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Mar 31. 2024

대기업 신성장동력 발굴이 어려운 이유 1. 선택과 집중

대기업에게 신성장동력 발굴이 어려운 이유 1. 선택과 집중 


1. IMF 전후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삼성의 경우 배를 만드는 중공업도 했고, 무기를 만드는 테크윈도 운영했으며, 석유화학 기업으로 토탈사와 조인트벤처도 했었다. 건설업도 하고 종합상사도 했다. 물론 그룹 내부 IT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담당할 SDS도 가지고 있었고, 생보, 손보도 가지고 있었다. 중화학공업이야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다 했었고, 내부 수요만으로도 건설사나 IT 회사 등은 운영할만한 것 아니냐, 그리고 삼성이 얼마나 유명하고 신뢰되는 이름인데 이 이름 이용해서 보험사도 운영할 수 있지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 


2. 한 때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기업 중 하나이던 코닥의 경우 필름 제조에 필수적인 원료 중 하나가 소의 부산물이었나보다. (20세기초 아직 석유화학 산업이 크게 발달하기 전에 필름 제조를 위해서 필요했었다고 한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이고 고품질로 공급받기 위해 코닥은 직접 소 농장을 운영했었다. 미국에 그렇게 소 농장이 많은데 과연 코닥에게 독자적인 소 농장 운영은 필수적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랬을리가 없다. 그저 코닥의 경영진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사업적 영역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것이고, 때문에 투자의 효율성이나 효과성 따위는 아예 고려하지 않고 농장까지 사업을 넓힌 것 뿐이었다. 예산이 들어가고 자리가 생겨나면 그걸 통제하는 경영진의 권력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닥의 이 투자는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는 경영 의사 결정으로 남아 있다. 


3. IMF 이전에 국내 대기업들은 주력 사업을 제외한 영역 (그 때 삼성의 주력 사업이라고 하면 역시 전자제품 제조였다.) 에서도 끊임없이 ‘내재화’를 추진했다. “공장 지어야 하는데, 그 대금을 왜 외부 회사에 주는거야? 그냥 우리가 건설사 하나 만들면 그룹 전체 매출이 늘잖아?”, “우리 그룹 회사에 IT 시스템 투자가 얼마고 그걸 운영하는 인력이 몇 명인데 그걸 왜 외부 회사에 맡겨? 대외비 기밀도 얼마나 많은데 그 정보를 외부에서 관리하도록 하는거야? 그냥 회사 하나 차리면 되잖아?” 같은 사고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자제품 제조업이 주력이지만 건설사도 생기고, 종합상사도 생기고, 물류회사도 생기고, IT 시스템 관리 회사도 생겼다. 직원들과 협력사를 대상으로 보험과 카드를 파는게 사업이 되었다. 삼성만 그런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규모의 회사들은 모두 이런 일들을 했다. 문어발이라고 비난을 받을지라도 외부에 맡기면 그냥 비용일 뿐이지만 그룹 내부에 전담 회사를 만들면 그룹 전체의 ‘매출액’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매출을 확대하는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삼성이 서현역에 삼성몰을 운영했고, 두산은 두타에서 임대업을 했고 대우는 마산에 백화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자. 


4. 이런 선택을 경영진의 욕심만으로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베트남이나 태국, 중국 등의 여러 기업체들을 보면 이런 식의 마구잡이 투자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경영진의 인사이트나 기업 운영 능력도 첨단 기술만큼이나 희귀한 자원이라서 어설픈 사업별 전문화보다 차라리 능력있는 소수의 경영진,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그룹에게 투자를 몰아주는 것이 아직 산업 발전이 덜 된 국가에서는 더 효율적인 면이 분명 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도 1890년대에는 섬유방적기를 만들던 회사였다가 창업주 아들이 1920년대 미국을 다녀온 후 자동차를 사업에 추가했다. 산업의 발전이 덜 된 국가일수록 이런 식의, 지금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 포트폴리오가 생겨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5. 하지만 이렇게 ‘몽땅 다 내가 할거야’라는 접근의 문제는 우선 자본 투자의 효율성이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극한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규모가 국내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외국 기업과 직접 경쟁을 해야할 시점이 오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는 점이다. 90년대 국내 종합상사가 크다고 해봐야 일본의 종합상사에 비하면 구멍가게였고, 건설사들도 잘한다고 했지만 현장이 아닌 설계나 개발에서는 외국 기업들에 대비해 걸음마 수준이었으며 IT 회사들도 그룹사 수요를 독점한다는 점을 빼면 미국의 덩치큰 IT 업체들 대비 미약했다. 중학생 정도가 학교에서 운동을 제일 잘해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는데 막상 각 분야 프로들과 경쟁해야 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과 유사했는데, 90년대 이후 경제 규모 성장을 위해 해외 업체들에게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개방을 하면서 실력과 규모가  너무나 비교되기 시작한 것. 결국 무리한 사업 확장을 시도한 그룹사들부터 무너졌고 이게 IMF 사태 전후의 맥락이 된다. 


