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포스터 키친 : 롤플레잉 그리고 룰 브레이커>

공간 일리 : 염인화 개인전 전시리뷰

by 박제언 Curator Jenny
《임포스터 키친》 전시 전경(공간:일리, 2022) ©염인화


<임포스터 키친 : 롤플레잉 그리고 룰 브레이커>


안녕하세요 님들, 미식 유튜버 제니에요. 오늘 만나보실 <임포스터 키친>은 최근 ‘태양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이닝 100’에 이름을 올린 파인 다이닝으로, 인플로언서들을 중심으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관광지 ‘코코 킬링 아일랜드’에서도 분점을 만날 수 있는 ‘그’ <임포스터 키친>의 본점입니다. 예약을 하려면 평균 200일 정도 대기가 필요하다는 이 시대 최고의 파인 다이닝에 어렵게 취재 협조를 얻어 다녀왔어요. 저기 임포스터 키친의 주방장(Chef de Cuisine)님이 계시네요. 셰프님은 S대 생명공학과에서 수학하고 요리에 눈을 떠 해외 유학을 떠나셨다고 해요. 프랑스와 멕시코를 거쳐 현재는 코코 킬링 아일랜드에 정착하여 분자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배양 요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계시죠. 안녕하세요 셰프님,


쉐프 드 퀴진 안녕하세요, 요리를 설계하는 쉐프 드 퀴진입니다.


J 안녕하세요! 셰프님. 요리를 설계한다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쉐프 드 퀴진 제가 하는 요리들은 신체를 구상하기 위한 일종의 설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생명공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한 저는 음식이 몸을 구성하는 재료로 기능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생명체가 지닌 필멸성은 저에게 늘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래서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배양육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죠. 324세라는 나이만큼 저도 이제 신체의 대부분을 교체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생명체로서 기관들은 식사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저의 관심사가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저희 다이닝을 방문해 주시는 손님들도 에이징(aging)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J 그렇군요. 지금 배양육 스테이크(steak) 에이징(aging) 하고 계신데, 혹시 제가 서빙을 하면서 테이블에 계신 분들 몇 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쉐프 드 퀴진 글쎄요, 손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서빙을 하시는 것 까지는 괜찮을 것 같지만…조리장(Chef de Partie) 님, 안내 부탁드려요.


Chef de Partie 예 쉐프!


J 네, 조용히, 보일 듯 말 듯, 실례 끼치지 않고 서빙하겠습니다. (그냥 슬쩍 인터뷰 진행해도 괜찮겠지?)


J 안녕하세요 배양육 나왔습니다!


대모 아..네네…어머! 나 누구인지 아는데? 유튜버 아니에요?


J 맞아요! 오늘 임포스터 키친 취재를 나오게 되어서 일일 서버로 제가 음식을 가지고 왔어요, 갑자기 말 걸어서 놀라셨죠? 세 분은 오늘 메타버스에서 접속해서 식사 중이신가 봐요? 혹시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대모 네 맞아요. 이쪽은 저희 아들을 봐주시는 간병인이시고, 저쪽은 저희 어머님이시고요.


대대모 이쪽 선생님이 우리 손자 봐주시는 분이라 대접 차 어렵게 예약했어요.


간병봇 네 맛있네요.


대모 혹시 저희 테이블에 주시고 옆 테이블도 가시나요? 그럼 좀 조용히 식사해달라고 얘기 좀 해주실래요? 영 예의가 없네요.


J 네 알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자리를 피하며) 님들, 임포스터 키친의 손님들은 조금 까칠하네요. 저희 이모도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간병인을 구했는데, 저기서 식사하시는 최신 간병봇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이제 저쪽 테이블로 가볼게요. 마침 요양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 그래서 실버타운이….


J 안녕하세요! 주문하신 배양육 나왔어요. 채식주의자이신 분 계시죠?


비평가 앗 저번에 뵈었던 미식 유튜버 제니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J 맞아요! 와 비평가님 여기서 뵙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짧게 인터뷰 가능할까요?


갤러리스트 어머 좋죠, 좋아요. 여기 작가 선생님 인터뷰 해주세요. 최근에 NFT도 냈어요.


작가 아….안녕하세요.


J 안녕하세요! 작가님은 임포스터 키친 단골이신가요? 식당 리뷰나 소감, 그리고 하고 싶은 말 편하게 해주세요.


