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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Apr 03. 2022

MZ 세대의 이른 퇴사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회사 경영자의 시각에서


MZ 세대의 이른 퇴사, 담당 업무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퇴근하는 등의 행태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기성 세대가 많은 것 같은데, 시각을 달리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 제조업 분야에서는 이 세대 이후 경쟁력이 낮아지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닦고 기름치고 조이며, 일사불란한게 매우 중요한 산업인데, 자기 희생적 태도가 몸에 배여있지 않으면 불리한 거 맞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기성 세대의 시각에서는 위기일거다. 아마도 제조업과 비슷한 노동집약적이며 숙련도가 중요한 다른 분야들도 비슷한 골머리를 썩을 것 같다. 


2. 나머지 분야는 내 시각에서는 그냥 거래 관계가 바뀌는 거다. 


3. 예전엔 근로 계약 이전에 하나의 “회사 공동체의 일원” 이라는 의식이 매우 강했다. “가x같은 회사” 라는 말이 2000년대 초반까지도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취업희망자들에게 전달되었음을 상기하자. 이 말은 근로계약보다 개인적인 친소관계가 더 중요했고, 회사가 좀 덜 주는 대신 성과가 안나와도 적당히 갈구기는 하지만 어지간하면 같이 가는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4. 지금의 MZ 세대에도 예전 분위기처럼 일할 인력은 많다. 가족같은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을거다. 다만 예전보다 이런 사람의 비율은 분명히 낮다. 그래서 어느 덧 철저하게 받은 만큼만 하겠다는 사람들이 대세가 되어가는 것이고, 이들을 붙잡는 방법은 더 좋은 연봉/복지/비전 패키지 뿐이다.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미쳤다고 땅비싼 서울에 사무실 마련하고 직원들 월급 1천만원에 가깝게 주고 스톡옵션 주고, 재택근무 유지하는 것 아니다. 


5. 그럼 이런 MZ 세대의 태도가 잘못된 것인가? 솔직히 생각해보자. 프리랜서랑 계약해서 일시킬 때 출근 시간을 따지나? 사무실 청소는? 복사기 잘 다루는 건? 회사 출근해서 인사 안한다는 건? 회식때 숫가락놓고 고기 굽는 건? 프리랜서랑 계약할 때 “상황 보면 뭐가 필요할지 알테니 니가 눈치껏 해줘” 라고 일 시키는 경우는 없다. 그러면 그 담당자 목 날려야지. 해야할 일의 목표, 수행 방법, 예상 결과치, 사용 예산, 데드라인, 중간보고 일정, 보고 방법, 결과물 확인 및 QA, AS 등을 모두 따져보고 그제서야 프리랜서를 불러서 일을 시킨다. MZ와의 관계는 이렇게 가져가면 된다. 


6. 물론 이 시각엔 세 가지 정도의 문제가 따라온다. 우선 주니어를 데리고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업무들인 경우 답이 없다. 두번째, 인건비가 크게 늘어난다. 세번째, 프리랜서에게 일을 제대로 나눠주려고 해도 이 일을 나눠줄 직원은 분명 조직에 헌신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7. 주니어를 데리고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사업은 안되었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한다. 서양의 인건비가 괜히 비싸진 것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만약 이런 트렌드를 못쫓아가면 그 산업은 사양산업이 되는거다. 예전에 섬유나 봉제 산업이 국내에서 사라져갔던 길을 가는 것. 나보고 니가 그런 일 안하니 쉽게 말하지라고 하시는 분들 있겠지만, 내 사회 생활 10년차까지 했던 일들의 상당수가 사양 산업 구조조정되었다. 산업이 바뀌는 것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대표자의 노력이나 그간 쌓아온 경험과 아무 상관없이 가혹하게 일어난다. 수레바퀴는 사마귀가 노력한다고 막아지는 거 아니다. 예전엔 고등학교 중퇴자 데려다가 주방 일 가르치고, 오토바이 태워서 배달시키고, 먹여주고 재워주니 월급 20~30만원만 줬다면 이젠 이 자리를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재료가 아침에 배송되고 라이더 업체에 외주를 줘야 한다. 사회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소득이 높아진다는 건 이런 뜻이다. 이렇게 높아진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했을 때 소비자가 발길을 끊으면 그 사업은, 그리고 그 산업은 경쟁력이 없는거다. 왜 제조업체들이 중국, 동남아, 남미로 떠났었고, 왜 요즘 가장 핫한 AI 업체가 동영상 및 목소리 자동 제작이며, 배달비가 1만원에 육박하는지 잘 생각해보자. 


