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은 광활하고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매우 황량한 지역에 살게 된다. 미국의 총기 사고 뉴스를 접할 때면 ‘그냥 금지하지, 왜 저렇게 사나’ 싶지만 막상 미국의 대도시 이외의 지역을 운전하고 돌아다녀보면 ‘이런 곳에 살면 나라도 총 한자루 집에 두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미국의 공권력과 경찰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그 광활하고 황량한 지역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당장 위험이 생길 경우 소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자력구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2. 대기업이라는 실체는 주식 투자에서 일종의 치안 공권력같은 존재다. 주식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대기업에게 맡기면 (대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대기업이 번 수익을 배당하지 않고 회사에 남겨놓는 것을 포함한다. 이익잉여금은 자본금이고 주주의 돈이다.) 대기업은 자기들이 그 주주들의 돈을 대신 운영하면서 수익을 가져다줘야할 의무가 생긴다. 기업에 따라 매년 10%가 넘는 ROE를 돌려주면서 회사의 외형 성장까지 지속해서 주식 가격도 높여 주주들을 매우 행복하게 해주는 기업들이 있다. 주주들 입장에서 돈을 맡겨놓을 이유가 충분한 기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못하고 수익률이 떨어지거나 성장이 지지부진해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주주들은 이 기업에 돈을 맡겨놓을 이유가 없어진다. 기업에 맡기느니 그냥 주주 개인이 그냥 혼자 알아서 투자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대기업 본사가 돈을 맡아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고, 배당을 받은 후 주주의 자력구제를 하면 되는 것이다.
3.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니 자력구제로 무장을 하는 것처럼 대기업이 투자자에게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새로운 투자 기회를 투자자가 알아서 찾아서 자력구제로 자기가 알아서 투자하고 싶으니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게 된다.
4. 대기업이 여러 종류의 사업을 운영하던지, 아니면 한 사업에만 집중할 것인지의 여부는 수익률이나 주주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은 아니다. 다만 대기업이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이종 사업을 벌릴 것이냐 아니면 자신들은 원래 자기들이 하던 사업 하나만 열심히 할 것이냐는 상당히 복잡한 선택이다. 자기들이 원래 잘하던 사업에서 투자금이 더 필요치 않거나, 성장 전망이 나오지 않아 시설이나 기술 등을 더 투자할 필요가 없어질 경우 원론적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신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이종 산업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고 또 다른 선택지는 그간 쌓인 자본금을 주주들에게 최대한 돌려주고, 기존 사업이 축소되어가는 동안 최소한의 비용만 투입하면서 이익을 향유하다가 마지막에 사업 전체를 스크랩하는 것이다.
5. 신성장동력 발굴이 아닌 기존 사업의 축소에 맞춰 투자 및 비용 최소화를 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 경영진들에게 매우 낯선 시각이다. 우리는 주주가 아니라 경영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고, 기존 사업의 성장 기회가 안보인다면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 사업을 어떻게든 끌고 가서 다시 성장을 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사골을 우리고 우려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해봐야 ‘최선을 다했다’라고 생각하는 문화에 속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문화덕분에 우리는 정말 국토에서 나오는 사람이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식재료를 먹는 풍성한 식문화가 되었다. 끝을 보는 것이니 ㅋ)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받아들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주주가 주인인 시스템이라는 점이고, 더불어 무조건 끝까지 붙잡고 집요하게 가는 것보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렇지 않다면 미국이 제조업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황에서도 90년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도 집요하게 사업하지만, ‘아니다’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냉정하게 사업을 접고, 투자금을 회수한 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준다. 이 주제는 정말 논쟁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주제이지만, 경영 전략 분야에서의 권장 답안은 이런 상황이면 주주에게 돈 돌려주고 사업 축소하면서 그냥 그 소가 죽을 때까지 우유만 짜라는 것이다.
6. 그럼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경우에 신성장동력을 추진하는게 옳은 일일까? 분명한 것은 개별 기업이 자신들이 명백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확신한 규모의 경제 또는 범위의 경제를 가지고 있는 일, 그래서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을 어지간한 다른 기업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으려 주주 돈을 쓰는 것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시도를 우리는 R&D, 마케팅, 신제품출시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엔비디아가 성능이 향상된 칩을 새로 내놓고, 애플이 에어팟 같은 것을 출시하고,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AI를 탑재해서 출시히고, LG가 프리미엄 가전 라인업을 강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기업이 추구할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 분야에서 그 업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업체도 거의 없을 뿐더러 기존에 가진 자산이 많기 때문에 여기에 약간만 더 새로운 부가가치를 추가하면 성장 동력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회사는 약간만 규모가 있어도 거의 모두 R&D, 마케팅 등의 부서가 존재한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겠지만, 1970년 초반까지 R&D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 회사가 미국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마케팅을 전담하는 부서들이 크게 생겨난 것도 1980년대 이후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R&D나 마케팅 부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7.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말은 기존 사업의 확장이나 기존 사업에 기반해서 매출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안가봤던 시장, 만들어보지 않은 제품, 개발해보지 않았던 기술, 시도해보지 않았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서 거기서 성장 기회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대기업이라고 해서 자기들이 잘 못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대단한 회사여서, 가령 시장에서 크게 성장하는 것이 식품업이라면 삼전이 식품업에 새롭게 진출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혹은 LG가 원자력 발전을 하겠다거나, 무기를 만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반도체를 만든다고 하면? IMF 이전의 국내 대기업들은 사실상 정부가 정책금융으로 이런식의 말도 안되는 신규 투자를 하더라도 큰 리스크가 없었다. 정부가 은행 푸시해서 더 빌려주면 되니까. 하지만 글로벌 스케일로 경쟁해야 하고 기술 변화에 따른 여파를 이젠 정말 예측할 수 없고, 힘들게 구축한 경제적 해자의 유효 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며, 정치와 외교 등 기업에게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속출하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투자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하던 일에만 집중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느 순간 정말 한밤에 도둑처럼 경쟁자가 나타나서 나를 밀어내버린다. 국내 온라인 유통업체들 중에서 ‘중국의 테무 같은 애들이 24년부터 국내 최대 유통사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 업체가 누가 있었을까? 이들도 나름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왔는데, 어느 날 정말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새로운 성장 방안을 계속해서 찾고, 실체화하고, 이를 통해 경쟁사를 압도할 위치에 가지 못하면 어느 날 갑자기 시장에서 생존 경쟁에 내몰리는 시대인 셈이다.
8. 대기업은 자기 사업에서의 성장, 주주들에 대한 환원과 함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일 역시 이제는 자연스러운 기업의 업무 중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70년대 R&D라는 부서를 처음으로 만들고, 80년대 마케팅이라는 부서를 만들어서 연구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기업 매출의 10% 이상을 쏟아붓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지나온 것처럼 신성장동력 발굴 역시 상시적인 회사의 업무여야 하고, 당연히 일정 수준의 매출액을 쏟아붓는 것이 첫번째 단추다. R&D나 마케팅 모두 매출액의 3~5% 정도 소모하는데, 신성장동력 발굴 역시 이 정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국내 대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생각할 때 매출액의 3~5%면 엄청난 투자이고 대단한 리스크 감수이지만, 이를 시도하지 않으면 쿠팡 같은 업체 무시하다가 결국 적자가 나며 사업의 완전한 하향 단계에 진입한 국내 마트 같은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
9. 신성장동력에 대해 그럼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고, 어떤 식으로 발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