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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r 09. 2020

불안이 과도한 상사와의 재택근무

미매뉴얼 이야기

요 며칠 동안 확진자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집단 감염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스타트업과 IT 기업은 물론, 시스템이 갖춰진 대기업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아마도 3월 말까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퇴근에 시달릴 필요가 없고, 내 생활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은 재택근무의 장점입니다만, 커뮤니케이션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또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메신저와 메일은 우리를 일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요.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라는 원래의 속성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죠.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어려움 투성이니까요. 하지만 이 재택근무라는 것이 ‘고립감’을 키우기 쉽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불신’도 키우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도 직원들 하나하나 행선지까지 체크해야 직성이 풀리던 상사, 불안이 많고 직원들을 믿지 않던 상사가 화상회의나 메신저를 통해서도 날뛰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정말 ‘그냥 출근하는 게 낫지, 이게 뭔 짓이냐’ 싶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불안이 많아서 직원들을 힘들게 만드는 상사와 재택근무를 할 때 조금이라도 덜 피곤해지는 몇 가지 팁에 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불안도가 높은 상사의 특징


우리는 누구나 불안해지는 시점이 있습니다. 꼭 성공해야 하는 중요한 PT나 실수하면 큰일 나는 고객 미팅이 있는 경우, 혹은 강압적인 상사와 마주 앉아서 하는 연봉협상 같은 것들은 우리의 예민함을 한껏 높입니다. 굳이 외부 상황이 아니더라도 지난달 신나게 Flex 했던 카드값은 돌아오는데 잔고는 달랑할때도 불안은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런 불안이 꼭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업무를 확인하기도 하고, 고객의 요구에 더욱 귀 기울이며, 나의 과소비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특정한 사건이나 구체적인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아닌,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불안도 있습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봤던 것을 또 보고, 계속 초조해하면서 습관적으로 긴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상대방을 옥죄는 유형도 있습니다. 후자는 좋은 말로는 완벽주의자라고 하겠지만 자기 일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 환경까지 통제하려고 드는 모습을 보면 '미친 X'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만약 상사가 나에게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주변 동료들은 자유롭게 그냥 둔다면, 이런 경우는 상사의 불안 이슈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상사에게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속된 말로 찍힌 거라고 하죠..) 하지만 오늘 글에서 다룰 '불안이 과도한 상사'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옥죄면서 통제하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사에게 재택근무는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지옥이죠.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는 그 특성상 사람에게 '고립감'을 키우게 되는 동시에, 직원들의 근무 여부나 일의 진행 정도를 '시각화'시키기 어려우니까요.


불안이 높은 사람에게는 나의 불안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내 요구에 맞춰 일이 진행되는지를 시시각각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불안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불안이 높은 상사들은 팀원들이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내는 출근 시간을 매우 중시하고, 팀원이 외근을 나가더라도 순간순간 위치를 알고 싶어 합니다. 게다가 자기가 야근하는 날이면 팀원 전체가 다 야근을 해야만 합니다. 고립되지 않는 동시에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재택근무는 이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물론 일하는 동안 웹캠을 켜놓으라고 지시한다거나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공유하는 식으로 밀착 감시하는 기술은 있지만 이 역시 간접 확인일뿐입니다. 눈 앞에 두고 지켜보는 사무실만 못하죠. 재택근무 속에서 불안도는 한껏 높아지고, 그래서 카톡을 계속 보내고 1초라도 늦게 대답하면 화를 냅니다. 웹캠 화면에 몇 분이라도 안 보이면 당장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유형의 상사는 안 만나는 게 최선입니다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이런 상사와도 일 하라고 주는 월급이니.. 재택근무를 하는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기대하지 마세요. 안 바뀝니다.


상사의 과도한 불안은 절대 고쳐지지 않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달라는 거 시간 맞춰서 줬으니 좀 잠잠하겠지', '상무님 보고 끝났으니 조용하겠지' 같은 것들은 기대하지 마세요.


상황이 나아지면 불안과 긴장도가 줄어드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그렇고, 늘상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던 사람이라면 그냥 계속해서 그러겠구나라고 미리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2. 'Output image'를 '사전에' 보여주세요.


이런 상사와 일을 할 때 매우 중요한 것이 ‘시각화’와 '디테일'입니다. 일을 시작할 때 일의 데드라인과 수행 방식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마시고, 무엇보다 ‘일의 예상 결과물의 모습’ 즉 매우 디테일한 ‘Output image’를 '사전에'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시각 정보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매우 필요한 요소이니까요.


"영업 데이터 정리해서 10시까지 드릴게요"


이렇게 얘기하지 마시고 조금 더 시각화해서 커뮤니케이션하셔야 합니다. 바로 이런 식이죠.


“지난달 영업 회의 때 팀장님께서 상무님 앞에서 발표하셨던 엑셀 포맷에 맞춰서 영업 데이터를 10시까지 전달드리겠습니다. 제품별 매출 비중이 아니라 고객사별 매출 비중 순으로 정리된 파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난달에 있었던 영업 회의 자료 해당 부분을 캡처해서 메신저로 보여주는 식입니다. 매우 에너지 소모하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만, 그래도 불안에 날뛰는 상사를 화면 너머로 보는 것보다는 나으실 테니 권장드립니다.



3. 짧게 짧게 치고 나갑시다.


여러분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 있겠지만, 상사의 리듬에 맞춰 짧은 간격의 보고를 반복하는 게 좋습니다.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게 중요합니다. 두 시간 간격이면 두 시간 간격, 세 시간 간격이면 매 세 시간 간격입니다. 간단히 무슨 일 하고 있고, 진도 현재 얼마나 나갔고, 최종 보고는 언제 가능하다는 정도의 간략한 내용이면 됩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으시겠지만, 사무실에서 상사가 내 뒤를 지나가며 내 컴퓨터 화면 쳐다보던 것을 대신하는 것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4. 퀄리티보다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지킵시다. 


시간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는 그래도 다만 몇 분이라도 여유가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약속 시간이 되면 사람의 신경이 온통 작은 컴퓨터 화면에 집중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고, 그만큼 인내심이 짧아집니다. 무조건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제일 좋은 건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먼저 보고를 하는 거죠. 불안이 높은 사람은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매 분 기하급수적으로 불안이 올라갑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박수도 올라가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잔뜩 나옵니다. 보통 사람에겐 드문 경험이지만,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매 약속 시간에 이런 행태가 나타납니다. 그래도 10분 전 정도에는 아직 통제할만한 불안일 테니 먼저 보내서 불안을 낮춰주고, 스트레스 상황까지 가지 않게 만드는 겁니다. 한 번이라도 늦으면 다음부터 이 상사는 여러분이 ‘항상’ 늦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자기 불안에 커다란 상처를 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때문에 내용이 아무리 부실하고, 모양새가 아무리 볼품없어도 무조건 약속 시간 전에 보내야 합니다. (불안은 미래나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입니다. 허접한 결과물 때문에 깨질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시간에 맞춰 보고하면 문제가 되는 불안은 낮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의 품질이 허접한 것은 눈으로 확인된 것이기에 짜증은 몰라도 불안의 대상은 아니니까요)




이상에서 드리는 간단한 팁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내 자존감에도, 회사의 실제 성과에도, 부서의 실적에도 별 의미 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상사가 자기 불안을 못 이겨서 미친 짓을 늘상 하는 인간이거나 통제 욕구의 화신이라면 조금이나마 편하게 월급 받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기는 합니다.


3월 말 정도가 되면 코로나가 정말 조용해져서 이런 불필요한 고민들을 조금은 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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