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용기

여호수아 1:6-9

by 어린양


밥도 마음에도 매일 먹는 밥처럼 꾸준한 영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특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앙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매일의 ‘밥’입니다.

오늘의 테마는 ‘하나님 나라 사람의 진실 중 용기’입니다.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설렘과 두려움 중 어느 쪽이 더 필요할까요?

두 감정 모두 필요합니다. 두려움이 너무 많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설렘만 있으면 위험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삶이 건강하려면 두 감정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센서와 같습니다. 위험을 감지하게 해주기 때문에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용기와 객기는 다릅니다. 해야 할 말을 하는 것도 용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말을 참는 것도 용기입니다. 용기는 일방적인 정답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호수아 1:5)

여호수아는 자신이 모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지도자로서의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 부담은 건강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람은 종종 누군가 곁에 있으면 자신도 그와 같아진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성에 기대 자신을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처럼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 바로 그 자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밤새 깨어 있어도 헛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면 사자굴에서도 불 속에서도 안전합니다(단 6장, 단 3장).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용기입니다.


은혜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 1:6)

여기서 ‘강하다’(히브리어 חזק, 하자크)와 ‘담대하다’(히브리어 אמץ, 아마츠)는 의미가 겹치면서도 결이 다릅니다. 하자크는 ‘단단해지다/강해지다’, 아마츠는 ‘용기를 내다/굳세다’의 뉘앙스를 가집니다. 성경은 이 두 동사를 1:6, 1:7, 1:9, 1:18에서 반복하여 여호수아의 의지와 마음을 견고히 세웁니다.

이 강함은 한 번도 지지 않는 완전무결을 뜻하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다치고, 회복하고, 다시 서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포괄합니다. 강함은 무너짐을 전제로 한 회복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써 강하고" (디모데후서 2:1)

경험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촉’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 촉을 신뢰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삶입니다. ‘은혜 안에서 강하라’는 말은 내 능력을 과신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은혜의 주권을 인정하는 결단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반복하여 주십니다. 반복은 방심을 깨우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불안할 때마다 "괜찮아"를 되뇌어 아이를 안정시키는 양육자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계속 말씀해주십니다. 여호수아의 근심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비교와 열등감으로 마음이 기우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동일합니다. 예수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사회적 고하와 상관없이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 은혜의 부르심 안에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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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는 사람도 뒤에 있는 사람도 모두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배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평형수’를 채우지 않으면 배가 중심을 잃듯,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생명수로 채워지지 않으면 위기에서 전복됩니다. 겉으로 실은 짐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무게추처럼 버티는 은혜가 생존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 있어야 폭풍 속에서도 안전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용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해 마음의 밑바닥을 채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짐을 드는 사랑, 함께 자라는 용기


외출 준비를 할 때 아이는 바쁘게 가방을 챙깁니다. "이것도 가져가야 해!" 하며 키만큼 큰 브루더 자동차, 색색의 블록, 커다란 인형과 보드북까지 가방에 넣습니다. 오늘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챙겨줍니다. 그 무거운 가방을 결국 드는 건 아빠의 몫입니다. 그래도 예쁩니다.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라며 기뻐 자랑하는 모습이 예쁘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크면 필수품은 엄마 아빠가 챙긴 가방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조금 더 자라면 이제는 함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겠지요. 신앙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설프게 꾸린 짐을 대신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용기를 배웁니다.


말씀대로 사는 담대함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1:7)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순종을 넘어 ‘하나님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죄’(חטא, 하타)는 본래 ‘빗나가다’라는 뜻이며, ‘치우치다’는 동사로 스펠링은 ‘סור, 수르’입니다(‘שור’는 ‘소/황소’의 뜻이므로 혼동에 주의하겠습니다). ‘수르’는 ‘길을 돌리다/벗어나다’를 가리킵니다. 말씀대로 사는 용기란, 세상과 내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결단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기서 ‘묵상하다’(הגה, 하가)는 ‘중얼거리다/되뇌다’라는 뜻이 있어,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삶을 위한 내면화·암송·적용을 포함합니다. ‘형통하다’로 번역된 동사 ‘שכל, 사칼’은 ‘지혜롭게 행하다/성공하다’의 뉘앙스를 지니며, 말씀을 배우고 따를 때 길이 ‘평탄해짐’과 ‘성공’이 연결됩니다. 결국 묵상은 말씀을 씹고 삼키는 영적 소화 과정이며, 그 과정이 우리의 길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9)

하나님의 약속은 위로이자 명령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선언은 상황을 초월한 순종의 요청입니다. 부모가 자녀가 어느 곳에서도 주눅 들지 않기를 바라듯, 하나님은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실 아버지이십니다. 넘어지고 불안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언제나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하루의 끝,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하나님의 평안의 평형수가 가득 채워져 있기를 바랍니다.


본 묵상일기는 새숨교회 전영훈 목사님의 설교에서 받은 말씀을 토대로,

제 개인적인 생각과 일기를 덧붙여 정리한 글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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