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바로 '언젠가'는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경매 책을 하나 구매했다. 부동산을 사서 월세를 받는 집주인이 되고 싶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칭호가 얻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책 한번 들춰보지 않았다. 마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경매책을 구매하기는 했지만, 실행하기까지는 엄두가 안 났던 탓이다. 더 늦기 전에 남들 다 뛰어드는 부동산 세계에 진입하고 싶기는 했지만 도저히 책 한 장 열어보는 일이 그렇게 두려웠다.
언젠가 쓸 것 같아 미리 사둔 요리 도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엄마표 영어 교구, 롱보드 타는 사람이 너무 멋져서 샀던 스케이트보드, 언젠가 가르치고 싶은 첼로, 각종 스포츠용품과 캠핑용품이 '언젠가'라는 이름으로 집에 묻혀 있었다.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집을 더 비좁게 만들고 있었다. 전부 버리면서 내 욕심도 함께 버렸다. 아이에게 엄마표로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마음, 아이가 만능 스포츠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주말이면 함께 캠핑을 즐기며 가족이 함께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말이다. 거창한 캠핑 대신 간단한 소풍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근처 공원에 아침 일찍 가서 늦게까지 놀다 온다.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탔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돈부터 썼다. 하고 싶은 내 마음을 돈으로 표현했다. 물건을 샀고, 관련 책을 샀고,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물건은 쓰지 않았고, 책은 읽지 않았고, 학원은 가지 않았다. 하고 싶기만 했던 불붙은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쉽게 꺼졌다.
하지만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당장 바로 했다. 전동 킥보드가 고장 난 것 같으면, 바로 수리 업체를 찾아 맡겼고, 아이들 맞지 않는 옷이 있으면 바로 이웃들에게 선물로 드렸다. 아이들 옷을 받으면 한참 동안 베란다에 처박아두다가 한 달 정도 후에 주섬주섬 찾아보기 일쑤였는데, 그것도 받자마자 바로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마다 하다 보니, 일이 쌓일 틈이 없었다. 몸도 여유롭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마감 기한이 늘 쫓아오는 것만 같아 불편했던 마음이 정리되었다.
비움은 선택의 문제였다. 무엇을 남길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몸에 어울리는 옷은 어떤 건지, 내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물건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시간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관련 책과 영상을 찾아보았다. 방 한 칸에서 혼자 살면서 다도실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사사키 후미오도 놀라웠고, 여행하는 삶이 익숙해 간단하게 사는 백은덕 김종민 작가 부부도 놀라움이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20만 원 넘게 장을 보고도, 빈약한 밥상을 차려내곤 했는데 소박하지만 정갈한 그들의 밥상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버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무엇을 쓰고, 남길지를 고민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쓰레기는 고민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어 혐오감마저 들었다. 그때부터 쓰레기를 바로바로 버리는 습관을 들였다. 쓰고 나면 바로 버리는 습관 하나만으로도 집은 한결 정갈해졌다. 더러움은 전염된다고 한다. 공대생인 남편에 따르면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사물은 혼돈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정리정돈을 해도, 집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 물건이 줄어드니 집을 정리 정돈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매일 버리다 보니, 물건을 사는 일에 더없이 신중해졌다. 매일같이 택배 박스를 받는 나였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나서 '진짜 필요한 것이 맞아?'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식재료 하나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먹을 거야?'라고 셀프 청문회를 연다. 콩나물은 국과 나물을 만들고, 단호박은 에어프라이어로 쪄서 아침에 먹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을 때야 비로소 지갑이 열린다.
