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바이브] 비인간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서사
[TV 동물농장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이유]
TV나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는 비인간 동물을 '동물배우'라고 한다. 최근에는 배우가 아니더라도 예능이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아침이면 다같이 TV 앞에 모여 앉아「TV 동물농장」을 시청해왔다. TV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힘든 상황에 처한 동물을 구조한 이야기, 반려동물의 독특한 행동을 제보하거나 잘못된(인간 기준) 행동을 교정하는 이야기 등이 주를 이루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이 프로그램이 약간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고양이들과 함께살게 되면서 이 불편함이 시작된것 같다. TV에 나오는 동물들의 행동을 사람 입장에서 의인화(擬人化)해서 표현하는 연출방식 때문이다. 3~4년 전부터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고양이들의 행동이나 표정을 보면 '이 아이는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TV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성우의 입을 빌려 말을 한다. 작가가 써주고 성우가 말하는 그 언어가 화면에 나오는 동물들의 생각과 동일할까? 아닐 수 있다. 비인간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언어체계가 있을 것이다. 근데 우리는 인간의 기준에서 모든것을 해석하려고 한다. '사람의 기준에서 동물을 촬영하고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내서 이익을 얻는것은 또다른 형태의 착취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TV동물농장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비인간 동물을 인간중심으로 해석하다보면 그들 입장에서는 또다른 형태의 학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수익이 되면서]
최근 반려동물 관련 유튜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를 펫튜브(pet+youtube·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영상)라고 부르기도 한다. 길고양이를 냥줍한 과정부터 집에서 돌보게되는 과정을 기록한 채널이나 반려동물과 살면서 그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채널도 있다. 펫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반려동물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거나 작위적인 자막을 넣어서 만든 반려동물 관련 채널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펫튜브 운영자들에 대해 반려동물을 수익 실현의 도구로만 삼는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반려동물의 영상을 기획, 촬영, 편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려동물의 일상을 담는 영상 제작자라면 최소한 그들이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펫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반려동물 ‘챌린지’ 영상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반려동물 입장에서 '챌린지'라는 난처한 상황으로 만들고 이에 반려동물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영상으로 촬영한 콘텐츠다. 랩으로 만든 ‘투명벽’ 챌린지, 휴지로 벽을 높게 쌓은 ‘휴지벽’ 챌린지 등이 그 예다. 이런 상황 설정은 동물에 위해를 가해 동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대표는 “귀엽거나 신기해 보이는 행위가 동물에게 고통이나 상해를 주는 결과를 낳으면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경제적 이익과 관심을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22년 11월 707호 여성동아 / 이경은 기자)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 출연동물 보호를 위한 내용이 추가되기까지]
22년 상반기에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7화에 나온 낙마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달리는 말을 고의로 넘어뜨려 말(경주마 출신 까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KBS는 ‘사고 이후 외견상 부상이 없어 말을 돌려보냈으나 이후 사망했단 소식을 들었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KBS 측의 무성의한 답변은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의 전말은 트위터와 기사를 통해 더 확산되었다. 2022년 1월 19일 '동물자유연대' 측에서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의 윤리 강령을 살펴본 결과 동물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연이나 야생동물을 촬영할 때 주의해야할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동물 배우’의 안전이나 복지에 대한 고려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동물자유연대는 “미디어가 동물을 대하는 근본적 태도 변화를 통해 약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22년 2월 9일 KBS는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라인'에 '동물 출연'관련 조항을 추가하여 게시판에 공지하였다.