작가 단골일 리가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가 가장 이 레스토랑에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웃음) 최근에 AI니 뭐니 나오면서 외주도 더 안 들어오고요. NFT는 이제 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어떻게 자주 오겠어요. 사실 이런 식당 와서 먹는 음식이 제 신체리듬이랑 정보랑 아무리 완벽하게 맞춰줘도 어쩌다 한 끼 먹는 거잖아요. 평소에는 이런 거 먹을 수 없으니까. 오늘이야 갤러리에서 사주신다고 하니 먹는 건데, 저로서는 당장 노후대비도 안 되어 있어서 이런 고오급 식당, 사실 엄두도 안나요. 노후가 다 뭐예요. 아프면 고꾸라질걸.


비평가 그렇죠. 사실 수명도 건강도 이제 세습에 가까워요.자본에 따라서 매일 소비하는 음식이 달라지고 그게 결국 신체를 구성하니까요. 소모재인 신체가 탈락할 때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그게 실버타운이건 골드타운이건-역시 너무 좁죠. 사실상 선택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벌어져 갈 거란 거예요. 의료지원정책들이 있지만 이미 벌어진 간극을 메꾸기엔 한없이 역부족이죠.


갤러리스트 아이고 작가님 비평가님, 우리 너무 진지해지고 있는 것 같네요. 여기까지 해요. 제니님, 반가웠어요.


J 아 네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요리를 들고 이동하며) 님들 어떻게 들으셨어요? 님들이 생각하시는 자본에 따른 건강의 격차와 노후에 대해 의견을 올려주시면 흥미로운 의견 추첨해서 다음 방송 때 리뷰해 드릴게요. 그럼 다음 테이블로 이동해 볼게요.


C사 연구원 그래서 동물로 하는 임상실험을….실험 후 버려진 조직에서 세포를 분리하고 그걸로 조직을 만들어서…


A사 대표 지금 이 레스토랑에서 인공육 만드는 거랑, 인공장기 만드는 것도 비슷한 원리 아니에요?


J 주문하신 배양육 나왔습니다~


C사 연구원 그렇죠. 지금 나왔네요 마침. 이 배양육의 원리가 사실은….


J 식사 잘 하고 계시나요?


A사 대표 네네 맛있고, 다 만족합니다. (고개를 휙 돌리며) 그래서 제 말은 그런 동물실험들을 모두 컴퓨터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면 생체 체외모델 시장이 커질 거라는 거죠. 그거 성장하기 시작하면 꽤나 거대한 비즈니스 풀이라고요.


J 저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사실은 제가…..


B사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요. 식사 잘 하고 있고 서비스 불만 없습니다. 저희끼리 이야기하게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J 앗, 아 네네.


쉐프 드 퀴진 거기, 뭐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분명 손님들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서빙만 하시게 요청했을 텐데요.


J 앗 셰프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님들, 또 만나요!(도망치듯 떠난다)

-J 가 떠난 주방-


쉐프 드 퀴진 일동, 응시하(지말)라, 경청하(지말)라 말하(지말)라!!

직원들 Oui, chef!!!!!!





자, 갸웃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텍스트를 읽어보자.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읽었나 싶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위의 모든 대화는 염인화 작가가 2022년 공간 일리에서 진행한 전시 <임포스터 키친>의 전시리뷰이다. 내가 아는 전시리뷰는 이런 게 아닌데, 하는 불편한 마음이라면, 무척 만족스럽다. 불편함. 그것이 지금부터 작가 염인화의 전시와 작품을 읽어 내려가는 키워드가 될 테니까. 위의 대본은 염인화 작가가 2022년 한국의 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연출한 <임포스터 키친>(2022)과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 뒤 가상의 섬 코코 킬링 아일랜드로 이전한 레스토랑을 연출한 <식도락 투어>(2022)를 토대로 필자가 유투버 J의 관점에서 상상, 각색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평론이나 전시리뷰의 흔한 도입을 다시 끌어와 보겠다. 작가 염인화는 다양한 생체행위, 반응을 포용하는 XR기반의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이라는 매체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 매체는 3D 그래픽 기반의 기술적 장치들과 그 장치들의 관계가 구성하는 전시환경을 뜻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전시환경에 관객을 특정 ‘존재자’로 설정하여 퍼포먼스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찬드라 X>(아트스페이스 보안, 2022)에서는 관객을 간-행성 네트워크 환경 관리자로 분하게 하거나, <코코 킬링 아일랜드: 식도락 투어>(국립현대미술관, 2022)에서는 가상의 섬에 생태 관광객으로 변신시키는 식이다.