매일같이 버리면서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버릴 거면서 도대체 왜 샀나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면 뭘 하나. 차라리 그 시간에 신중하게 소비해서 알뜰하게 쓰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임기응변이었다. 이번 주 주말에 여행을 가야 하면, 아이들 옷 박스는 살펴보지도 않고 필요한 옷을 갑자기 구매했다. 마트 가기 전에는 냉장고 한 번 열어보지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샀고, 내키는 대로 음식을 만들었다가, 썩으면 한참있다가 그제야 억지로 버렸다. 그동안 이렇게 살림을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었다니 하는 자책이 이어졌다. 고장 나서 쓸 수도 없었던 전등을 5년 동안이나 간직하고 있었던 걸 알았을 때 화가 났다. 왜 미리미리 체크해보지 않았을까. 그저 집안 물건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지 못하고, 혼자 방치된 채 내버려 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변명은 많았다. 매번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항상 나를 찾았고, 삼시 세 끼와 빨랫감은 쉬지 않고 나왔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다음에는 직장인 모드였다. 누가 어떻게 전화 올지 확인하고 챙기는 일이 이어졌다. 해야 하는 일은 쌓이고 또 쌓였고, 오늘 일을 어찌어찌 넘기면, 내일의 나에게 얹어져야 하는 일은 늘어났다. 컴퓨터를 끌 새가 없었다. 언제 누군가 전화해서 갑자기 일을 시킬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택배도 늘고, 한숨도 늘고, 살도 늘고, 짜증도 늘었다. 분리수거하러 가는 날이면 우리 집만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전부 플라스틱 용기와 배달음식 박스, 택배 박스들이었다.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조금만 버리면서 살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플라스틱을 먹나?' 싶을 정도였다.
물건을 사는 일 외에도 누군가와 만나는 일에도 신중해졌다. 누군가를 만나서 내가 쓰레기만 얻고 돌아오게 될까 싶었다. 누군가와 만남에 상처 받지 않고, 오롯이 나로 인정해주고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와 만나고 돌아와 심란해지던 밤, 괜한 일에 상처 받지 말고, 나로 꼿꼿이 서기로 했다. 내가 나를 숨긴다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 마음에 들었다 한들 내 마음 다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집에 9살 6명과 6살 3명이 놀러 왔다. 한 시간 만에 집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과 10분 정도 정리하니 집이 깨끗해졌기 때문이었다. 물건의 제자리가 어딘지 알고 있고,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나니 놀고 있는 과정 중에 더러워진 물건 몇몇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집 정리가 끝났다.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하기 잘했다 싶었다.
느리긴 하지만, 아이들은 정리를 시작했다. 친구를 초대하고 난 뒤면 스스로 방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쓰레기와 남길 것을 분류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면 빨래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밤늦게 들어와 자고 일어나면 삶의 궤적을 유추할 수 있게끔 흔적을 남기는 남편도 달라졌다. 적어도 저녁에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쟁반째로 싱크대까지 가져다 두었고, 잠옷도 제자리에 걸어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잠들려는 노력만으로도 감사하다.
4년 전, 정리정돈 컨설팅을 받고 난 이후가 떠오른다. 전문가 6명이 집으로 와 아침 9시부터 밤 6시까지 정신없이 버리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1시쯤 지나가자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4시간쯤 지났는데 집은 여전히 더러웠고 정신없었다. 후회했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탔다. 150만 원이라는 금액이 아깝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되어 마무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왔을 때, 하루 만에 달라진 집을 목격했다. 짐으로 가득 쌓여 정신없었던 짐들이 서로 각자의 자리에 놓여 제자리임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책, 장난감도 제법 정리가 되었고, 옷도 쌓아두니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한 번에 정리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간신히 유지했던 집은 다시 폭탄 맞은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말이다.
“엄마, 요즘 착해졌어.” 최근 나를 두고 아이가 한 얘기다. 집이 잘 정돈되어 집안일이 사뭇 편해지고, 마음이 편하다 보니 많이 너그러워졌다. 아마 내 몸과 딱 붙어 있는 아이가 제일 먼저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너무 착해져서 망태할아버지한테 동그라미표 받은 줄 알았어.” 그랬구나. 엄마가 어린 너한테 기대가 너무 많아서 화를 많이 냈던 것 같아. 엄마 상황이 나빴던 건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버릴수록, 나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버릴 것이 없다고 느낄수록 버릴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면밀하게 나에게 묻게 된다.
“너한테 정말 필요하니?”
“너한테 정말 소중해?”
매번 그런 선택을 종용하는 질문 속에서 나를 가다듬어가게 된다. 나는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이들과 놀이터나 공원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캠핑에서 불 피우며 고기 구워 먹고 와인 마시는 것은 좋지만, 텐트에서 자는 것은 불편하다.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텔레비전 보면서 치킨 먹는 것이 소중하다. 커피 마시면서 테라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차는 있지만, 보통은 버스나 걷기 이동을 좋아한다.
비움은 스스로를 돌보는 행동이었다. 나를 더 아끼고, 내 주변의 환경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었다. 비우다 보면, 나를 제대로 채우고 싶어 졌다. 매일 조금씩,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