심때가 훌쩍 지나서였다.


함평여행 비빔밥.jpg 함평 비빔밥. 지금은 찾는 이가 적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삶은 돼지비계가 함께 들어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마침 함평천지전통시장 장날(2일, 7일)이다. 설이 코앞이라 제수용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함평시장은 본디 우시장으로 이름났었다. 큰 소장이라 불리며 함평 소 가격이 전남 소 가격을 좌우한다고 할 정도였다.


나란히 있는 비빔밥 거리도 붐볐다. 함평식 비빔밥이라고 하여 예전에는 삶은 돼지비계가 함께 들어갔다. 배고프고 노동이 고되던 시절, 비빔밥 한 그릇으로 최대의 에너지를 얻기 위한 지혜였을 것이다. 지금은 찾는 이가 적어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고소한 풍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신선한 생고기와 나물이 어우러진 비빔밥 한 그릇은 여전히 함평의 그 시절 풍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함평여행 나비곤충체험관.jpg 나비곤충체험관. 벽에 손을 대면 나비가 모인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 한동안 머물렀다.
함평여행 황금박쥐 상세.jpg 황금박쥐상. 황금 43,200돈으로 만들었다. 2008년 제작 당시 27억 원이는데, 금 값이 치솟아 430억 원이 되었다.

오후의 대부분을 엑스포공원에서 보냈다. 나비축제와 국화축제와 빛축제 장소로 활용되는 이곳은 겨울에도 매력이 충분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VR 체험실, 미술관, 다양한 유리온실, 나비곤충생태관, 함평추억공작소, 자동차극장, 산책로 등 볼 거리 즐길 거리가 넘쳤다.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았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함평추억공작소에 전시된 황금박쥐다. 이야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동면 고산봉의 폐금광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붉은 박쥐(오렌지윗수염박쥐, 천연기념물 452호) 162마리가 발견되었다. 금광에서 발견되어 황금박쥐라는 명칭이 붙었다. 군은 이를 보존하려는 염원을 담아 2008년 순금 162kg을 들여 황금박쥐상을 제작했다. 당시 시가는 27억 원이었다.


금값이 치솟아 돈 당 1백만 원을 넘어섰다. 현재 시가로 계산하니 43,200돈으로 430억 원이다. 2019년에는 도둑들이 철제 출입문을 절단하고 침입하려 했던 사건도 있었다. 기존 전시관의 보안과 접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이곳으로 옮겨, 축제 기간뿐만 아니라 언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예산 낭비 논란이 무색하게 이제는 함평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함평여행 딸기케이크.jpg 딸기 케이크. 사시사철 냉동이 아닌 생딸기만을 고집하며, 15평 남짓한 작은 매장에서 시작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노루 꼬리 같이 짧은 겨울 해가 기울기 시작할 즈음, 따끈한 차 한 잔과 달달한 것이 생각났다. 엑스포 공원에서 걸어 5분여, 함평천변에 자리 잡은 딸기 케이크 전문점을 찾았다. 사시사철 냉동이 아닌 생딸기만을 고집하며, 15평 남짓한 작은 매장에서 시작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함평의 성공 신화로 언급되는 곳이다. 겨울 하천을 배경으로 가족과 연인들이 달콤한 케이크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케이크 한 조각에 담긴 달콤함은 여행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낭만적인 휴식이 되었다.


함평여행 고막천 석교.jpg 고막천 석교.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 돌다리다.


마지막 여정은 학교면 고막리에 위치한 고막천 석교(보물 제1372호)다. 본래 계획은 돌머리 해변 무지개다리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날이 너무 추워 낙조를 포기하고 이곳을 찾았다. 고려 원종 14년(1273년), 고막대사가 도술로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 때문에 똑다리라고도 부른다. 목조 양식을 석조 공법으로 정교하게 짜맞추었다. 700년 넘는 세월을 견뎌낸 기술이 경이롭다.

함평과 나주를 잇는 다리로, 1894년 동학 농민 혁명 당시 함평과 나주를 오가던 농민군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과거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드나들던 이 너른 벌판에서, 그들은 어떤 꿈을 꾸며 이 다리를 건넜을까. 투박한 돌덩이들이 맞물려 긴 세월을 버틴 모습은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는 듯했다. 들판의 석양이 바다 위로 번지는 차가운 노을보다 더 붉게 여겨지는 것은,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증이 겹쳐서일 것이다.

함평을 떠나며 돌아본 길 위로 어둠이 내렸다. 함평천지는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을 준비하는 듯 평안해 보였다. 어둠 속으로 밀재에서 본 너른 들판의 여명, 단심송의 숭고함, 겨울 뱀의 화사함, 황금박쥐의 신비로움, 그리고 고막천 석교의 단단함이 훈훈하게 차올랐다. 아이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이의 눈높이를 더하면 또 다른 즐거움으로 더 풍성한 여행이 되었을 터인데.


- <화순매일신문>과 <오마이뉴스>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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