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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Feb 20. 2023

『소년이 온다』 가 만들어 가는 세계

김승복의 책으로 만난 사람들 01




소년이 온다가 만들어 가는 세계


일본 도쿄에서 한국문학을 주로 번역 출판하는 출판사 ‘쿠온’을 꾸린 지 15년째가 됩니다. 7년 전인 2015년부터는 책방 거리 도쿄 진보초에 한국 책을 주로 파는 책방 ‘책거리’를 열어 책 좋아하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책거리’에서는 책도 팔지만 한 해에 약 100회가 넘는 북 토크 이벤트를 통해 이야기들도 팝니다. 그 덕분에 책방은 늘 북적북적합니다. 사람 이야기, 책 이야기가 새롭게 쌓입니다.

얼마 전에는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가 주최하는 독서모임에 초대되어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첫 작품 『일식』을 비롯하여 최근작 『한 남자』까지 번역되어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히라노 팬들과 함께 한 그날의 독서모임 주제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였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채식주의자』를 비롯하여 『흰』, 『희랍어 시간』, 『노랑무늬 영원』, 『소년이 온다』에 이어 에세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까지 번역되었습니다. 이미 일본에 팬들이 많고,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의 번역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도 많지요.

히라노 작가의 독서모임은 그가 직접 고른 다른 소설가의 작품에 대해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석 달 동안 세 번에 걸쳐 작품은 물론 그 작품을 둘러싼 여러 정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첫 번 모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히라노 작가가 강연을 하고, 두 번째는 한강 작가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모임에서는 일본어판을 출간한 ‘쿠온’의 대표인 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많이 번역한 김훈아 선생과 사이토 마리코 선생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강 작가가 시를 쓰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독자들은 한국인들이 시를 사랑하는 까닭을 묻기도 했습니다. 한국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한국인들이 시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지하철역 곳곳에 시가 적혀 있는 걸 정말 부러워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 수유리가 어떤 곳인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수유리는 작가가 열 살 무렵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간 동네입니다. 그가 열 살 무렵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서울의 가장 북쪽 수유리는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집값이 비싸지 않으면서 또 아주 추운 곳이기도 했지요. 눈 밝은 독자들은 4.19 민주묘지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독자들은 한강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새의 이미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 속 새들은 약한 존재, 그러나 목소리를 가진 존재입니다.


현역 패션모델 20대 여성 마에다 에마 씨도 한강 작가를  좋아합니다. ‘BTS’로 한국 문화에 입문했다가 RM이 추천한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국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습니다. 혼자 관련 책들을 찾아 읽다 급기야 전문가를 모시고 한국 민주화를 주제로 이벤트를 열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책은 이렇게 읽은 이를 바로 움직이게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인문서 출판사로 유명한 ‘이와나미 쇼텐’ 사장을 지낸 오카모토 아츠시 씨도 『소년이 온다』를 읽고 출판 관계자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열었는데, 자신의 발제문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소년이 온다』에는 기억의 주체들이 확실한데 19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의 제노사이드를 그린 일본문학에는 기억의 주체가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일본어권 독자가 한국문학을 찾아 읽고 주위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자주 갖습니다. 한강 작가는 물론이고, 김연수, 최은영, 정세랑, 박민규, 강화길, 장강명 작가들 작품도 줄지어 번역되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K-POP 등 엔터테인먼트뿐만이 아니라 한국문학도 이렇게 일본 독자들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음을 현지에서 새해 인사를 겸해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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