6. 대기업들은 이 때부터 자기들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그 산업이 잘나가는 것 같아도 투자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미덕을 강제로 배우게 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만트라가 시대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된다. 사실 IMF의 상태가 몇 년 더 지속되었다면 국내 그룹사들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단조롭게 되었을 것이다. 1차적인 정리가 된 상태에서 2000년대를 맞이하는데, 이 때 우리나라 제조업 업체들에게 대단한 행운이 두 가지 생긴다. 하나는 순수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했던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전자 & 디지털화’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었다.  


7. 아무리해도 일본 제조 장인들의 숙련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아날로그 장비의 전형이라고 할 브라운관 TV에서 전자 장치에 기반한 완전한 디지털화하라고 할 수 있는 LCD TV로 기술이 넘어가는 일이 생겼다. (브라운관 TV는 핵심이 되는 브라운관의 제조가 정말 장인들의 섬세한 감각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다. 반면 LCD는 반도체같은 제조라인에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TV의 화질도 브라운관은 제조 숙련도가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LCD는 패널 소프트웨어의 문제였다. 장인 vs. 엔지니어의 모양새가 된 것이고 엔지니어가 장인을 이기게 된 것이다.) 후발주자이던 삼성전자는 도저히 소니를 이길 수 없었던 브라운관을 빠르게 버리고 LCD에 몰빵을 했고, 이 베팅이 이기면서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서 1등을 하게 된다. 현대차 역시 어느 정도 엔진에 대한 기술력이 쌓이면서 일본이나 미국의 중소형 브랜드 수준의 엔진 등 아날로그 영역의 품질에 비빌 정도가 되자 자동차에 전자 부품을 잔뜩 넣어서 편리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차를 만들고 미국 시장에 재진출해서 차츰 경쟁력있는 브랜드가 되어간다. 이런 성과는 국내 대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불과 10여년 내에 만들어낸 성과였다. 그리고 이 성과와 제조노하우를 들고 중국 시장에 수출함으로써 규모를 급격하게 키운다.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업 포트폴리오는 북미 기업들처럼 아주 전문화는 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주력 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어정쩡한 봉합의 상태로 2010년대를 맞이한다. 


8. 많은 대기업들이 이 기간 연평균 10%가 넘는 성장세들을 보였고, 주력 사업들의 이런 빠른 성장세는 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사업들로 전문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이종의 사업들이 결합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고, 보유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각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전문성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2000년대 세계를 휘어잡을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던 국내 대기업들이 2010년대 이후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세계에 새로운 사업적 인사이트를 던지지 못한채 미국과 중국의 선두 기업들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 된 것은 엄청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극한의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경쟁사들에게 전문화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경쟁사가 구글, 애플, 테슬라 같은 곳들로 하는 것은 국내 대기업들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국내 대기업들의 ‘그룹사 매출’은 이들과 비빌만하다. 문제는 이 그룹사 매출을 산업별로 나눠볼 때는 결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전은 매출 300조, 애플은 400조이지만 반도체 등을 제외한 동일 업종간 직접 비교에서는 애플의 절반도 되지 못하고, 네이버나 카카오는 구글에 비하면 그냥 안방의 강자 수준이다. (현대차는 논외로 하자. 국내 대기업 중에서 가장 산업 특화나 집중력이 높고 실제 성과도 글로벌 어느 업체와 비교해도 분명 강자 중 하나이니. 개인적으로 볼 때 최근 국내 대기업 중에서 가장 경영을 잘하는 업체같다.) 


9. 이런 시각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다시 성장의 고삐를 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단순히 다시 한번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규모가 작은 내수 시장을 가진 국내 대기업들에게 단순한 선택과 집중은 괜히 사업의 축소만 가져와서 오히려 경쟁력을 더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고, AI로 대표되는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나 방향은 대기업들이 무엇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령 최근 그룹 전체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는 롯데에게 케미칼 버리고 유통에만 집중하라고 한다고 해서 이들이 유통에만 집중하면 쿠팡을 이기고 테무를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10. 구체적인 결론을 여기다가 쓰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쟁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원칙 몇 가지만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자. 병력 운영의 기본적인 원칙은 전투의 현장 뒤에서 노는 병력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각 부대에게 지금 자기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게끔 해야 하고, 그 위기감을 적들에게 공격으로 전환해 투영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조직 전체의 위기감과 텐션, 그리고 이 모아진 에너지를 집약시켜낼 수 있는 방법의 제공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의 신성장 동력 발굴 당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