정부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말 학대 사건과 관련해 국내에 미디어 동물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022년 2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농업생명정책관은 '영상 및 방송 매체 출연동물 보호를 위해 머리 맞댄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영상 및 방송 매체 출연동물 보호 안내서(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여, 22년 3월 2일에 첫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22년 12월 조직개편 이후 관련 부서는 없어졌으며 가이드라인의 후속 조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해외의 출연 동물 복지를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
한국보다 비인간 동물 보호 운동이 먼저 발전했던 해외 사례가 궁금해졌다. 동물이 출연한 해외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에 'No Animals Were Harmed'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문구는 미국의 대표 동물보호단체 ‘미국인도주의협회(American Humane Association)’ 와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의 협약을 통해 만들어졌다. 먼저 영화에 동물이 등장할 경우 모니터링을 거쳐야 한다는 협약을 맺었고, 1980년대부터 협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엄격한 모니터링을 통해 승인 받은 창작물에만 "No Animals Were Harmed(아무 동물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라는 인증마크를 엔딩크레딧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왕립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는 출연 동물 복지를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the Welfare of Performing Animals)을 제공하고 있다. RSPCA의 가이드라인이 동물 출연을 계획하고 있는 방송, 영화사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도록 가이드하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가?’(Is it necessary to use live animals?)에 대한 고려다. 다른 방송기술적 대안을 통해 원하는 장면의 구현이 가능한 경우에는 이를 우선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출연 동물 보호를 위한 제작 가이드라인 현황 /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해외방송정보 2022년 4월호_영국 통신원 주대우)
[한국최초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한국에서 최초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배포한 곳은 '동물권행동 카라'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크게 4가지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1장은 설문조사와 모니터링을 통한 실태분석이다. 2장은 동물, 인간이 안전한 미디어를 제작하기 위하여 갖춰야 할 원칙과 촬영 현장의 세부 사항, 종별 가이드라인을 담겨있다. 3장은 법률분석 내용이다. 미디어 동물학대 주요 사건이나 가상의 사례들에 따른 법적인 판단과 처벌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4장은 국내 최초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PDF 다운로드 링크] :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MQNB1q1J9B4GA_IxyVV6TMC9kRV0ebdy/view?usp=sharing
[캐나다 체크인, 비인간 동물과 동물이 공존하는 서사]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 말까지 tvN에서 방영한「캐나다 체크인」은 유기동물 임시보호(임보)와 입양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프로그램이었다. 제주도에서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임시보호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효리도 활동가중에 한명이다. 활동가들은 구조된 유기견들을 임시보호하며 인간과 함께 살수 있도록 사회화 하는 과정을 함께한다. 사회화가 되는 시간은 비인간 동물마다 다르다. 그리고 입양이 완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어떤 유기견들은 한국에서 입양이 되지 않아서 해외로 입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체크인'은 캐나다로 입양을 간 유기견들이 반려인들과 지내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총 6회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이 좋았던 이유는 너무 많아서 모두 열거할 수 없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3회차였다. 이효리는 토피노에서 순심이(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와 닮은 개를 바닷가 산책중에 만난다. 성큼성큼 이효리에게 다가오는 순심이와 닮은 그 아이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찼을때 눈물을 왁칵 흘렀다. 이효리는 "어딜가도 순심이가 있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녀가 꾸준히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활동을 하는 이유도 거리에서 만난 모든 개들이 순심이 처럼 느껴져서 일 수 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는 비인간 동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집에서 함께 살기도 하지만 길거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우린 그들과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여러 방법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런 방법을 찾기위해 미디어에서도 꾸준히 노력을 해야한다. 앞으로도 '캐나다 체크인'과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퍼스트 카우」는 19세기 미국 북서부의 작은 마을에 등장한 첫번째 소와 두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숲속에 숨어있는 중국인 킹 루와 요리사 쿠키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이 둘은 우연히 마을 유지 집에 묶여있는 암소의 젖을 몰래 짜낸다. 그리고 이 우유를 사용해 케익을 만들어 팔게된다. 이 영화의 서사에서 요리사 쿠키와 젖소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젖소의 우유 덕분에 빵을 만들어서 팔 수 있게된 쿠키는 밤마다 젖소를 찾아가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며 따뜻한 손길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눈을 맞춘다. 비인간동물을 대하는 쿠키의 행동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의 공장식 축산은 젖소를 착취하는 구조이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몸을 쓰다듬으며 감사를 표시할 수 있는 관계는 불가능하다. 이 영화를 통해 젖소와 인간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