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작가 작품평론 <오버행 식물(Over hang Plant)>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소설 『파이트 클럽(Fight Club』(1996)의 등장인물 타일러 더든(Tyler Durden)은 익명의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완벽함은 정체다. 실수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I say never be complete, I say stop being perfect... I say let's evolve, let the chips fall where they may)”. 작가 이정우의 신작<오버행 식물(Over hang Plant)>(2025)을 읽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이 구절에서 출발해 볼 수 있겠다.
<오버행 식물(Over hang Plant)>에서 끊임없이 동작하는 3D프린터가 반복적으로 출력하는 것은 다양한 색의 잡초들이고, 출력된 잡초는 미끄러지듯 쌓여 잡초밭을 이룬다. 작품제목의 ‘오버행(Over hang)’은 3D프린터의 한계를 실험하는 방식 중 하나인 빠른 오버행 테스트(Fast over hang test)에서 따온 것이다. 3D 프린팅에서 오버행(Overhang)이란, 지지대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부분을 프린팅할 때 생기는 현상으로, 보통 완벽히 출력되지 못하고 약간의 오류, 변형이 발생한다. 빠른 오버행 테스트는 오버행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지지대 없이 프린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의도적으로 오류나 변형이 발생하는 한계점을 찾는 테스트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작가 이정우는 이 작품 제목에서 실패와 오류에 대한 미학적 탐구라는 자신이 천착해온 주제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버행 식물>의 이러한 실패, 오류의 미학은 이정우의 기계적 오류(Glitch)에 대한 흥미를-더 나아가 그것을 에러(Error)가 아닌 하나의 미적 스펙트럼(spectrum)으로 바라보는 태도를-보여준다. 이는 로자 멘크먼(Rosa Menkman)이 『글리치 모멘텀 : 오류의 순간과 그 흐름(The Glitch Moment(um))』(2011)에서 디지털 매체의 오류(Digital Medium glitch)를 예술적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제안한 글리치 아트(Glitch Art)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멘크먼은 글리치 아트가 단순히 기술적 사고(Technical Accident)를 유행처럼 이용하는 것을 넘어 그를 통해 매체(medium)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는데, 즉 순수 글리치 아트(Pure Glitch Art)-매체가 자동적으로(Automatically)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발생시키는 경우-와 포스트-절차적 글리치 아트(Post-procedural Glitch Art)-글리치를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소프트웨어 필터(Software filter) 또는 디지털 효과(Digital effect)와 같은 오류를 생성하는 것-로 구분하여 후자(포스트-절차적 글리치 아트)가 내포한 글리치의 상업화.브랜드화의 위험성을 경계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리치가 단순한 필터효과를 넘어 예술적 창조성을 가진, 멘크먼의 표현에 의하면 마법적 감각(Enchanting Effect)으로 남기 위해서는 전자(순수 글리치 아트)의 맥락에서 기술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정우가 <오버행 식물>에서 끌어들인 빠른 오버행 테스트는 3D프린터가 가진 한계점을 인위적 조작없이 한계실험 하는 테스트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인위성을 배제하고 기계가 본질적으로 지니는 한계점에서의 글리치를 극대화 하여 미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글리치 아트에서 압축 손실(compression artifacts)이 디지털 미디어의 비물질성(immateriality)을 강조하고, 데이터 변형(databending)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작동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스템 충돌(system crash)은 기술 의존 사회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고 했을 때, <오버행 식물>은 3D프린터의 이미지 데이터를 물질적 대상으로 재생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오류를 짚어낸다.