8. 인건비는 높아진다. 대신 오래 붙잡고 있을 인력은 줄어들게 되고 쓸데만 비싸게 쓰면 된다. 사무실 공간 줄이고, 프리랜서는 일주일에 한번 카페에서 미팅하거나 온라인 미팅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오버헤드 줄이면 인건비 상승분 감당 가능하다. 공장 돌릴 최소 인력이 무조건 필요한 제조업이나 기계장치업종이 아닌 한 비용 줄이겠다고 맘 먹으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대표되었다고 사무실 넓게 쓰거나 벤츠 끌고다닐려고 하고, 자기 출근하는 주차 공간은 따로 써야겠고, 그래도 체면은 따져야 하겠고 등등. (프리랜서만 고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외에는 다른 걸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9. 최소한의 헌신적이면서도 프로젝트 리딩을 할 인력들이 필요하다. 헌신성만 따질 것이면 이런 인력은 그래도 좀 찾을 수 있다. 지금도 회사 5년 이상 다니려는 사람 많다. 경영진이 먼저 배신 때리지 않는 한 꾸준히 성실성을 유지할 인력을 데려오면 된다. 이런 인력은 스펙이 부족하고 머리가 팡팡 돌아가지 않을지는 몰라도 조직의 근간을 이뤄줄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잘 케어해주고 시간이 지나가면 긴 근속연수에 대해 인정해주면 된다. 프로젝트 리딩을 할 수 있는 인력은 외부에서 비싸게 데려와야 한다. 금방 안찾아지겠지만 주니어 뽑아서 시니어 만드는 것보다는 짧게 걸린다. 보상 잘 주고 대신 명확하게 요구하고 못하면 바이바이 하면 된다. 단, 이 인력이 프리랜서와 다른 점은 요구 사항에 조직 관리와 후배들에 대한 양성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 2~3년짜리 바인딩 계약하고 쥐어 짜면 된다. 


10. MZ의 모토는 아무리봐도 independent 와 competitive 로 보인다. 이걸 뭐라할게 아니라 independent but commited, competitive but cooperative 로 변형해서 쓸 생각을 해야 하는게 맞을 것이다. 헌신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결과를 요구하고 성과를 못만들면 그 세대가 좋아하는 것처럼 쿨하게 바이바이 하면 되고, 이걸 묶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심점을 찾아내려 하는게 맞다. 예전 방식으로 잡으려 해봐야 어차피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모래 손에 꽉 쥐려는 태도다.


추가로, 제조나 대면서비스, 동영상 또는 광고 제작처럼 능력만큼이나 투입 시간도 중요한 업종들이 있다. 이 업종에서 직원들이 그날 하기로 한 일 안끝내고 가는 건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다. 비싼 고급 인력과 숙련도나 성장속도 모두 낮은 인력의 조합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야근, 특히 중견기업 이상의 규모에서 사무직의 야근은 그냥 대표가 꼰대거나 경영진이 멍청해서거나 아니면 갑을병 중에서 병 이하여서 그렇다. 병정들이야 그렇다치고, 갑이나 을회사에서 이러는 건 경영진이 머리나쁜 것이고 그런 경영진을 거기에 앉힌 이사회나 대표이사 머리가 나쁜거다.


아, 하나 더. 인력을 뽑을 때 예전처럼 자소서나 단순 면접이 아니라 훨씬 더 데이터 기반의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 농담이 아니라 관상가가 아니라 임상심리사 같은 전문가를 면접 때 데려오는 기업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ai 나 인적성 검사는 약점이 많지만,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하면 지금과 매우 다른 인력 선발을 하게 될거다. 그 사람의 미래 퍼포먼스와 사고칠 개연성까지 예측할 수 있을테니까. 사람이 매우 남다른 존재같겠지만, 큰 범주에서는 두뇌의 통제를 받는 기계고 때문에 상당 부분 예측 가능하다. 


진짜로 하나 더. 이 글을 읽는 MZ 분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사실 MZ 세대에게 더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성과 외에는 관심 없는 조직에서 일해보면 고성과 조직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뼈져리게 느껴진다. 제 발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도 남아 있는 사람 눈에 불편한 점이 있는데, 매일같이 잘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공포영화 체험과 비슷해진다. 넷플릭스나 국내 T 같은 업체들 너무 찬양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잘려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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