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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Dec 24. 2018

20. 어른이 된다는 시대적 차이.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대마다 조금씩 그 의미가 달라진다.

고무신에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다니고,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수시로 하던 나의 세대와 미성년과 성년의 구분을 법으로 지정한 지금의 세분화되고 복잡해진 환경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른이 된다는 기준은 분명 다를 것이다.


부모의 지난 이야기를 아이에게 알려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보통,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는 '예전에는 내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그 말은 곧, '에휴, 또 시작이네.' 라는 반응과 함께 아빠의 지겨운 이야기를 귀막고 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간혹 자신이 지나왔던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며 나의 나태함을 질책하곤 했었다.

"내가 너 나이 때에는 월남전에 파병돼서 돈 벌고 있었어."

아버지는 나트랑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지난 세월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나는 월남이 어딘지도 모를 시절, 나트랑을 먼저 알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오래된 사진을 정리할 기회가 있어,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24년 전, 내 나이 스물둘에 나는 북경에 홀로 떨어져 이방인의 생활을 시작했었다.

아버지는 나이 20에 월남전에서 돈을 벌었지만,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베트남이 아닌 중국 북경에서 나의 기억을 만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른이 되는 기준점은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 혼자서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내 빨래는 내가 해야 하며,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이 얼마인지 매일매일 확인을 해야 하는 불안한 시간들이 내가 더 이상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그런 어린애가 아닌 어른이 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이 자신이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질책하거나, 반성을 재촉하는 과거는 세대마다 달라진다.

나의 아버지가 월남전을 이야기하고, 학교를 다니면 일을 해야지 공부는 왜 하느냐며 끌려와 머리를 빡빡 깎이고는 농사를 하게 했다는 시절은 아버지의 시대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아마도 만주 벌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이야기하며 나의 아버지를 질책하고 어른이 되기를 재촉하지 않았을까?


매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지나온 험난한 세월에서 생존해 온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두려움도 느끼곤 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월남전에 파병을 해야 했던 세월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할아버지의 말대로 만주에서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시대를 거쳐 오며, 그 시대에 충실했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 역시 자기가 지나온 시대에 충실하며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그 환경이 같을 수가 없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가는 개인의 경험 역시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주들을 피해 도망간 만주에서 척박한 땅을 경작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소를 끌 것인가, 아니면 연필을 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 어떠했건, 내가 어른이 된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가 지내는 시대에 맞는 어른이 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들이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과 그 현실에 충실하면서 점차 어른이 되었다. 그렇듯,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스물둘에 홀로 외국에서 지내면서 어른이 되는 준비를 했지만, 큰 아들 벼리는 열여덟의 나이에 또 다른 외국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마친 뒤 다시 하루에 5시간을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고, 자르는 일을 한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 철둑길에 앉아 주스와 닭다리 하나로 끼니를 채우고 8명이 함께 살고 있는 숙소에서 그렇게 잠이 들것이다. 어느새 울리는 아침의 알람 소리에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켜 학교를 가야 하는지를 한참을 고민한 후, 결국에는 덜컹 거리는 트램에 몸을 싣고 1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어른이 되는 길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더워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는 말은 머리 깍을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어른의 표현법일까.


이유 없이 일자리에서 잘렸다는 통보를 받고 우울해도 우울함을 부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가 조바심을 낼 것도, 재촉을 할 것도 아니다.

그저 어른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우리의 아이들은 스스로 어른이 되는 방법을 깨우쳐 나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너는 언제 어른이 될래, 그렇게 해서 밥은 먹고살겠니 등의 말은 접어두자. 아이들은 자기의 시대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어른이 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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