작가가 설정하여 요청하는 이미지 데이터-잡초 형태의 오버행 테스트 구조-는 데이터 상으로 소프트웨어 안에서 디자인될 때에는 오류없이 이미지화 될 수 있다. 비물질적 정보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뻗어나가게 설계된 잡초 형태는 그러나, 3D 프린터를 통해 체현(embodied)되면서 처짐현상(Bridging Issues), 탈조(Layer Shift), 필라멘트 떨어짐(Filament Run-out), 압출불량(Extrusion Failure)등의 각종 오류를 생산해 낸다. 3D 프린팅은 종종 완벽한 복제 기술로 여겨지지만 <오버행 식물>에서 작가는 다양한 오류(처짐 현상, 층 밀림, 압출 불량 등)를 생산하며, 기계적 한계를 노출하고 기술은 결코 완벽하게 데이터를 변환할 수 없으며, 불완전성과 오작동이 항상 내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3D 프린터의 오류를 통해, 기술 의존적 세계에서 ‘기술의 완전함’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완벽함’의 환상을 비판하는 동시에 ‘완벽함’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3D프린터가 뽑아내는 대상인 잡초(Weed)는 본래 통제 불가능한 생명력을 가진 자연적 존재이다. 3D 프린팅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이 ‘잡초’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뒤틀리거나 ‘불완전하게’ 형성되는데, 작가는 오히려 이 불완전한 형태를 그대로 전시장에 작품으로서 소환한다. 이는 인간이 기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기계가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작동한다-또는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오류 즉 실패이다-라는 인식을 뒤집는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은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2010)에서 생동적 물질성(Vibrant Matter)이론을 통해 물질(Matter)이 수동적이거나 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이며 능동적인 행위성(vitality)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즉 사물과 물질은 인간의 통제나 의도와 별개로, 자체의 활기(vitality)와 자율적 행위성(agency)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우의 <오버행 식물>은 잡초가 가진 자연적이고 독립적인 물질의 힘(의도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생명력)을 3D 프린팅이라는 기계적 매체가 가진 글리치와 중첩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기술에 대한 완벽함의 신화에 질문을 던지고, 물질의 자율적 행위성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작가 이정우의 <오버행 식물>이 비인간 주체(3D프린터 또는 잡초)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제인베넷의 생동적 물질성(Vibrant Matter)에 연결될 수 있다면, <오버행 식물>의 결과물을 나열하여 <처짐현상(Bridging Issues)>, <탈조(Layer Shift)>, <필라멘트 떨어짐(Filament Run-out)>, <압출불량(Extrusion Failure)>등의 결과물을 따로 심어놓은 전시장의 한켠에 있는 꽃무리는 이정우작가의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나타낸다.
기계적 물질에 대한 의인화와 우연적 효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은 2022년 작 <로로와 보보의 사랑의 순간들>(2022)[ 작품보기 : https://vimeo.com/702723079?fl=pl&fe=cm ] 에서부터 추적할 필요가 있다. 3D프린팅된 부품으로 만들어진 분홍색과 파란색 로봇 ‘로로’와 ‘보보’는 작가가 설정한 최소한의 알고리즘에 반응하며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고 부딫히거나 엉뚱한 곳을 헤집으며 집안을 돌아다닌다. 작가는 카메라를 설치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그것을 편집한 영상에 임의의 해설을 붙였다. “새 다큐멘터를 찍고, 새들의 움직임에 임의의 나레이션을 덧씌우는 것 처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두가지 의미를 추출할 수 있다. 하나는 비인간(로로와 보보. 새)존재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한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위적 해설에서 작가는 로봇에게 행위성-인간 존재 안으로 비인간을 소급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범위를 확장하거나 해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행위성-을 부여하면서 의인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작가 이정우는 기계의 의인화를 통해 인간 또는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이런점에서 <오버행 식물>의 결과물인 <처짐현상>, <탈조>, <필라멘트 떨어짐>, <압출불량> 꽃무리 역시 완벽하지 않은 대상의 의인화로 읽어볼 여지가 있다. 3D프린터의 목적(사회에서 규정한 기술적으로 기대하는 목적)은 디지털 설계와 완전히 같은 결과물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정우의 ‘불량 꽃무리’는 실패한 결과물이자 일반적으로 창작과정에서 3D프린터를 사용했을때 전시에 활용하지 않고 버려지는, 즉 ‘작품’이 아닌 부속 또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이를 독특하고 아름다운 글리치의 미학으로 받아들여 작품으로 각자의 이름을 부여하여 전시장으로 초대한다.
