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즐기는 당신이 초능력자일수도?
지난 10월 중순,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내가 즐겨듣는 팟케스트에서 듄 개봉소식을 알려준 이유도 있지만, 평소 좋아했던 배우가 출연한다기에 망설임없이 영화표를 예매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는 꼭 아이맥스관에서 봐야한다고 해서 난생처음 아이맥스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도 했다.
이곳에 작성한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이 글은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을 다루기위해 작성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맥스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동은 "영화의 미학을 최고로 즐길 수 있다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앞으로도 이 점을 꼭 기억해두고 미학적인 영화를 볼때는 아이맥스관에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화면이 주는 압도력과 음향에 취해 영화에 집중하다보니 155분의 상영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듄을 보고난 후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영화가 주는 미학적인면이 너무 강렬해서 였을까? 아니면 듄이라는 이 대서사의 아주 일부분만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음편(Part 2)이 기대되서 일까? 참고로 이번 영화는 한국에 발간된 소설책 1권의 반정도 분량을 영화화 한것이라고 한다. 총 6권으로 구성된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예고편을 본듯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프레멘중에 한명인 챠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위대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해"
이번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의 "듄 Part 1" 의 스토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는 미래의 구원자(무앗딥)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첫 시련을 다룬 에피소드다.
먼 미래를 소재로 한 소설 혹은 영화에서 우주라는 공간 혹은 시간이라는 소재가 자주 사용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 히어로, 초능력자로 불리는 그들중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는 왜 항상 등장하는걸까? 도대체 시간과 공간은 왜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시공간을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는것은 과연 초능력자만이 가능한 일 일까?
인터스텔라는 넷플릭스에서, 컨택트는 왓챠에서 서비스가 되고 있다. 듄을 보고나서 이 두개의 영화가 떠올라서 집에와서 다시 시청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터스텔라와 컨택트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이 두 영화에서 시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의 시작과 끝, 길이 등이 각 개인들인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두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통해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 비행을 가게된 조셉은 자신이 가족을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 딸을 설득하려 한다. 속상해하고 있는 머피에게 조셉은 죽은 아내가 했던 말을 빌려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에게 추억이 되면 돼" 라는 대사였다. 영어로 "we just here. to be memories for our kids." 였다. "here"는 현재를 말하고 "memories"는 과거를 나타낸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컨텍트(Arrival)에서 루이스가 영화 초반에 이렇게 말한다.
추억은 이상한거야. 생각과는 다르게 기억돼. 우린 너무 시간의 순서에 너무 매어있어. 이제 내겐 처음과 끝이 별 의미가 없어.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인을 조우하고 그들의 언어(헵타포드어)를 해석하면서 그들의 언어에 시제(과거,미래)가 없고 현재 그 언어를 발산하는 순간에 그 모든 찰라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녀 역시 시간의 순서에 매어서 삶을 살지 않게 된다. 그녀의 딸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녀는 딸과 매 순간의 찰라를 함께하는 삶을 선탹한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다. 몇분 전 혹은 몇시간 전에 누군가와 한말을 곱씹으면서 시간을 허비하는것이 얼마나 소용 없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할때 그 순간(현재)를 충실히 대했다면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고 이불킥했던 순간이 없었을텐데... 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후회라는 단어는 항상 과거를 회상할때 따라붙는다.
후회라는 단어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떠오르게 한다. 드라마 최종화에서 혜자는 이렇게 말한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진학을 위해 기계처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현재를 즐겨라"라는 "카르페디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불안한 삶을 살기보다 현재를 살며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
수 많은 SF 장르의 영화에서 시간을 여행하는 주인공들을 만나왔다. 우리에게 시간은 유한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컨택트에서 루이스가 말한것 처럼 시간이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지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 수 있을까?
영화 소울에서 "영혼22"가 재즈 뮤지션 조 가드너의 몸속에 들어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가을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그 순간, 그 아름다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바라보는것,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것... 수많은 현재의 행복한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능력보다 더 대단한 능력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