이번 전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임포스터 키친>(공간일리, 2022)에서 관객은 전시 시작 전부터 인터넷에서 전시장 방문을 위해 임포스터 키친에 ‘예약을 거는’ 행위를 통해 파인다이닝 고객으로서의 롤 플레이를 시작하며 하여금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전시장에 도착한 관객에게 작가는 천연덕스럽게 서빙 트레이를 내민다. 그가 부여받은 역할은 레스토랑 서버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서버로 분하면서 집중하여 관람해야 하는 부분은 접시에 놓인 분자배양 음식도, AI로 만든 쉐프나 실험실 같은 모습의 주방도 아니다. 서버로 분하는 관객에게 주도적으로 보여지는 풍경은 손님들이 앉아있는 5개의 테이블과 거기서 들려오는 대화들이다. 테이블에는 최근 NFT 민팅을 망한 예술가와 큐레이터, 또는 건강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대표, 물주와 투자가들, 간병봇과 환자의 보호자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앉아있다. 다양한 주제로 전개되는 대화는 결국 모두 나이 듦(aging)에 대한 것으로 수렴되는데, 그 사이에서 염인화는 봇으로 대변되는 간병인 이슈 등을 짚거나 실버타운이라는 소재로 자본에 따른 거주 이슈를 드러내며 노화를 키워드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건드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역할 놀이 안에서 작동하는 위계이다. 작품에서 관객은 레스토랑 서버라는 가장 낮은 지위를 부여받고 홀에 진입한다. 모든 테이블에는 밥을 사는 사람과 얻어먹는 사람, 또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위계들이 존재하며, 주방 풍경을 보여주는 이면 영상에서는 쉐프가 하는 말에 끊임없이 직원들이 Oui chef! 를 외치며 위계를 강화한다. 염작가의 설계안에서 관객은 손님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리고, 귀를 막은 전시장에 한쪽에 장식된 세 마리의 원숭이처럼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마냥 음식을 전달하고 이동할 뿐이다.


즉 임포스터 키친에서 일어나는 롤플레이 안에서 계층 간 이동은 없다. 관객을 비롯한 작품 안의 캐릭터는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이는 작가에 의해 드러나는 현실의 단면이다. 경직된 시스템과 이동할 수 없는 서열, 노화는 그것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키워드로서 작동한다.


자 이제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상단의 리뷰로 돌아가 보자. 유튜버 J는 염작가라는 절대자가 설계한 위계에 개입하여 레스토랑을 헤집고 다닌다. 셰프에게 불쑥 인사를 건네고, 손님들에게 겁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셰프의 경고를 무시하고 활개를 치던 유튜버의 마지막은 레스토랑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그가 떠난 주방에서는 전시장에 울리던 가장 강력했던 대사가 되풀이된다. “응시하(지말)라, 경청하(지말)라, 말하(지말)라.”


그런데 이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나열이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시집살이에 대한 오랜 민담에서 나오는 시집가는 과년한 딸에게 아비가 건넨 ‘격언’이다. 시집에서 며느리가 가지는 위치와 파인 다이닝에서 서버가 가지는 위치는 어떤부분에서 유사하다.

이러한 지점에서 임포스터 키친의 풍경은 현실과 링크된다. 염인화 작가의 확장현실(XR)에서 설계자는 염작가 본인이었다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서의 설계자는 누구일까. 유튜버 J처럼, 위계 흔들기를 시도할 때 우리 역시 시스템에서 추방당하게 될까? 글쎄, 모를 일이다. 다만 임포스터 키친에서 염인화가 남긴 메시지는 사실 명료하다. 응시하라. 경청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것이다. 침묵하지 않는 우리에게 펼쳐질 풍경이 임포스터 키친의 그것과는 달라질 수 있도록 말이다.


f2217062e9a397a1dca429e7d70bc6ca.jpeg 《임포스터 키친》 전시 전경(공간:일리, 2022) ©염인화


작가의 이전글Welcome to WDG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