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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Mar 28. 2022

그곳의 바다는 오늘도 고요한가요?

샌디에이고 코로나도(Coronado)를 추억하며


샌디에이고는 유명한 바닷가 도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캘리포니아의 이미지를 완벽히 담고 있는 샌디에이고에서는 도시 중심부를 조금만 걸어도 드넓은 바다와 수많은 배, 늘어선 야자수를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버스나 우버를 타고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몇 시간을 더 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샌디에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던 날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안 정신없이 바빴던 터라,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공항에서야 샌디에이고의 명소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중심지라 불리는 발보아 파크 근처에 숙소를 잡아 두었던 나는 크게 주변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힐링 여행’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발보아 파크와 현대 미술관, 유명한 디저트 가게, 시 포트 빌리지, 사진 박물관까지. 모두 숙소에서 조금씩 걸어서 이동할 만한 거리였다. 걷는 게 조금 힘이 들 때면 라임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 이만하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때쯤 J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욕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친해진 한국인 언니였다. 그 언니는 나보다 훨씬 일찍 뉴욕을 떠났고, 혼자서 미국 서부를 여행한 후, 유럽 일대까지 누비다 귀국을 했다. 언니가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했는데, 내가 SNS에 올린 어학원 졸업장을 보고 연락을 해 온 듯했다. 'C, 어학원 졸업했구나!' 귀여운 이모티콘을 붙인 언니의 메시지에 나는 밝게 화답했다.


- 바로 한국 들어가?

- 아니. 나 샌디에이고랑 로스앤젤레스 여행하고 들어가. 지금 샌디에이고 가는 비행기 타러 공항 왔어.

- 어디 갈지 정했어?

- 음, 일단은 이 정도?


나는 대충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둔 몇 군데의 장소를 캡처해서 보냈다. 언니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 바다는 안 가?

- 바다? 가면 좋지.

- 해 질 때쯤 바다 보러 가면 되게 좋더라. 시간 확인해서 코로나도 비치 가 봐. 나 갔다가 되게 감명받았거든. 엄청 추천!


언니가 한 번 더 귀여운 이모티콘을 붙이며 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도 비치……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곳이었다. 검색해 보니 우버나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알겠다, 고맙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은 조금 귀찮았다. 너무 할 게 없으면 가자. 나는 속으로만 꾹꾹 눌러가며 생각했다.     


ⓒ 김구름


나는 바로 다음날 저녁, 코로나도 비치로 향했다. 할 게 없기도 했지만 사실 그 당시 나는 심신이 지쳐 있었고, 어떻게든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잔잔한 바다를 내 눈으로 담고 싶었다. 아니, 잔잔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요동쳐도 괜찮으니 내 두 눈에 바다의 광경을 심고 싶었다.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심장 박동도 파도 소리에 맞춰 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나는 우버를 잡아 바로 코로나도 비치로 갔다.


그리고 그 (어쩌면 꽤 즉흥적이었던) 행동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 김구름


우버에서 내렸을 때 내가 본 건 분홍빛 하늘과 내 바로 옆에 떠 있는 커다란 주황빛 달이었다. 하늘은 단순한 분홍빛이 아니었다. 아래쪽은 해가 진 것처럼 어두운 빛깔이라 어떤 천재 화가가 페인트 여럿을 부은 후 멋진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곳은 또한 다양한 애완동물들에게도 열려 있는 곳이었기에, 아주 커다란 개들이 모래바닥 위를 뛰어다니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그 옆에서 어린아이들이 까르르 밝게 웃기도 했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년이라는 기간 동안 다른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늘 긴장된 상태로 매일을 보내야 했던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손끝까지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 있을 수 있구나. 나는 일부러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식어버린 여름의 모래가 시원하게 발을 감쌌다.


그쯤 나는 확신했다. 평생 나는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곧장 휴대폰을 꺼내 사진 몇 장과 영상 몇 개를 찍었다. (그때까지 나는 휴대폰을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매우 정확해서 나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앨범에 들어가 내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코로나도 비치를 검색해 보곤 한다.     


ⓒ 김구름


가끔 마음이 심히 요동칠 때면 코로나도를 떠올린다. 그곳의 바다는 오늘도 고요하고 잔잔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코로나도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2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간다. 축하의 눈물도, 행복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감격의 눈물도 아닌, 안정의 눈물을 느끼던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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