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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09. 2018

8. 나의 이름을 불러줘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8

내가 24년 전 중국에 왔을 때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 중국어로 부르는 나의 이름이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고유명사이고, 글자만이 아니라 들리는 소리도 중요한 것인데, 한자(漢字)로 된 나의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읽으면 완전 다른 발음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부르지 東野圭吾라는 한자음을 써서 동야규오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말이다.(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한국에서도 그렇게 부르기는 한것 같다. 이등박문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한자로 된 이름이 다른 국가로 가게 되면 그 나라의 발음으로 불리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황성규라는 이름이 중국 사람들에게는 후앙썽꾸이가 되어 버리는 것에 왜 내 이름을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들곤 했었다.

한자로 된 이름이 없는 외국인들은 그나마 음을 차용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글자는 달라도 불리는 발음은 원래의 이름과 그런대로 유사했다.

예를 들어, 톰은 탕무, 잭은 재커.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자기가 불리고 싶은 대로 정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한자로 이름이 있는 한국인이나 일본일의 경우, 자신의 한자로 된 이름을 중국어 발음으로 그냥 읽다 보니,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는걸.


우리 아이들이 상하이로 오자, 당장 필요한 것이 중국식 이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들은 벼리와 누리라는 순 한글 이름이라 한자가 없었다.

어차피 한자가 없으니 음을 차용해서 마음에 드는 글자를 선택해 이름을 만들면 되었다.


우선 벼리의 이름을 발음대로 해보니 딱 맞아떨어지는 발음이 없었다. 

예전 벼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 지은 이름이 있었는데, 이름 석자가 아니라, 네 글자의 이름이었다.

황 비어리(黃比峨利). 비어리를 빨리 읽으면 벼리가 된다는 나의 기발한 아이디어였는데, 나중에 중국 사람들에게 불리어지는 벼리의 이름을 보니 그건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비어리를 빨리 부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어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기가 차지도 않았다. 중국사람들은 황비(黃比)가 성이고, 어리(峨利)가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름을 제대로 다시 지어야 했다. 벼리의 뜻을 사전에 찾아보면,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한자로는 綱'

이라고 나와있다.

황강.

발음으로 보나 뜻으로 보나 꽤 괜찮은 이름이었다.

우리는 벼리가 대학교를 등록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해서 등록을 했고, 벼리의 말에 의하면 한동안은 학교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벼리가 전공을 하고 있는 과는 중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고,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황강이라는 이름보다는 본명인 황 벼리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중에 알아보니,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 벼리의 친구들이 황강이 아닌 벼리의 본명인 황 벼리의 외국식 발음 '펴리'또는 '베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벼리의 이름은 황강 보다는 '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리였다.

어리라고 불리던 벼리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좀 더 고심을 했다.

누리는 다행히 정확하게 누리라고 발음이 되는 중국 글자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함정이 있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이름을 발음대로 만들다 보면 그 뜻이 이상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리라는 한글 발음과 똑같이 나는 한자는 努力과 奴隸였는데. 첫 번째는 노력이라는 말이다. 뜻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계속 노력해라고 놀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두 번째였다. 두 번째는 노예라는 뜻이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무슨 글자가 되든, 누리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면 노력이나 뭐 그런 뜻 보다는 노예가 되어 버릴 것이었다.

나는 큰 아들 벼리처럼 그냥 누리의 뜻을 가지고 한자를 생각해 보았지만, 세상, 땅이라는 뜻으로 만들면 발음이 '황스상', '황띠'(황제의 발음과 같다.)와 같은 발음이 되어 버려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다가 생각해낸 이름이 깊고 밝다는 뜻의 睿라는 외 글자였다. 발음은 루이였다.

황루이.

그렇게 벼리는 황강에서 펴리로, 누리는 루이가 되었다.

부모님이 지어준 좋은 이름이 있어 그 이름을 불러주길 바랬던 나의 염원이 나의 두 아이들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름이 조금씩은 바뀌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둘 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펴리 와 루이.


안녕, 내 이름은 루이라고 불러줘.


- 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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