주디싱어(Judy Singer)는 『장애담론(Disability Discourse)』(1999)에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인간의 다양한 신경구조와 인지방식을 결함이나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의 스펙트럼으로 보자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자폐증, ADHD, 난독증과 같은 신경학적 차이를 단순히 장애로 바라보는 대신 인간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자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정우 작가는 글리치와 오류, 실수의 산물로 여겨지는 것들을 다른 가능성과 미적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을 단순히 정상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과 ‘오류’, 즉 정상적인 것(normal)과 비정상적인 것(abnormal)의 경계를 허물고, 이를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정우의 ‘불량 꽃무리’는 마치 지금까지 사회에서 ‘비정상’의 범주로 소거되거나 ‘치료’받을 대상으로 분류되었던 타자화된 무리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처짐현상>은 늙은 노인의 주름에서 오는 아름다움처럼, <탈조>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창조력을 발휘하는 ADHD인 처럼, <필라멘트 떨어짐>은 여러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지는 이중적 자아를 지닌 존재들처럼, <압출불량>은 꽃무리 아래에 자리한 또다른 존재들의 아름다움처럼 그 자체로 빛나며 이름없는 잡초에서 각자의 가치를 지니는 꽃으로 변화한다.
결론적으로 이정우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글리치 미학은,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 사물과 기술이 지닌 내재적 힘과 우연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이는 제인 베넷의 생동적 물질성이 제안하는 바와도 연결되며, 더 나아가 주디 싱어의 신경다양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의 경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포용의 지평을 확장하는 예술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정우의 작품을 읽어나가기 위해 서두에 언급한 척 팔라닉의 소설 속 대사로 돌아가 보자. 비행기에 오를때마다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바라던 ‘주인공’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함과 경쟁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말기 암환자 모임에서 유일한 위로를 찾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사로잡힌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글리치’이다. 그는 타일러 더든의 “완벽함은 정체이다. 실수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는 말을 통해 글리치 그 자체로서 생존하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 이러한 실수-오류-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은 서두에서 이정우의 작업을 읽어가는데 좋은 키워드로 작동한다. 다만 이 구절의 소설 속에서의 맥락은 한편으로 여전히 인간의 생존과 생명력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적이고 투쟁적인 방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류와 실수를 삶의 의지로 소급하고, 결국 인간 존재를 다시금 생존 경쟁이라는 맥락 속으로 가둬버리는 것이다.
반면, 이정우의 <오버행 식물>은 척 팔라닉이 제시한 인간 중심적이고 생존 중심적인 오류의 미학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물질과 기계적 오류를 보다 포용적이고 열린 가능성의 스펙트럼으로 확장시킨다. 3D프린터가 만들어낸 오류는 더 이상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물질적 존재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인간 중심성을 넘어서는 비인간적 행위성과 우연성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한다. 즉, 이정우는 팔라닉의 '오류' 개념이 지닌 한계—또는 이전에 논의에서 실수, 오류, 글리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인 인간중심성, 남성적 생존주의—를 넘어서, 오류를 보다 넓고 따뜻한 포용과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류를 일으켜 오동작 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귀엽지 않나요? 저는 이런 것들이 정말 귀여워요.”라고 웃으며 가볍고 위트있는 오류의 잡초정원을 보여주는 이정우의 <오버행 식물>은 농담 같은 접근을 통해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시대 우리가 담지해야 할 핵심(core)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손상된 실행 파일(broken executables)들과의 횡단적 연대가 만들어지는 이 시대에, 작가 이정우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오류가 이름없는 잡초들에게 위로와 포옹을 선사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