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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12. 2020

'오프라인의 온라인화'와 코로나 19

코로나 19가 불러올 경쟁 문법의 변화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는 코로나 19로 인해 태풍으로 바뀌었는데요, 오늘은 TV 시장에서 있었던 간단한 변화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조금 옛날 얘기긴 합니다만,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라는 화두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주제입니다. 




1. 2000년대 LCD 스크린의 등장과 TV 시장의 변화 


2004년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LCD TV '보르도'가 소니의 M/S를 처음으로 따라잡았던 사건, 그리고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Vizio가 판매량 1위에 등극한 사건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헤게모니 싸움의 진행과정과 디지털이 어떻게 대세가 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TV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화면'은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브라운관의 화질은 전자총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전자총을 만들고 설치하는 과정은 아주 예민해서 수십 년의 노하우를 가진 숙련공의 가이드가 없이는 완벽한 화질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LCD TV의 화질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됩니다. 화면 뒤의 백라이트 유닛의 밝기와 리퀴드 크리스탈의 움직임은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로 다룰 수 있는 복잡함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래서 반드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고, 소프트웨어 기술이 화질을 좌우하게 됩니다. 


소니는 삼성보다 수십 년은 먼저 브라운관 TV를 생산해왔기 때문에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었고, 후발 업체가 이것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바로 2000년대 초반까지의 TV 시장 경쟁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LCD TV에서는 '숙련공의 축적된 노하우'라는 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LCD TV의 품질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는 기술자의 '감'이 아니라 수천 개의 명령어로 짜여진 코드를 작동시키고 문제점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이 핵심이었습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엔지니어의 능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자총처럼 수십 년의 숙련이 아니라 단기간의 전문적 교육으로 능력을 향상할 수 있었습니다. 브라운관 TV 기술자는 초짜 시절부터 수십 년간 도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면 LCD TV는 석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코드를 짜는 것이지요. 


개인의 '감'은 누군가에게 교육하고 그것을 개선시키기가 매우 까다롭지만 소프트웨어는 표준화된 교육이 가능하고 끝없이 개선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LCD TV는 브라운관 TV보다 얇다는 것 이외에는 큰 장점이 없었습니다. 화질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화질을 따라잡은 것은 물론, 2010년 전후로 브라운관은 TV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삼성의 TV M/S 역전은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LCD TV는 삼성의 M/S 역전 이외에 또 다른 여파를 가져옵니다. 소프트웨어는 누구나 카피할 수 있고 훈련된 엔지니어라면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어느 회사든 패널만 공급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TV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전처럼 거대기업에서 수십 년에 걸쳐 기술자를 양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이용해 미국의 한 작은 스타트업이 2000년대 중후반 미국 TV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합니다. 바로 Vizio라는 회사입니다. 물론 대형 TV는 여전히 소니와 삼성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중소형 TV의 판매량이 더 많았기에 가격이 저렴한 Vizio가 판매량에서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다만 매출액으로 따지자면 삼성, 소니에는 상대가 안됐습니다. TV는 크기가 커지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섬세한 아날로그 제조업이었던 TV 생산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저렴한 조립업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영업망 외에는 아무런 생산 노하우와 기술을 갖추지 못한 업체도 초대형 업체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Vizio가 보여준 셈입니다. 



2. 코로나 19 이후 오프라인의 온라인화가 갖는 의미  


갑자기 15년도 더 지난 TV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시장의 변화가 향후 3~5년간 일어날 '오프라인의 온라인화'와 맥락을 같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바로 개인의 감, 노하우는 경쟁력을 잃고 완전히 '데이터화'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서비스가 중요했던 상점, 식당에서 이제 고객 응대는 키오스크가 담당한다. 

콜센터 상담사는 챗봇과 AI 상담사가 대신할 것이다. 

패션 상품을 구매할 때도 점원의 추천보다는 온라인의 수많은 리뷰와 비교 정보가 더욱 중요하며

배달 음식은 입소문 대신 배민 리뷰의 별점이 더욱 신뢰받을 것이다. 

현장에서의 라뽀(Rapport) 형성이 중요했던 교육 역시, 지식 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될 것이며

실습이나 발표가 필요한 학습은 온라인 사전 과제와 영상 촬영 등으로 대체된다. 

Peer group의 명성과 교수진의 명성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던 대학교들 역시 재편될 것이다. (2020년 1학기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Mooc 나 TED가 더 낫겠다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미용사, 피부관리사 역시 기계를 이용하고 표준화된 레시피를 통해 얼마든지 프랜차이즈화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프랜차이즈 본사는 굳이 플래그십 매장이 없이도 얼마든지 운영이 가능하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역할은 마케팅, 제품의 매뉴얼화, 레시피 및 원료 공급, 인테리어 등 부가적인 영역에서의 통일성 제공을 통해 훈련되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의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디지털화될수록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갖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중요했던 B2B 영업 역시 화상회의 등을 통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실제로 코로나 19 이후 해외 수입/수출은 온라인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 19가 가져올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는 그간 진행되었던 추세의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경쟁의 문법 자체를 완전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산업에서 온라인화는 무리다'라고 주장했던 분야들 모두 온라인 이외에는 선택지가 사라졌으며, 이런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도 누군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나의 '감'과 '노하우'를 복사하고 더욱 개선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배달의 민족'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은 단순한 앱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대의 식당이 되었습니다. 배민은 9조 원이나 되는 음식을 팔며 데이터를 쌓았고,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수십 년 동안 음식 솜씨를 갈고닦고 판매 노하우를 쌓았던 식당 사장님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고수이자 시장 지배자라는 뜻입니다. (배민이 당장 거래를 끊으면 망할 식당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세요.)


오프라인의 온라인화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존재했던 공유경제 역시 차츰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코로나 19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에어비앤비처럼 경험을 판매하는 공유경제는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런 업체들보다는 예전 골드러시 시절 마차나 청바지를 판매하던 업체들처럼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를 지원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업체들만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플랫폼에 따른 종속화와 AI에 의한 자동화가 결합되면 오프라인 상권과 그 속의 노동자들 모두에게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당연히 핵심 지역을 제외한 상업용 부동산도 마찬가지겠지요. (조물주 위에 있던 건물주도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날로그 정보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오프라인이 데이터에 기반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펼쳐질 변화들입니다. 삼성에 밀렸던 소니, Vizio에 밀려난 수많은 미국 로컬 브랜드들의 운명과 우리나라 오프라인 사업체들, 그 속의 노동자들의 운명이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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